마추픽추만 800번 오르내린 사람이 말하는 느린 여행의 의미 [장주영 기자의 여책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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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눈에 반하는 사랑이 있죠.
30여년 동안 페루에서 여행사 운영과 여행 가이드 일을 해 온 지수일 작가는 책 '마추픽추의 시간을 걷는 사람'을 통해 한 장소를 오래 바라본 사람의 느낌을 기록했다.
풍경은 여행의 출발점이지만 오래 남는 기억은 결국 사람에게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한 번 방문한 곳을 안다고 쉽게 말하지 않는 것 나아가 낯선 세계를 오래 바라보며 자신의 생각까지 돌아보는 것이 저자가 말하는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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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눈에 반하는 사랑이 있죠. 반면 오래 끓여야 진국인 곰탕도 있습니다. 어느 것이 정답이라 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깊이에서 만큼은 곰탕이 우세합니다. 무릇 오래 바라볼수록 시선은 깊어지기 마련입니다.

저자는 빠르게 스쳐 가는 대신 한 대상을 오래 들여다볼 때 비로소 보이는 시간의 깊이를 이야기합니다.
지수일 ㅣ 에고라이팅

30여년 동안 페루에서 여행사 운영과 여행 가이드 일을 해 온 지수일 작가는 책 ‘마추픽추의 시간을 걷는 사람’을 통해 한 장소를 오래 바라본 사람의 느낌을 기록했다. 1995년 페루 리마에 처음 발을 디딘 저자는 잠시 머물다 떠날 생각이었다. 하지만 페루는 어느새 삶의 터전이 됐고, 3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여행 가이드로 수많은 사람을 이끌며 안데스의 고원부터 아마존의 밀림, 태평양 연안의 사막까지 누볐다. 마추픽추를 수백 번 오르는 동안 그의 시선도 조금씩 달라졌다.
안개가 걷히고 돌의 윤곽이 드러난다. 산과 구름 사이에 모습을 드러낸 마추픽추는 수백 년의 시간을 견뎌온 고대 도시의 위용을 뽐낸다. 누군가에게는 평생 한 번 만나는 경이로운 풍경이지만 여행 가이드라는 직업을 선택한 저자는 달랐다. 그곳의 돌은 늘 같은 자리에 있었지만 빛을 받을 때마다 달랐고, 바람도 매번 불지만 매번 다른 방향에서 세기와 느낌이 달랐다. 그래서일까. 그곳에서 만나는 이들의 표정도 매번 달랐다.

책은 리마에서 시작해 페루의 식탁과 커피, 파라카스와 나스카의 사막, 쿠스코와 마추픽추의 돌길을 지나 아마존의 숲과 티티카카의 고원, 와라스의 설산으로 이어진다. 익숙한 여행지의 이름이지만 저자의 시선은 관광 안내서와 다르다. 명소의 위치와 특징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장소가 품은 역사와 문명,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여다본다.
페루의 음식에서는 서로 다른 문화가 만나 만들어낸 맛의 역사를 읽는다. 쿠스코의 돌벽에서는 문명과 문명이 겹쳐온 시간을 살핀다. 아마존에서는 울창한 숲의 아름다움뿐 아니라 자연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과 그들이 겪은 상처를 함께 바라본다. 한 장소를 이해하려면 그곳의 풍경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800번이라는 숫자는 특별한 기록이지만 이 책에서 더 중요한 것은 그 숫자에 담긴 시간이다. 같은 장소를 반복해서 찾는다고 해서 반드시 더 많이 알게 되는 것은 아니다. 오래 바라보고, 달라진 것을 발견하고,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의미를 읽어낼 때 비로소 장소는 새로운 얼굴을 드러낸다. 마추픽추가 매번 달라진 것이 아니라 그곳을 바라보는 사람이 달라진 것이다.
30년 동안 수많은 여행자의 발걸음을 이끈 저자는 책에서 뜻밖의 고백을 한다. 자신이 사람들을 안내했다고 생각했지만 돌이켜보면 오히려 자신을 안내한 것은 페루였다는 것이다. 가이드는 여행지의 정보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한 나라에서 오래 살아가며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경험하다 보면 설명만으로는 전할 수 없는 것들이 보인다.

이 때문에 책에서 말하는 ‘느린 시간’은 단순히 천천히 걷거나 오래 머무는 여행법을 뜻하지 않는다. 첫인상만으로 장소를 판단하지 않고 눈앞의 풍경 뒤에 쌓인 역사를 살피며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삶을 이해하려는 태도에 가깝다. 한 번 방문한 곳을 안다고 쉽게 말하지 않는 것 나아가 낯선 세계를 오래 바라보며 자신의 생각까지 돌아보는 것이 저자가 말하는 여행이다.

여행은 어디론가 떠났다가 돌아오는 일로 끝나지 않는다. 같은 길을 다시 걸으며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타인의 삶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넓히는 과정이다. 30년 동안 페루를 안내해온 저자가 독자에게 건네는 것도 새로운 여행 코스가 아니다. 한 장소를 오래 사랑하고 바라보는 법, 그리고 그 시간을 통해 사람을 이해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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