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발 짚던 소년에서 패럴림픽 영웅으로…한민수의 도전은 계속된다[이헌재의 인생홈런]

이헌재 기자 2026. 10. 18.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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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변화를 두려워하고 현실에 안주합니다. 그렇지만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한민수 스포츠윤리센터 이사장 직무대행(56)은 '도전의 아이콘'이다.

평창 패럴림픽 때 한국 파라 아이스하키 대표팀 주장을 맡았던 한민수는 당시 성화 최종 봉송 주자로 나서 인간 승리 드라마를 연출했다.

한민수는 "예전엔 지도자로서 선수들에게 어떻게 좋은 환경을 만들어 줄까를 고민했다. 좋은 라커룸 분위기에서 좋은 성적이 나왔다"라며 "윤리센터에서도 직원들의 처우와 일하는 환경을 더 좋게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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떳떳하게 의족을 드러낸 한민수 스포츠윤리센터 이사장 직무대행. 한민수 제공
“사람들은 변화를 두려워하고 현실에 안주합니다. 그렇지만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한민수 스포츠윤리센터 이사장 직무대행(56)은 ‘도전의 아이콘’이다. 평생 장애인으로 살아오면서 수많은 편견에 시달려 왔지만 그는 도전 정신 하나로 비장애인 못지않게 도전적인 삶을 살아왔다.

한민수를 상징하는 최고의 장면은 단연 2018년 3월 평창 패럴림픽 개회식이라고 할 수 있다.

평창 패럴림픽 때 한국 파라 아이스하키 대표팀 주장을 맡았던 한민수는 당시 성화 최종 봉송 주자로 나서 인간 승리 드라마를 연출했다. 왼발에 의족을 낀 그는 성화를 등에 진 채 두 팔로 줄을 당기며 한발 한발 가파른 슬로프를 올랐다. 그리고 최종 공동 점화자인 평창 겨울올림픽 여자 컬링대표팀 주장 김은정과 휠체어컬링 대표팀 주장 서순석에게 성화를 전달한 후 두 팔을 번쩍 들고 활짝 웃었다.
한민수가 2018 평창 겨울패럴림픽 개회식에서 의족을 한 채 성화를 등에 매달고 로프에 의존해 암벽을 타듯 성화대로 향하고 있다. 평창=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드라마는 그게 끝이 아니었다. 한국 파라 아이스하키 대표팀은 평창 패럴림픽 동메달 결정전에서 이탈리아를 꺾고 기적 같은 동메달을 따냈다. 선수들은 링크 한가운데에 모여 “대∼한민국”을 외치며 눈물을 흘렸다. 그 대회를 끝으로 한민수는 18년간 입었던 국가대표 유니폼을 벗었다. 당시 그의 나이 48세였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그가 선수로서, 또 성화 최종 봉송 주자로 그렇게 높은 자리에 오를 것이라 생각 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한민수는 류머티즘 관절염을 안고 태어났다. 보다 못한 부모가 그를 두 달 때 점쟁이에게 데려갔는데 의사도 무엇도 아니었던 그는 무릎에 침을 꽂았다. 결국 그는 어린 시절부터 목발을 짚고 다닐 수밖에 없었다.

편견 없이 그를 받아 들여준 친구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놀리고 괴롭히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는 목발을 집어 던지며 싸웠다. 스무 대를 맞아도 한 대를 때렸다. 중학교,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싸움은 반복됐다. 어느 날 가을 그는 목발을 짚고 거리를 걸어가다 대형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됐다. 한민수는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너무 추해 보였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펑펑 울었다.
한민수는 은퇴 후 의족을 드러낸 반바지를 입고 패션쇼 런웨이 위에 섰다. 한민수 제공
고교를 졸업하고 먹고 살기 위해 그는 갖은 일을 다 했다. 자동차 열쇠를 만드는 일을 했고, 오디로 수리사로도 일했다. 불편한 다리로 쌀 배달을 하기도 했다.

그를 지탱해 준 건 운동이었다. 학창 시절부터 그는 운동을 좋아했다. 목발을 짚고 친구들과 함께 축구를 했다. 그 친구들이 정말 대단했던 건 목발로 공을 차를 그를 편견 없이 함께 했던 것이다.

웨이트 트레이닝도 열심히 했다. 벤치 프레스로 100kg 가까이 들어 올린 그는 장애인 역도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그런데 장애인 역도 선수들은 250kg를 번쩍 들어 올리고 있었다. 세상의 높은 벽을 절감한 그는 낮에는 직장생활, 밤에는 장애인 역도와 농구에 열중했다.

2018년 평창 겨울 올림픽 및 패럴림픽 유치가 그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줬다. 때마침 그는 2000년부터 첫 장애인 아이스하키 클럽팀인 연세이글스에서 뛰고 있었는데, 패럴림픽을 열게 된 강원도청이 2005년 실업팀을 창단한 것이다. 한민수는 “이전까지는 운동을 나갈 때마다 ‘운동이 밥 먹여 주냐’는 말을 듣곤 했다. 그런데 강원도청에 입단하면서 운동으로 밥을 먹을 수 있게 됐다. 아낌없는 지원 덕에 패럴림픽 메달을 딸 수 있었다”고 말했다.
보디빌딩 대회에 나선 한민수. 한민수 제공
본격적인 ‘도전자 인생’은 평창 패럴림픽 이후 시작됐다. 한민수는 평창 패럴림픽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나레이터를 맡은 배우 신현준과 친분을 쌓았다. 그리고 신현준의 소개로 박윤희 디자이너를 소개받았다. 박 디자이너는 그에게 패션쇼에 서 볼 것을 권했다. 한 달을 꼬박 준비해 2019년 서울패션위크 런웨이를 걸었다. 박 디자이너는 그에게 의족이 드러나는 반바지를 입혔다. 한민수는 “이전까지 내겐 장애는 감춰야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패션쇼를 통해 장애는 드러냈을 때 오히려 당당한 것이라는 걸 알게 됐다”라며 “이후 여름이면 곧잘 반바지를 입는다. 아이들이 신기해하면 ‘아저씨는 로봇 다리를 갖고 있다’라고 말해주곤 한다”고 했다.
한국 파라 아이스하키 대표팀의 주장 한민수가 10일 강릉 하키센터에서 열린 일본과의 예선 B조 1차전에 출전한 모습. 수비수인 그는 온몸을 던지는 플레이로 팀의 4-1 승리를 이끌었다.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같은 해엔 보디빌딩 대회에도 출전했다. 은퇴 후 쪘던 살을 12kg이나 감량했다. 시범경기였지만 그가 무대에 서자 관중들은 물론 심판들까지 모두 일어나 기립박수를 쳤다. 이후 장애인 보디빌딩은 정식종목이 됐다.

당시 그의 모습을 본 사람 중에는 현재 피트니스 스타가 된 김나윤 씨도 있었다. 헤어 디자이너였던 김 씨는 오토바이 사고도 왼팔을 잃었다. 한민수는 “김나윤 씨가 자신도 보디빌딩에 도전하겠다고 하더라”라며 “이전까지 내 도전은 나의 한계를 알아보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내 도전이 누군가에겐 희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그는 자비를 들여 미국으로 건너가 USA아이스하키 자격증을 땄다. 2022년 베이징 패럴림픽 때는 대표팀 감독을 지내며 대회 4위를 했다. 혹시 장애인 선수들을 태우고 다닐지 몰라 버스를 몰 수 있는 대형면허도 취득했다. 최근에는 스킨 스쿠버 오픈윈터 자격증도 땄다.

장애를 떳떳하게 받아들인 그는 최근까지 어린 선수들을 발굴하면서 동기부여 강연가로 활동해 왔다. 평창기념재단의 반다비 체험 사업을 통해 전국 초중고 학생 3만5000여 명에게 파라 썰매 체험 및 장애인식 개선 강연을 해왔다.

한민수는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다. 중도 장애인이 90%가 넘는다”라며 “장애는 극복하는 게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이다. 내 삶의 이야기가 누군가가 세상 밖으로 나오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도전은 포기만 안 해도 성공”이라고 했다.
한국 파라 아이스하키 감독 시절의 한민수. 한민수 제공
현재 그는 스포츠 행정가로서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2년 전 스포츠윤리센터 이사직을 맡았던 그는 올 초 전 이사장이 개인 사정으로 사임하면서 이사장 직무대행을 맡고 있다.
스포츠윤리센터는 스포츠계에서 발생하는 각종 (성)폭력이나 인권침해 등의 문제를 조사하고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설립된 기관이다. 업무 성격상 적지 않은 인력과 예산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사건접수 역시 매년 늘고 있다. 한민수는 “예전엔 지도자로서 선수들에게 어떻게 좋은 환경을 만들어 줄까를 고민했다. 좋은 라커룸 분위기에서 좋은 성적이 나왔다”라며 “윤리센터에서도 직원들의 처우와 일하는 환경을 더 좋게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민수 스포츠윤리센터 이사장 직무대행이 윤리센터 마스코트 미오 앞에 함께 섰다. 이헌재 기자
한민수는 요즘도 스트레스를 운동으로 푼다. 집에 설치한 웨이트 트레이닝 기구를 통해 매일 2, 3시간은 꾸준히 운동한다. 한민수는 “체육 인권 강화는 물론 직원들의 복지까지 책임감을 가지고 챙기려 한다. 장기적으로는 ‘한민수재단’을 세워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스포츠로 하나 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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