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년째 사랑하고 배신한다…‘클로저’는 왜 늙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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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에 태어난 연극이 2026년에도 새 캐스팅으로 돌아왔다. 패트릭 마버의 '클로저(Closer)'다.
왜 '클로저'는 29년이 지나도록 관객에게 여전히 가까운(Closer) 연극일까.
'클로저'의 29년 전 에피소드들은 지금 우리의 일상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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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런던 초연, 국내 11번째 시즌 맞은 ‘클로저’ 29년 전 온라인 채팅과 가짜 신분…SNS 시대에도 낯익은 사랑 문근영·이윤지·안소희·전성민, 배우마다 달라지는 앨리스 대본은 그대로, 관객은 나이를 먹는다…거듭 봐도 새로운 이유

영국 런던에서 초연한 지 29년. 국내에서는 2005년 처음 무대에 오른 뒤 2010년, 2013년, 2016년, 2024년 등을 거쳐 2026년 11번째 시즌을 맞았다. 연극 한 편이 20년 넘게 배우를 바꿔가며 다시 관객을 만나는 일은 흔하지 않다.
왜 ‘클로저’는 29년이 지나도록 관객에게 여전히 가까운(Closer) 연극일까.
네 남녀의 이야기다. 부고 기사를 쓰며 작가를 꿈꾸는 댄은 거리에서 앨리스를 만나 연인이 된다. 앨리스의 삶을 소설로 쓴 그는 사진작가 안나에게 끌리고, 피부과 의사 래리까지 끼어들면서 네 사람의 사랑은 꼬이기 시작한다. 사랑하고, 속이고, 의심하고, 헤어진다. 사건만 놓고 보면 전형적인 멜로드라마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런데 세부를 들여다보면 얘기가 꽤 달라진다.


기술은 달라졌지만 사람은 변하지 않았다. 네 사람은 상대의 과거를 알고 싶어 하고, 누구를 더 사랑했는지 확인하려 들며, 듣고 나면 상처받을 답까지 끝내 묻고 만다. SNS가 없던 시대의 사람들이지만 행동은 지금과 차이가 없다. 연락과 관계의 도구는 몇 번이나 바뀌었지만 질투와 소유욕은 새 버전을 내놓지 않았다.

‘클로저’가 재공연에 강한 또 다른 이유는 배우에게 맡겨진 몫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앨리스가 그렇다.
앨리스는 자신의 과거를 다른 사람에게 털어놓지 않는다. 정체를 짐작할 만한 말을 남기지만 그것마저 사실인지 확신하기 어렵다. 그런데 공연이 끝난 뒤 대사를 되짚어보면 거짓말처럼 들렸던 말들 가운데 진실이 숨어 있었음을 알게 된다. 배우가 어느 대사에 힘을 주고 어떤 말에 슬픔을 담느냐에 따라 앨리스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어떤 배우의 앨리스는 베일에 싸인 여자였고, 어떨 때는 쉽게 사랑하고 쉽게 돌아서는 사람으로 보였다. 자신의 삶 대부분을 거짓으로 감춘 여자로 읽히는가 하면 진실과 거짓말 사이에서 어쩔 수 없이 침묵과 이별을 선택한 사람이 드러나기도 한다. 사실 어느 하나의 해석만 맞다고 하기 어렵다. 희곡 안에는 그 모든 가능성이 함께 들어 있을 것이다.

‘클로저’를 다시 보는 재미는 배우가 바뀌는 데에만 있지 않다. 관객도 그사이 나이를 먹고, 사랑하고, 헤어진다. 스무 살에는 앨리스의 당당함이 쿨해 보였다면, 마흔 살에는 그가 왜 떠날 수밖에 없었는지 헤아리게 된다. 대본은 그대로지만, 세월이 흐르면 관객의 눈에 들어오는 인물도 달라지는 것이다.
세상은 ‘클로저’보다 훨씬 빨리 변했다. 그런데 사랑에 빠진 인간은 생각보다 멀리 가지 못한 모양이다.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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