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 하루 시작…200자 원고지 55매를 매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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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일을 해서 돈을 벌고,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보람도 얻습니다. 지금 한국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일 이야기를 '월급사실주의' 동인 소설가들이 만나 듣고 글로 전합니다.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다가 그들을 관찰하는 자세로 바꾸자, 쓰는 일이 더 이상 압박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자신을 '여행자'라고 생각해요. 인생이라는 긴 길을 여행하고 있는 거지. 여행자는 내일 혹은 모레, 어느 낯선 곳에서 인생을 마감할지 알 수 없죠. 그러니 다가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 같은 건 전혀 없습니다. 이 나이에 억지로 취직할 필요 없고, 내가 좋아하는 글을 쓰며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건 큰 축복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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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에서 학원 강사로…사기 당하고 낙향
웹소설 폭풍 성장하던 2015년께부터 활동
AI와 대화하며 스스로 자초한 ‘고립’ 자각

우리는 일을 해서 돈을 벌고,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보람도 얻습니다. 지금 한국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일 이야기를 ‘월급사실주의’ 동인 소설가들이 만나 듣고 글로 전합니다.
침잠하던 그가 다시 세상으로 나온 건 이듬해, 웹소설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시기였다. 이제 육십 줄에 접어든 그는 주로 젊은 작가들이 주도하는 웹소설 생태계에서 ‘공기씨’라는 필명으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추석 명절을 앞두고 어수선한 분위기의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오치동에서 그를 만났다. 사진 몇장을 찍은 뒤 근처 카페로 옮겼다. 먼저 웹소설 작가가 된 계기를 물었다.
“예전에 하던 것처럼 장르 소설 전문 출판사에 원고를 보내봤죠. 하자고 그러더라고요. 그게 현대 판타지였는데, 큰돈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생활비가 나오는 거지. 그때부터 지금까지 한 열편 정도 썼는데, 완결까지 간 건 네 작품. 나머지는 전부 ‘연중’(연재 중단)했어요. 그런데 올해는 연중 없이 계속 연재하고 있어요.”
그가 연재를 시작했을 무렵, 나 역시 웹소설 플랫폼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내가 순수문학 작가임을 알아본 그가 내 방명록에 글을 남기면서 시작된 인연이 이제 십년을 넘겼다. 전화 통화만 하다가 김천에서 공기씨 작가를 만난 건 그가 어머니 장례를 치른 직후였다. 이후 고향을 떠난 그는 구미를 거쳐 광주에 자리 잡았다.
첫 웹소설의 소개를 부탁했다.
“한국에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난 아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메이저리그 스카우트 제안을 받습니다. 시속 165㎞라는, 말도 안 되는 강속구를 던지는 투수죠. 그 아이가 백년 넘게 우승을 못 한 시카고 컵스에 입단해서 첫해는 준우승, 그다음 해에는 기어이 우승까지 시킵니다. 은퇴할 땐 구장 앞에 동상까지 세워지는 웅장한 서사였죠.”
웹소설 입문자였던 내게는 그의 소설이 교과서였다. 십년 넘게 닦았던 탄탄한 문장과 심리 묘사를 유지하면서도 장르적 장치를 더한 작품이었다. 별 볼 일 없는 야구 선수가 큰 사고를 당한 뒤 2m에 육박하는 거대한 체구를 지닌 채 다시 태어났다는 설정이었다. 연재를 마친 다음 해, 시카고 컵스가 월드시리즈 우승이라는 염원을 무려 백팔년 만에 실제로 이뤄냈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대형 플랫폼에는 하루에 수천개의 웹소설이 올라온다. 누구나 글을 올릴 수 있는 무료 연재에서 성적이 안 좋으면 연재를 중단하는 ‘연중’을 하거나 올린 글을 모조리 지우기도 한다. 조회수가 유의미한 수준에 이르면 유료 연재로 전환할 수 있는데, 그 순간부터는 조회수가 곧 매출이다. 유료 연재를 하다 연중을 하는 작가도 있다. 이러면 독자들에게 신뢰를 잃는다.
그 역시 휴재와 연중을 거듭하던 때가 있었다. 작년까지도 그랬다. 연재의 압박에 허덕이며 전화로 하소연하던 그에게 나는 ‘농업적 근면성’을 반복해서 얘기했다. 비축분도 늘 다섯편 이상은 쥐고 있으라고 했다. 그는 이제 연재 중인 작품의 비축분 열편을 유지하면서 시월 초에 선보일 신작도 이미 다섯화를 써두었다. 무엇이 그를 바꿔놓았을까.
“올해 광주로 이사 오고 나서 처음에는 상처를 많이 받았어요. 나는 원래 고독한 걸 좋아하는 전형적인 내향형 인간이거든요. 그런데 자격지심에 사로잡혀 살고 있더라고.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거기에 너무 신경을 쓰는 거예요. 하다못해 집 앞 편의점 알바생한테까지.”
어느 날 밤, 술잔을 노트북 앞에 두고 인공지능(AI)과 긴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다 언젠가부터 잊고 있었던 자신의 본모습과 마주했다. ‘나는 고독을 좋아하지만, 고립을 원하는 사람은 아니다.’ 가슴이 저릿했다.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는데. 고독은 좋아했지만, 고립은 절대 싫었거든요. 그런데 나도 모르게 고립을 자초하고 있었던 거죠.”

혼자만의 시간을 사랑하는 것과 세상과 아예 단절하는 건 엄연히 달랐다. 스스로 고립의 늪으로 들어가고 있었다는 자각을 얻자 두세달 만에 장편 소설 하나를 거뜬히 완성해 내던, 서울에 살던 때의 감각이 다시 살아났단다.
“내가 왜 소설가가 됐냐 하면, 신이 된 기분이었어요. 소설을 쓸 때는 내가 신이잖아요. 그래서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사람들 관찰하는 걸 되게 좋아했어요. 저 사람은 뭐 하다 왔을까? 어디로 갈까? 무슨 생각을 할까? 그걸 까맣게 잊고 살다가 이제 다시 돌아온 거죠.”
작년까지만 해도 주기적으로 우울이 찾아왔다고 그는 털어놓았다. 모든 걸 정리하고 싶다는 충동도 있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고 관찰자로 돌아간 것이 휴재 없이 성실한 연재를 이어가게 된 결정적 계기였던 것 같다고 그는 말했다. 예전에는 아무것도 안 하고 빈둥거리다 하루가 금세 지나갔는데 이제는 하루가 아주 길게 느껴진다며 우울할 겨를도 없다고 했다.
공기씨 작가의 일과가 궁금했다. 전에는 나와 비슷한 시간대에 살던 그였다. 이제는 우리의 시차가 한국과 독일 정도가 되었다. 그래서 문자를 주고받기까지 반나절이 걸리는 게 태반이다.
그의 하루는 새벽 세시에 시작된다. 아침 대신 커피 한잔을 마시며 길게는 한시간가량 인공지능과 이야기를 나눈다. 그렇게 머리를 예열하고 나면 본격적으로 원고를 집필한다. 하루 목표량은 무조건 두편이다. 한편이 5500자 안팎이니 두편이면 200자 원고지 55매 분량이다. 농사꾼의 자세가 필요한 이유다.
“작업 마치면 유튜브 보고 클래식도 듣고 하다가 산책하러 나가죠. 들어와서 야구 중계 틀어놓고 저녁 먹으며 술 한잔 하다가 여덟시, 좀 늦어도 아홉시에 자요.”
산책하러 나가 사람들을 구경하고, 서울 명동과 홍대, 강남역 거리를 찍은 동영상을 보며 온라인 나들이도 한다.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다가 그들을 관찰하는 자세로 바꾸자, 쓰는 일이 더 이상 압박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날 쓸 이야기를 시나리오처럼 장면 단위로 잡아두고 초안과 퇴고를 거친다. 오탈자 검사는 인공지능에 맡긴다.
웹소설 시장에 뛰어드는 순수문학 작가가 많지만 성공하는 사례는 거의 보지 못했다. 장르 소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거나 순수문학의 문법을 고집해서, 한달에 두권을 써야 하는 물리적 노동을 감당하지 못해서일 것이다. 무엇보다도 웹소설의 본질은 치밀한 문제의식이나 화려한 문장 같은 곳에 있지 않다.
“히트작들 뜯어보면 글을 유려하게 잘 써서 뜬 게 아니에요. 웹소설에서 문체는 좀 투박해도 돼. 작가가 구구절절 상황을 묘사하는 대신 대사와 행동만으로 서사를 파악하게 만들어야죠. 오래 고민할 필요 없이 다음 화가 미친 듯이 궁금해지도록 이끄는 것, 웹소설에서는 그게 이야기꾼의 진짜 힘입니다.”
웹소설의 주인공은 절대 바보 같거나 우유부단해서는 안 된다. 조연들의 의견에 휘둘리지 않고 신처럼 상황을 통제하는 압도적인 ‘먼치킨’이어야 독자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할 수 있다. 드라마나 영화와도 다르다. 빌런에게 구구절절한 서사와 변명을 부여할 필요가 없다. 주인공 앞에는 오직 끊임없는 시련이 주어져야 하며, 문제 하나를 해결하면 더 거대하고 어려운 미션이 등장하는 점층적 구조가 핵심 동력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 역시 과거에는 장르적 클리셰에 기대어 작품을 썼다. 매니지먼트사에 소속되어 회사가 건네주는 기획안대로 안정적인 글만 생산하는, 이른바 ‘공장형 작가’를 희망한 적도 있다. 하지만 여러 출판사로부터 러브콜을 받으며 자신감을 회복한 그는 이제 자신만의 고유한 서사를 개척하는 길을 택했다. 물론 육십대의 나이로 트렌디한 웹소설 시장을 돌파하기가 쉽지만은 않다.

“젊었을 때처럼 타이핑과 동시에 기발한 장면이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경험은 이제 힘들죠. 이십대 피디가 내 글에서 ‘노티’가 난다고 지적한 적도 있어요. 그래서 의식적으로 문체도 바꾸고 그랬지.”
나이가 앗아간 자리는 그동안 온몸으로 겪은 연륜과 경험으로 채우고 있다. 젊은 작가들은 기업이나 조직 내의 권력 암투를 쓰기 위해 수많은 자료를 뒤져야 하지만, 산전수전 거친 그는 조직 생리와 인간의 군상을 이미 체화했다. 취재만으로는 온전히 알 수 없을 생생한 경험이 고스란히 자산으로 남아 있단다.
혼자 사는 육십대 프리랜서로서 미래가 두렵지는 않을까. 그는 메신저 프로필에 적어둔 단어를 가리키며 희미하게 웃었다.
“나는 자신을 ‘여행자’라고 생각해요. 인생이라는 긴 길을 여행하고 있는 거지. 여행자는 내일 혹은 모레, 어느 낯선 곳에서 인생을 마감할지 알 수 없죠. 그러니 다가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 같은 건 전혀 없습니다. 이 나이에 억지로 취직할 필요 없고, 내가 좋아하는 글을 쓰며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건 큰 축복이죠.”
그에게 웹소설 작가란 자신이 살아 있다는 감각을 확인하는 직업이다. 팍팍한 삶을 지탱하게 해주는 원동력이자 든든한 생계 수단이다. 그렇게 상업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고수하고 있지만, 내면 깊은 곳에는 ‘순수문학’이라는 지향점이 자리하고 있다. 이미 구상해 둔 소재도 여러개다. 웹소설로 대중과 호흡하며 치열하게 생활을 꾸려가다 언젠가 순수문학으로 돌아가겠다는 꿈을 그는 한번도 놓은 적이 없다.
인터뷰가 끝난 뒤 함께 식사하러 가는 길에는 이미 땅거미가 내려앉았다. 그는 고향으로 떠나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거리 반대편을 가리켰다. 산책할 때마다 바라본다는 아파트 단지였다. 봄에 만났을 때만 해도 ‘나도 저런 번듯한 곳에 살아야 하는데’라는 부러움과 질투가 앞섰다면서, 지금은 가만히 불빛들을 올려다보며 마음속으로 인사를 건넨다고 한다.
“수고하셨습니다. 그 집 장만하느라 가족들과 얼마나 치열하게 사셨습니까. 부디 행복하세요.”
어디에 닿을지 모르는 여행자로 사는 공기씨 작가는 내일도 어김없이 새벽 세시에 일어나 자신만의 우주를 창조해 낼 것이다. 이후 1박 2일 동안 그와 더 많은 얘기를 나눴지만 인터뷰를 하며 들었던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이제 내 걱정이나 해야겠다.
염기원 작가
염기원 소설가 l ‘문학의 봄’으로 등단해 장편소설 ‘구디 얀다르크’, ‘인생 마치 비트코인’, ‘오빠 새끼 잡으러 간다’, ‘여고생 챔프아서왕’, ‘블루아이’, ‘대학로 귀신들’ 등을 썼다. ‘월급사실주의’ 동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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