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저는 인간의 미래를 낙관하지 않습니다 [황정은·허태임 교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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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에 관한 선생님의 글을 읽습니다.
10여 년 전에 저는 제주의 한 숙소에서 깨진 찻잔을 들어 올린 일이 있습니다.
그들처럼 기후 재난의 최전선으로 몰린 존재들이 지금 겪는 일을 생각하면 우리 인간, 그중에서도 대도시 중심으로 생활하는 인간들의 실감은 너무도 얄팍한 게 맞습니다.
선생님과 같은 식물 연구원들이 들려주는 나무들 이야기가 지금 가장 필요한 그 질문으로 우리를 안내하는 길잡이 별 역할을 하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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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1일 토요일
복원에 관한 선생님의 글을 읽습니다.
10여 년 전에 저는 제주의 한 숙소에서 깨진 찻잔을 들어 올린 일이 있습니다. 보리와 콩을 보관하던 오랜 창고를 개조한 숙소였는데 앞마당에 로즈메리가 덤불로 우거져서 집 안 어디에서나 허브 냄새가 났지요. 베개며 이불에도 로즈메리 향이 배어 있어서 밤잠을 제대로 설친 저는 새벽에 부엌으로 나가 선반에 놓인 찻잔을 보았습니다. 귀 모양으로 멋지게 휘어진 손잡이가 달린 도자기 찻잔이었지요. 거기에 커피를 담아 마시려고 손잡이를 잡고 들어 올린 순간, ‘달캉’ 소리를 내며 찻잔이 쪼개졌습니다. 조금 전까지 찻잔이었던 사물이 세 조각으로 쪼개져서 잔 받침 위로 누워버렸어요. 아마도 누군가 컵을 깬 뒤 ‘원래대로’ 그 자리에 맞물려 놓았던 것일 테지요. 제 손엔 손잡이만 남았습니다. 평범한 찻잔을 쥔 것처럼 손잡이를 검지에 걸고 선 채로 저는 겁을 좀 먹었던 것 같습니다. 돌이킬 수 없는 일 뒤에 헛것을 쥐고 있다는 감각, 이것을 앞으로도 오래 잊을 수 없겠다는 예감이 있었지요.

‘복원’이나 ‘회복’이라는 말을 만나면 저는 그날의 무게를 생각합니다. 돌이킬 수 없는 일, 이후를 말입니다. 선생님의 말처럼, 완전한 복원은 아무래도 가능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원래(原來)의 원(原)이 파괴된 상태에서 ‘원래대로’라는 욕망을 품는다는 것은, 혹은 그것을 요구한다는 것은 얼마나 터무니없는 일일까요. 다만 어떤 임계의 전후, 쪼개지기 전과 후가 있을 뿐인데요. 그러니 손상이나 파괴 이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어떻게든 그 손상을 삶으로 안아보고 이어보는 ‘노력-애씀’일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죽음이라는 마지막 매듭에 이를 때까지 모든 걸 과정으로 여기고, 견디면서요. 또 사람은 손상되고 슬픈 와중에도 무언가를 기쁘고 아름답게 여길 수 있고, 사랑하거나 그리워할 수 있는 존재라서 그게 가능할 거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혼자서 그 ‘노력’을 하기란 또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안부를 묻고 마음을 건네는 일이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저는 요즘 새삼 알곤 합니다. 이렇게 선생님과 편지를 나누는 일로도 말이지요.
어두운 마음으로 지난 편지를 드리고 실은 적잖은 후회를 했습니다. 어리광을 부린 것 같아 창피하기도 했어요. 아니나 다를까, 선생님을 걱정하게 만들고 속상하게 해 미안합니다. 그래서 농담을 조금 곁들이자면, 선생님, 정말 바닥으로 “던져지기 직전”으로 돌아간다면 저는 아직 세상에 없음입니다. 그보다는 던져진 이후가 좋아요. 저는 던져졌고, 찻잔은 깨졌고, 다른 모든 생명이나 사물처럼 제게도 금 간 데가 있고 또다시 금이 갈 일도 있겠지만, 지금이 저는 좋습니다. 그것이 모두, 존재하는 동안 겪는 일이니 말입니다.
가장 최근에 어떤 영화를 누구와 보았는지를 물으셨지요. 아마도 제 곁에 ‘이웃’이 있는지를 묻는 질문인 것 같다는 생각에 ‘영화’와 ‘이웃’에 관한 생각을 한참 했습니다. 직접 기른 채소와 청계 알을 선생님과 나누고 선생님의 곁에서 〈나무의 노래〉를 함께 관람한 주민들 중에 누군가를 제가 만나기도 했을까,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백두대간 수목원을 방문했을 때 선생님의 소개로 저도 짧게 인사를 나눈 분들이 있었지요. 수목원 입구에서 사과를 팔던 주민분들 말입니다. 그때 선생님이 제게 사과를 사주고 싶다고 좀 수줍게 말씀하셨는데 제가 한사코 사양을 했습니다. 숙소에 돌아와서 많이 후회했습니다. 사달라고 할걸, 많이 사달라고 할걸, 선생님에게도 선생님의 이웃에게도 좋을 일을 내가 미숙해 ‘폐’라고만 생각했다고요.
광장에서 느낀 이웃의 경험
서로의 일상으로 연결된 이웃과 함께 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 기회는 서울 같은 대도시나 수도권에 있는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서는 좀처럼 겪기가 어려운 일이지요. 특별한 공동체가 상영관을 통째로 임대해 관람객석을 채우는 인위적인 우연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영상매체에 과민하게 반응하곤 해서 지금은 영화를 거의 보지 않지만 어릴 때 저는 영화를 꽤 자주 보았습니다. 심심할 때마다 아버지의 수리실이 있던 종로나 광화문 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무작정 타고 나갔고 종로 아무 데나 내려서 걷다가 코아아트홀이며 단성사, 서울극장으로 들어가 영화를 보았어요. 그런 다음엔 극장 앞 분식점에서 1000원 메뉴로 팔던 우동이나 떡볶이를 먹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까지가 제 어린 시절 놀이였습니다(이렇게 노는 데 드는 비용은 대부분 어머니의 비밀 지갑에서 훔친 돈이었습니다). 그 시기엔 같은 영화를 자주 반복해 보았습니다. 다음 장면을 아는 이야기를 볼 때의 편안함이 좋기도 했지만, 내가 재미있게 본 장면을 재미있게 보는 사람들 사이에 앉아 있는 게 저는 좋았습니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서는 그런 기쁨을 별로 느끼지 못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우연히 곁에 앉은 사람들을 ‘나의 관람’에 방해가 될 수 있는 존재로 여기는 분위기가 영화관에서 느껴졌고 그게 좀 치사하고 불편해서 영화관을 점차로 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수많은 영화관들이 사라지고 깔끔한 쇼핑몰과 연결된 멀티플렉스 영화관만 남은 뒤부터 서서히 그렇게 된 것 같다고 저는 느낍니다만, 이 이야기를 하려면 조금 더 긴 글과 더 많은 생각이 필요하겠지요.

선생님이 말씀하신 ‘이웃의 경험’을 저는 시위나 집회가 열리는 광장에서 느끼곤 했습니다. 내 삶과 연결된 사람들 곁에 앉아 지금의 삶과 다가올 삶을 생각하는 일 말입니다. 그런 순간들의 원형이랄까, 씨앗이라고 제가 기억하는 날들이 있습니다. 2000년대 중반이니 벌써 20여 년 전 일입니다. 당시에 저는 서울 서쪽, 공항동 이주단지 가장자리에서 방을 얻어 살았습니다. 시내로 나가는 버스를 타려면 복개천과 논을 건너고도 한참 걸어야 하는 동네였지요. 2005년에서 2007년 사이에 일대의 재개발과 연결되어서 이 복개천이 도로로 정비되었습니다. 지금은 ‘방화대로8길’이라는 이름이 붙은 4차로 도로가 이때 만들어졌고 가로등이 생기고 가로수가 섰지요. 폭 20m, 길이 300m쯤 되는 이 도로는 수일 동안 개통되지 않고 말쑥하게 비어 있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밤부터 인근에 사는 주민들이 그 도로에 모여 놀기 시작했습니다. 여름이 시작될 무렵이었는지 끝나갈 무렵이었는지 정확한 계절은 기억나지 않습니다. 덧옷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밤 기온이 적당했고 이제 막 심긴 벚나무 가로수들엔 잎이 얼마 없었습니다. 고만고만하고 비슷비슷하게 생긴 빌라들로 이루어진 조용하고 구석진 동네에서 평소엔 사람 보기가 어려웠는데,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 도로로 나와서 줄넘기를 하고 배드민턴을 하고 달리기를 하고 개를 산책시키고 바람을 쐬었지요.
열흘도 되지 않는 짧은 기간이었다고 저는 기억합니다. 밤마다 그 도로로 나가서 사람들이 그 장소를 얼마나 좋아하는지를 보았습니다. 한밤에 슬슬 나타나 본래 용도와는 다른 용도로 그 장소를 즐기는 사람들 면면이 사랑스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어요. 저는 그때 비로소 이웃이 궁금했습니다. ‘이웃’이라는 말을 단지 말이 아닌 말뜻으로 보기 시작한 날들이기도 했습니다.
8월8일 토요일
선생님, 오랜만에 밤이 서늘합니다. 어제가 입추였는데 그 영향인지, 혹은 남쪽에서 대기를 휘젓고 있는 태풍 영향인지, 파주엔 오늘 서늘한 밤바람이 불고 있어요. 비가 많이 내린다면 그건 또 걱정이겠지만 저는 오늘 모처럼 밤을 쾌적하게 보내고 있습니다. 벌써 한 달 넘도록 더위며 열파에 시달리고 있으니까요. 어제는 한낮에 다락방 온도가 35℃를 넘어서 에어컨디셔너를 켜야 했습니다. 더위를 고스란히 느끼며 끈적하게 앉아 있을 때에도 냉방에 머리가 멍해진 채 앉아 있을 때에도 집중이 잘 되지 않습니다. 여름은 이제 원고를 쓰기에 적당한 계절이 아닌 것 같아요.
밤에도 공기가 식지 않아서 30℃를 웃도는 요즘 같은 날씨엔 달리는 속도를 많이 늦춰야 합니다. 평소보다 느리게 달리는데도 심박수가 크게 올라요. 들이마시는 공기가 뜨거워서 달리기를 멈춰도 체온이 식지 않고요. 재작년 여름에 달리다가 170대에서 40대로 갑자기 심박수가 떨어지는 바람에 늘 다니던 산책로에서 엎드린 적이 있어서 이런 날씨엔 조심조심, 거의 걷는 것처럼 천천히 달립니다. 달리며 보니 호수를 둘러싼 낙우송과 메타세쿼이아 나무들 잎이 붉어졌어요. 이 광경을 서너 해 전에 보고 올해 또 봅니다.
제가 땀을 줄줄 흘리며 원고를 쓰고 더우면 냉방기를 켜고 서늘한 밤바람에 즐거워하고 평소처럼 트랙을 도는 오늘 같은 날에도 선생님의 구상나무들은 죽어가고 있겠지요. 그들처럼 기후 재난의 최전선으로 몰린 존재들이 지금 겪는 일을 생각하면 우리 인간, 그중에서도 대도시 중심으로 생활하는 인간들의 실감은 너무도 얄팍한 게 맞습니다. 나무를 말려 죽이는 열파가 지금 인간들이 사는 집이며 도로를 데우고 있고, 인간이 먹고 사는 농산물을 말려 죽이고, 바닷물을 데워 해양환경을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망치고 있고, 수많은 종을 멸종시키고 있다는 것을 실은 다 알면서. 결국은 인간이 이 행성에서 숨 쉬며 사는 일도 끝장낼 열파의 이름이 ‘인간’ 그 자체라는 걸 다 알면서, 그래서 마음 깊은 곳에서는 겁을 먹고 있으면서도 사람들은 이 문제에 대해서는 유독 무력감만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행성 단위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어요.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 앞에서
선생님, 저는 인간의 미래를 낙관하지 않습니다. 생활에서 소소하게 마주치곤 하는 사랑스러움과는 별개로 우리 종은, 특히 지구 북반구에 속해 자연을 자원으로 소비하며 경제적 성취를 이룬 인간들은 이 행성에서 이미 너무나 많은 큰일을 저질렀어요. 이 더위야말로 복원이며 회복이 더는 가능하지 않다는 증거일 테지요. 매해 여름이 돌아올 때마다 얇은 뼈 같은 찻잔 손잡이를 손가락에 건 채 잔 받침 위로 누운 찻잔 조각을 바라볼 때와 같은 심정으로 미래를 생각합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생각하지요.
지금만큼 이 질문이 필요한 때가 있을까요?

미래가 뻔해서 필요 없는 것이 아니라, 뻔하기 때문에 더, 말입니다.
2014년 무렵에 저는 전간기 철학자와 작가들의 책을 열심히 찾아 읽곤 했습니다. 현상학에서 실존주의와 부조리 철학으로, 부조리 철학과 실존주의에서 구조주의로 이어지는 흐름 안의 질문이 저의 질문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종말을 예감케 하는 전쟁과 전염병과 대공황을 동시에 맞닥뜨린 인간들이 이전 시대엔 엄연한 의미였던 ‘삶의 가치’라거나 ‘신을 향한 믿음’이라거나, 아무튼 길잡이라고 할 만한 것을 완전히 잃고 ‘그러면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인간 스스로에게 맹렬히 묻기 시작한 때. 그때를 이미 살아버린 사람들의 생각과 대답이 저는 몹시 궁금했습니다.
삶에는 의미가 없지만 인간은 현실 참여를 통해 의미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본 실존주의(사르트르)와 삶에는 의미가 없고 인간은 그 의미 없는 삶을 끝까지 성실하게 살아낼 수 있다고 본 부조리 철학(카뮈) 모두,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묻는 질문에 대한 열렬한 대답이었고 당시의 저는 그 대답들이 필요했습니다. 온갖 어두운 전망에도 불구하고 내가 세상을, 인간과 삶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거짓말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삶이 어떻게든 이어져야 했어요.
올해 여름에도 파주의 작은 다락방에서 저는 그 오랜 질문을 생각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다만 지금은 이 질문을 개인의 단위가 아닌 종 단위, 행성 단위로 생각해야 하는 시기입니다. 이미 늦었다고는 해도 어제보다는 오늘, 오늘보다는 내일, 더 필요한 질문일 테지요.
선생님과 같은 식물 연구원들이 들려주는 나무들 이야기가 지금 가장 필요한 그 질문으로 우리를 안내하는 길잡이 별 역할을 하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늘 미안하고, 고마워요.
어디에 계시든 건강 살피며 지내시기를 바랍니다.
선생님에게 들을 하제 마을 팽나무 이야기를 기다리겠습니다.
파주에서, 정은
황정은 (소설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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