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살처분은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 [임보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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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가을이다. 2003년에서 2004년으로 넘어가는 겨울에 살처분된 가금은 한국에서 528만 마리, 아시아 전역에서 1억 마리가 훌쩍 넘었다. 이후 살처분 수가 정점을 찍은 2016~2017년 겨울 한 철에는 약 3787만 마리가 땅에 묻혔다. 발생보다 살처분이 더 빠르게 늘어나고, 그러고도 이듬해 겨울이면 다시 발생을 반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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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가을이다. 축산업으로 새를 기르는 사람에게 겨울을 앞둔 가을은 공포의 계절이 되었다. 2003년 겨울 국내에서 고병원성 조류독감이 처음 발생한 뒤로 거의 해마다 같은 장면을 되풀이했다. 2003년에서 2004년으로 넘어가는 겨울에 살처분된 가금은 한국에서 528만 마리, 아시아 전역에서 1억 마리가 훌쩍 넘었다. 이후 살처분 수가 정점을 찍은 2016~2017년 겨울 한 철에는 약 3787만 마리가 땅에 묻혔다. 2020~2021년에는 예방적 살처분 반경을 3㎞로 넓힌 탓에 109건 발생에 약 3000만 마리를 죽였다. 발생보다 살처분이 더 빠르게 늘어나고, 그러고도 이듬해 겨울이면 다시 발생을 반복한다. 이게 방역 정책의 결과라면 잘못 가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동물복지란 동물의 삶의 질을 과학적으로 평가하고 윤리적으로 개선하는 일이다. 흔히 ‘죽임’ 자체가 동물복지와 충돌한다고 오해하지만, 동물복지가 살처분에서 묻는 것은 얼마나 죽이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죽이느냐다. 고통을 최대한 덜어야 한다는 당위는 한국 사회에서도 이미 합의되어 있다. 문제는 비용과 시간을 아끼려고 그렇게 하지 않는 관행이다.

방역당국이 인정하는 닭 살처분 방식은 사살, 전살, 약물, 이산화탄소나 질소가스 이용이다. 그러나 현장에서 닭을 직접 다루는 것은 속도와 비용을 따질 수밖에 없는 외주업체다. 현장을 본 사람이라면, 살처분 주체가 의도한 대로 닭이 가스를 마셔서 죽는 게 아니라, 끌어내는 과정에서 압사나 골절 같은 물리적 충격으로 죽는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동물을 싼값으로 다루면 복지는 떨어진다. 살처분이 긴급행동지침(SOP)대로 이뤄지려면 동물복지를 평가하는 주체가 과정에 참여해 속도와 비용을 통제해야 한다. 게다가 살처분이 잦아질수록 이런 죽음을 겪는 닭의 수도 늘어난다. 살처분되는 수를 줄이는 백신이 동물복지 측면에서도 의미를 갖는 까닭이다.
조류독감이 다음 팬데믹이 되리라는 경고는 수십 년째 이어져왔다. 1990년대 홍콩의 조류 인플루엔자(AI) H5N1 인체 감염 이후 감염은 점점 더 많은 포유류로 번졌다. 최근에는 젖소에서 사람으로 전파되며 포유류 사이의 종간 장벽이 무너졌고, 예상하지 못한 H5N5 인체 감염까지 나왔다. 빠르게 진화하는 바이러스가 엄청난 개체수로 존재한다면, 이는 일개 축산업의 흥망 문제가 아니라 공중보건의 문제다. 코로나19는 예행연습에 불과했다.
야생조류는 바이러스에 죽기도 하고 살아남기도 하면서 적응해간다. 반면 유전적 다양성이 떨어지고 갇힌 채로 사육되는 가금은 새로운 바이러스에 적응하기 어렵다. 그래서 축산업에서는 동물과 바이러스가 공존하는 상태를 처음부터 막아보려 한다. ‘차단’을 방역의 기초로 상정한다. 감염이 확인되면 숙주 집단을 통째로 없애는 살처분을 비싼 비용을 무릅쓰고 감행한다. 바이러스는 살아 있는 세포 안에서만 복제하므로, 살처분은 전파를 멈추는 효과적인 수단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런 방식을 뒤집어보면, 완전한 방역을 위해 모든 생물을 죽여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바이러스는 소독과 살처분으로 ‘사라질’ 존재가 아니라는 뜻이다. 지금의 한국 방역 정책은 규모의 경제와 클러스터화로 경쟁력과 관리 편의를 좇는다. 이는 동물복지를 해칠 뿐 아니라 바이러스에 복제와 변이의 기회를 대량으로 제공하는 정책이다.
우리는 바이러스의 유입을 차단할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물론 당장 고병원성 조류독감 백신을 도입하는 데에는 경제적·기술적 한계가 있다. 감염 개체와 접종 개체를 구분하는 검사를 체계화하려면 비용이 많이 들고, 국내 실정에 유효한 백신을 확보할 시간도 더 필요해 보인다. 그러나 정부가 백신 정책을 도입하기로 마음먹고 달려가는 것과 좌고우면하는 것의 차이는 크다. 다만 백신을 맞은 닭 안에서도 바이러스는 조용히 퍼지며 변이한다. 그래서 백신은 사육 밀도를 낮추는 정책과 함께 가야 한다. 밀집단지를 분산하고 농가별 사육 규모를 줄이는 쪽으로 축산업 정책을 바꾸지 않으면, 다음 살처분의 계절에 희생되는 것이 닭만이라는 보장은 없다.
최태규 (수의사·성공회대 동물권과 사회연구 초빙교수)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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