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 프랑스 폭동... 시청 불타고 백화점 털리고

파리/원선우 특파원 2026. 10. 18. 06:55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17일(현지 시각) 프랑스 낭트에서 열린 고물가 항의 집회에서 분노한 시위대가 복합 가전 매장 프낙(fnac) 매장에 난입하고 있다./AFP 연합뉴스

17일(현지 시각) 프랑스 전역에서 열린 대규모 시위가 약탈·방화·폭력으로 얼룩지고 있다. 이날 파리, 보르도, 릴, 리옹, 마르세유 등 주요 도시에서 주최 측 추산 80만 명(경찰 추산 50만 명)이 거리로 나와 치솟은 생활비와 연료 가격 급등에 항의했다. 이날 시위는 지난달부터 전국으로 번지고 있는 학생 시위와 맞물려 곳곳에서 과격 양상을 보였고, 파리는 사실상 무정부 상태를 방불케 하는 상황이다. 르몽드는 “전례 없는 심각한 도심 폭력 사태”라고 했다.

17일(현지 시각) 프랑스 전역에서 열린 대규모 시위가 방화·약탈·폭력으로 번지고 있다. /X

이날 오전 파리 북동쪽 시위 거점인 레퓌블리크 광장에서 열린 시위는 초반엔 참가자들이 프랑스 국가 ‘라마르세예즈’를 악기로 연주하며 합창하고, 행진을 하는 등 대체로 평화롭게 진행됐다. 그러나 시위대가 루브르 박물관 일대 중심가에 진입하기 시작한 오후부터 일부 참가자는 폭도로 돌변했다.

시위대는 2018년 정부의 유류세 인상 조치에 항의했던 ‘노란 조끼’ 운동을 계승한다는 의미로 노란 조끼를 입고 나왔다. 프랑스 주요 노동조합 노동총연맹(CGT)은 이날 전국 1750곳에서 집회가 열렸다고 밝혔다.

파리 중심가의 라파예트 백화점, 셀린느·디올 등 주요 명품 매장을 비롯해 휴대폰 매장, 슈퍼마켓 등이 과격 분자들의 표적이 됐다. 이들은 사다리나 시위대 진입 저지용 울타리를 들고 공성전을 하듯 매장의 문을 파괴하고 마구잡이로 들어가 물건을 움켜쥐고 달아났다. 일부 폭도는 경찰차에 돌과 물건을 던졌고 거리 곳곳엔 돌덩이가 굴러다녔다.

방돔 광장, 샹젤리제 거리 등 파리 주요 지점은 복면과 마스크를 착용한 채 폭죽 등을 던지는 시위대와 최루가스, 물대포 등을 동원한 경찰이 충돌해 전쟁터로 돌변했다. 광장에 주차된 승용차엔 누군가 불을 질러 화염과 시커먼 연기가 연신 솟아올랐다.

에마뉘엘 그레구아르 파리시장은 “피해 규모가 막대하고 엄청난 수준”이라며 “파리 전역의 거리가 조직적으로 파괴됐다”고 했다.

제2 도시인 남부 항구도시 마르세유에서는 도심 상점들과 경찰서가 시위대에 의해 파손됐으며, 시청 건물이 시위대에 한시적으로 뚫리는 일도 벌어졌다.

시청에 난입한 사람들은 무정부주의를 상징하는 철자 ‘A’를 벽면에 그리는가 하면, 1789년 프랑스혁명 당시 왕권 억압의 상징이던 바스티유 감옥이 군중의 습격을 받은 것에 빗대 “우리는 바스티유를 점령하러 간다”고 외쳤다.

17일(현지 시각) 프랑스 파리 관광 명소인 알렉산데르 3세 다리 인근에서 화염이 치솟고 있다./AFP 연합뉴스

남서부 소도시 리모주에서는 시청이 시위대의 공격으로 화염에 휩싸여 종탑 등 건물이 전소됐다. 18세기에 지어진 이 건물은 프랑스 국가 문화재로 지정된 건물이기도 하다. 리옹에선 관광 센터가 폭도들의 방화에 전소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프랑스 내무부는 이밖에 툴루즈, 그르노블, 앙제 등 다른 도시에서도 약탈 시도, 경찰관 공격, 거리 시설물 방화, 정부 기관과 언론사를 겨냥한 공격 등이 보고됐으며, 현재까지 전국에서 총 400여명이 체포됐다고 발표했다.

대규모 시위 예고에 전날 시민들에게 평화 시위를 촉구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시위 현장 곳곳이 물리적 충돌로 얼룩지자 “프랑스에서 폭력은 설 자리가 없다”며 공공기물 파손과 약탈 행위를 엄격히 처벌할 것이라고 밝혔다.

세바스티앵 르코르뉘 총리는 경찰과 군사경찰이 시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극도로 격렬한 폭력’에 맞서 싸웠다면서, 공권력을 지지해줄 것을 당부했다.

17일(현지 시각) 프랑스 리옹에서 열린 고물가 항의 시위에서 분노한 시위대가 관광 안내 센터에 불을 질러 건물이 전소됐다./AFP 연합뉴스

이날 시위 현장에는 이번 행사를 조직한 ‘노란 조끼’ 운동의 일부 전직 핵심 인사들이 동참했다. 고교생들의 교육 환경 개선 요구를 적극 지지해 시위를 선동한다는 비판을 받는 극좌 성향의 대선 주자 장뤼크 멜랑숑 굴복하지않는프랑스(LFI) 대표도 모습을 드러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내년 4월 대선을 앞두고 지지율 선두를 달리는 극우 진영의 마린 르펜 국민연합(RN) 의원은 시위 중 폭력 행위를 저지른 사람들을 극좌 세력으로 규정하며, 이들이 시위의 본래 취지를 “오염시키고 있다”고 했다.

르펜은 “정당한 사회적 요구가 또다시 극좌 세력과 멜랑숑 의원 등에 의해 볼모로 잡혔다”면서 “이들은 폭력을 정당화하고, 무질서를 권리로 주장하면서 프랑스를 혼란에 빠뜨리려 하고 있다”고 했다.

‘노란 조끼’ 운동 지휘부가 독려한 이날 시위에 수십만 명이 호응해 거리로 나온 만큼, 8년 전 전국으로 확산되며 마크롱 정부를 궁지에 몰아넣은 노란 조끼 운동이 내년 프랑스 대선을 앞두고 본격적으로 재시동이 걸리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17일(현지 시각) 프랑스 파리 센강 일대에서 시위 도중 방화로 인한 연기가 곳곳에서 피어오르고 있다./AFP 연합뉴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