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광훈의 산인만필(散人漫筆) <69> 가을 정취 더해주는 단풍의 백미, 은행(銀杏)] "열매는 작은 살구와 비슷하고 씨앗이 희기 때문에 은행이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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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상에서 가장 오래전에 생겨나와 아직까지 존재하는 생물을 흔히 살아 있는 화석이라 한다. 이 중 은행나무는 특히 수명이 길어 수천 년을 살아온 노거수(老巨樹)도 적지 않다.
이처럼 중국에서는 행단의 '행'이 살구나무라는 인식이 일반적이지만, 은행나무를 가리킨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은행나무가 살구나무보다 더 많은 열매를 달아 많은 제자의 상징으로 삼을 수 있으며, 그 수형이 곧고 발라서 유가가 지향하는 군자의 정직한 품격을 보여준다는 의미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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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상에서 가장 오래전에 생겨나와 아직까지 존재하는 생물을 흔히 살아 있는 화석이라 한다. 이 중 은행나무는 특히 수명이 길어 수천 년을 살아온 노거수(老巨樹)도 적지 않다. 그 대다수는 동아시아에 분포돼 있다. 유럽이나 아메리카 대륙 등에서는 기후와 환경 변화로 오래전 멸종돼 근대 이후 동아시아에서 전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땅이 넓은 중국에는 오래된 은행나무가 대단히 많다. 그중에서 산시성(陝西省) 시안(西安)의 종남산(終南山) 밑에 자리한 고관음선사(古觀音禪寺)의 은행나무가 가장 유명한 것으로 보인다. 1400년 전에 당태종(唐太宗) 이세민(李世民)이 심었다는 전설이 있다. 매년 단풍철에는 하루 평균 3000명의 관광객이 다녀가며, 주말에만 3만 명을 기록했다는 통계도 전해진다.
산둥성(山東省) 쥐셴(莒縣)의 정림사(定林寺) 경내에 있는 은행나무는 수령이 4000년이나 된다고 한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기록된 기원전 715년의 노(魯)와 거(莒) 맹약이 이 나무 아래에서 맺어졌다는 속설도 있다. 이 밖에 저장성(浙江省) 천목산(天目山) 깊은 곳의 1만 년이 넘는 은행나무를 비롯해 노거수가 수두룩하다.

문헌 속 살구나무와 유가의 은행나무
인문학적인 면에서 은행나무는 여러 의미를 지니고 있다. 특히 ‘행단(杏壇)’이 주목받는다. 이는 ‘장자(莊子)’의 ‘어부(漁父)’ 편에 보이는 다음 대목에서 비롯됐다. “공자가 검은 장막을 드리운 듯 울창한 치유의 숲에서 거닌 뒤 행단 위에 앉아 쉬었다. 제자들이 책을 읽고, 공자는 거문고를 타며 노래 불렀다(孔子遊乎緇帷之林, 休坐乎杏壇之上. 弟子讀書, 孔子絃歌鼓琴).” 그때 고기잡이 노인이 배에서 내려와 듣다가, 노래가 끝나자 자공(子貢)과 자로(子路)에게 공자에 관해 묻는다. 두 제자의 대답을 듣고 노인이 웃으며 말한다. “어질기는 어질지만, 마음을 괴롭히고 몸을 힘들게 해서 그 참됨을 위태롭게 하지 않을까 염려되오. 도에서 멀리 갈라져 가니 안타깝소(仁則仁矣, 恐不免其身, 苦心勞形以危其眞. 嗚呼, 遠哉其分於道也).”
공자를 비판하기 위해 설정한 장면에서 언급된 이 행단이 후대의 유가(儒家)에 의해 공자가 제자를 가르치던 곳으로 확정됐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행림(杏林)’이 의료계를 상징하듯이 행단은 교육계를 가리키는 말로 굳어졌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실제로 행단이 있었는지 여부도 확인할 길이 없다.
북송(北宋) 전기에는 공자의 고향 곡부(曲阜)에 있는 공묘(孔廟)의 대성전(大成殿) 앞에 행단을 건축했다. 그리고 주위에 나무를 심었다. 그 나무는 은행이 아닌 살구였다. 이는 다음의 여러 시에서 확인된다.
명(明) 중기의 이걸(李傑)은 행단을 방문한 뒤 “문묘의 땅이 신령스럽고 송백은 예스러운데, 강단의 봄빛이 따뜻하니 살구꽃이 향긋하다(文廟地靈松柏古, 講壇春曖杏花香)”라고 감회를 나타냈다. 진봉오(陳鳳梧)는 “살구꽃 향기 흩날리고 강단 앞에는 비가 내린다(杏花香散壇前雨)”라고 읊었으며, 요문소(姚文炤)도 “강단을 에워싼 살구나무에 붉은 꽃이 다닥다닥 피었네(繞壇紅杏垂垂發)”라고 현장의 봄 풍경을 전했다. 이 밖에 “오로지 행단의 봄기운이 일러, 해마다 옛날처럼 붉은 꽃을 피우네(獨有杏壇春意早, 年年花發舊時紅)”라거나 “강단 위의 살구꽃이 붉다(壇上杏花紅)”라거나 “붉은 살구꽃 외로운 정자에 기대었다(紅杏倚孤亭)”라는 표현이 전해진다. 또 청(淸)의 건륭제(乾隆帝)가 행단 앞 비석에 새겨 넣은 시에 “봄바람에 하늘거리는 붉은 꽃가지(春風嫋嫋緋英枝)”라는 구절이 있다.
이처럼 중국에서는 행단의 ‘행’이 살구나무라는 인식이 일반적이지만, 은행나무를 가리킨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은행나무가 살구나무보다 더 많은 열매를 달아 많은 제자의 상징으로 삼을 수 있으며, 그 수형이 곧고 발라서 유가가 지향하는 군자의 정직한 품격을 보여준다는 의미에서다. 또한 살구나무보다 훨씬 우람하고 무성하게 자라 그 아래가 제자를 가르치는 데 더 적합하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조선 시대 성균관(成均館)의 대성전 앞뜰에 은행나무를 심은 연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이러한 논란이 생겨난 것은 살구와 은행이 모두 같은 글자로 표기됐기 때문이다. 초여름에 결실하는 살구와 달리 은행은 가을에 열매가 익는다. 그런데 노랗게 익은 뒤 모양이 서로 비슷하다. 그래서 고대에 같은 글자를 썼다. 후대에는 이를 구분하기 위해서 은행은 ‘문행(文杏)’으로 표기하기도 했다. 전한(前漢)의 사마상여(司馬相如)가 지은 ‘장문부(長門賦)’에 “문행을 예쁘게 꾸며 들보로 삼았다(飾文杏以爲梁)”라는 구절이 있다. 작고 굽은 살구나무를 들보로 쓸 수 없으므로 이는 분명히 은행나무다. 당(唐)의 왕유(王維)도 “문행을 다듬어 들보로 만들다(文杏裁爲梁)”라고 이를 인용했다.
곧고 바른 은행나무 줄기의 특성에 따라 ‘평중(平仲)’이라는 이름도 나왔다. 서진(西晉)의 좌사(左思)가 지은 ‘오도부(吳都賦)’에 보인다. ‘문선(文選)’의 주석자인 당의 이선(李善)은 이 부분에서 “평중의 나무는 열매가 은처럼 희다(平仲之木, 實白如銀)”라고 설명했다. 북송 이후에 널리 쓰이게 된 은행이란 명칭이 여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명의 이시진(李時珍)은 ‘본초강목(本草綱目)’에서 은행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강남이 원산지이며, 잎이 오리발처럼 생겨서 압각으로 불렸다. 송 초기에 처음 조정에 공물로 들어가 은행으로 고쳐 부르게 됐다. 열매 모양이 작은 살구와 비슷하며 씨앗 색이 희기 때문이다. 지금은 백과로 불린다(原生江南, 葉似鴨掌, 因名鴨脚. 宋初始入貢, 改呼銀杏. 因其形似小杏而核色白也. 今名白果).”
노거수를 지키는 우리의 책무
북송 전기의 매요신(梅堯臣)이 남방의 고향에 가 있을 때 그곳 특산물인 은행을 따서 북방의 도성에 있던 친구 구양수(歐陽修)에게 보낸 일이 있다. 당시로서는 귀한 선물을 받은 구양수는 감격해서 답례로 14구절의 긴 시를 지어 보냈다. 그 앞부분이 다음과 같다. “거위 깃털 같은 선물을 천리 멀리 보내주셨으니, 그 사람 때문에 더욱 소중하답니다. 압각이 비록 백 개뿐이지만, 이를 얻어 참으로 보배스럽습니다. 내게 누구로부터 얻었느냐 물으면, 시 쓰는 그 노인은 멀리 있고 가난하다 하겠습니다. 서리 내린 들의 숲속 열매 따서, 도성으로 보내주시니 아직도 신선하답니다(鵝毛贈千里, 所重以其人. 鴨脚雖百個, 得之誠可珍. 問予得之誰, 詩老遠且貧. 霜野摘林實, 京師寄時新).” 제목이 ‘매성유기은행(梅聖俞寄銀杏)’이다. 매요신은 그 운에 맞춘 ‘의운수영숙시여은행(依韻酬永叔示予銀杏)’으로 화답했다. 전반부가 이렇다. “지난해에 내게 특별한 것이 없어서, 압각을 멀리 있는 사람에게 보냈습니다. 그 사람은 거위 깃털에 비유했으니, 많음을 귀히 여기고 보배로움을 귀히 여기지 않음입니다. 비록 적어서 귀하지 않겠지만, 또한 이로써 내 가난함을 알 것입니다. 지극한 사귐에 옛정을 바꾸지 않고, 좋은 열매 신선할 때 드시라고 보내드렸습니다(去年我何有, 鴨脚贈遠人. 人將比鵝毛, 貴多不貴珍. 雖少未爲貴, 亦以知我貧. 至交不變舊, 佳果幸及新).”
여기서 은행과 압각이라는 명칭이 함께 쓰였다. 또 지금과는 달리 당시에는 선물로 보낼 정도로 은행이 귀했다는 사실도 엿보게 된다. 그리고 은행을 매개로 한 이 일화는 문단의 미담으로 널리 전해져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린다.
이 압각을 중세 이후로 중국에서 ‘야쟈오’ 라고 읽는다. 이 발음이 일본으로 전해져 ‘이쵸(イチョウ)’로 변했다. 은행 열매는 한자음대로 ‘긴난(ギンナン)’이라고 하지만, 은행나무는 중국 음의 영향을 받아 이쵸라고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학설로 알려져 있다.
가을은 그 풍광을 수놓고 정취를 더해주는 단풍이 있어 더욱 아름답다. 그중에서도 가장 사랑받는 것으로 단연 은행나무가 꼽힌다. 단풍의 백미(白眉)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듯하다. 필자가 살고 있는 용문산 인근에서는 더욱 그렇다. 용문산 자락의 용문사 은행나무는 수령 1000년을 자랑한다. 단풍철에는 이를 보기 위해 몰려드는 행락객으로 인해 평소 한산하던 시골길이 대도시 못지않게 막힌다.
그런데 필자는 이 노거수를 볼 때마다 마음 한편으로 걱정스럽다. 중국처럼 ‘수천 년 동안 별 탈 없이 제자리를 지켜야 할 텐데’ 하는 생각에서다. 지난봄 서울 종로구 환기미술관에서 발생한 은행나무 테러 사건이 언제 어디서 재현될지 모른다. 전국적으로 크고 작은 지자체에서 각종 명분으로 오래된 나무를 쉽게 베어버린다는 소식도 간혹 들려온다. 귀한 문화재와 자연 자원에는 각별한 보호 조치를 강구해야 하며 이에 대한 감시와 감독이 더 절실히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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