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야성 이루는 튀르키예 ‘길거리 카지노’… 고물가에 복권 열풍 거세졌다

지난 11일 튀르키예 수도 앙카라 크즐라이 인근 노상의 한 즉석복권 판매대. 자정이 가까운 시각에도 동전으로 복권을 긁는 시민 여덟 명이 매대 앞을 빽빽하게 메우고 있었다. 복권을 네 장째 긁던 한 젊은 여성은 잇달아 ‘꽝’이 나오자 “아, 도박의 늪에 빠졌네”라고 했다. 판매원은 “희망을 버리지 말고 계속 긁어 보라”며 구매를 부추겼다. 바르시 외즈쉬르멜리(29)는 “오늘 여기서만 200리라(약 5400원)짜리 복권 세 장을 긁었다”며 “안 될 걸 알면서도 계속해 보는 것”이라고 했다.
앙카라와 이스탄불 등 튀르키예 도심 곳곳의 즉석복권 판매대에는 늦은 밤까지 손님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현지 매체들은 “경제 위기가 심화하면서 시민들이 최후 수단으로 도박에 눈을 돌리고 있다(무할리프)” “생계가 어려워진 시민들이 복권에서 희망을 찾고 있다(카날B)”며 이 같은 현상을 분석하고 있다. 정부가 2020년 판매·마케팅 등 복권 운영을 민간에 맡기면서 접근성이 높아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유명 판매점의 명성을 내세우거나 당첨 실적을 홍보하는 이른바 ‘명당 마케팅’도 눈에 띄었다. 12일 찾은 앙카라의 에비 공원 인근 복권 판매대에는 ‘니메트 언니’라는 문구가 걸려 있었다. 니메트는 1930년대 이스탄불에서 거액의 당첨자를 낸 복권 판매원으로, 행운의 상징으로 알려졌다. 소셜미디어 계정을 내걸고 역대 당첨자들을 소개하는 판매대도 있었다. 판매대에는 ‘800만리라(약 2억1600만원)가 여기서 당첨됐다’는 문구도 붙어 있었다. 보라 알툰(40)은 “기왕이면 유명한 곳에 간다. 혹시 내가 주인공이 될지 모르지 않나”라고 했다.

최근에는 즉석복권 고액 당첨 사례도 잇따라 나왔다. 지난달 14일 이즈미르에서는 한 여성이 즉석복권에서 2000만리라(약 5억4400만원)에 당첨됐다. 지난 8월에는 에디르네에서 한 시민이 100리라(약 2700원)짜리 즉석 복권으로 당첨금 800만리라(약 2억1600만원)를 받았다.
복권을 포함한 사행성 게임 관련 세수는 올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튀르키예 재무부에 따르면 복권과 합법 스포츠 베팅 등에 부과하는 사행성 게임 명목 세수는 2021년 약 61억리라에서 103억리라(2022년), 284억리라(2023년), 367억리라(2024년), 555억리라(2025년)로 꾸준히 늘었다. 올해는 상반기에만 약 384억리라를 거뒀다. 올해 연간 세수는 약 671억리라로 예상된다. 복권 운영권 민영화 이후 온라인 게임과 상품 종류가 다양해지면서 전체 사행성 게임 세수가 증가한 것이다.
복권을 비롯한 사행성 게임을 둘러싸고 종교계 일각에서는 비판도 제기된다. 튀르키예 종교청 산하 종교최고위원회는 이슬람 율법에 따라 우연히 당첨 여부가 결정되는 사행성 게임을 하람(금지)으로 규정한다. 지난 2월 이흐산 찹즈오을루 종교최고위원회 위원은 “(도박은) 매우 큰 사회 문제”라며 “모든 시민의 인식 제고가 필요하다”고 했다. 튀르키예 종교·재단 분야 노동조합 알리 이을드즈 위원장도 지난해 “도박이 국가의 허가를 받아 ‘국가 복권’이라는 이름으로 허용되고 있다. 이러한 관행이 사치와 금기시되는 행위를 조장한다”며 “복권에서 ‘국가’라는 단어를 삭제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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