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긋지긋하다는 김유정, 예나 지금이나 헬조선 탈출이 로망이라는 건('100일의 거짓말')

정덕현 칼럼니스트 2026. 10. 17.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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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는 어딘가 쉽지 않은 면이 있다. 그 시기라면 당연히 '독립운동'에 대한 이야기가 빠질 수 없지만, 그런 이야기는 너무 많이 나온 데다 여전히 국가주의적 냄새를 풍겨 어딘가 식상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런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는 새로운 작품들로 인해 그 시대 조선인들이라면 당연히 '독립운동'에만 관심이 있을 거라는 선입견은 어느 정도 희석됐다.

즉, <100일의 거짓말>에서 밀정 활동을 하게 되는 이가경은 독립운동에 진심이어서 그런 선택을 하는 인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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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가 연 ‘100일의 거짓말’, 김유정이 이어 받을까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는 어딘가 쉽지 않은 면이 있다. 그 시기라면 당연히 '독립운동'에 대한 이야기가 빠질 수 없지만, 그런 이야기는 너무 많이 나온 데다 여전히 국가주의적 냄새를 풍겨 어딘가 식상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독립운동 이야기를 하면서도 로맨스에 비중을 두는 작품들이 시도됐다. <경성스캔들>, <시카고 타자기>는 물론이고 <미스터 션샤인>과 <파친코>도 빼놓을 수 없다.

이런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는 새로운 작품들로 인해 그 시대 조선인들이라면 당연히 '독립운동'에만 관심이 있을 거라는 선입견은 어느 정도 희석됐다. 나라를 잃었지만 당시 조선인들도 여전히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고, 각자 생존하기 위한 생계에 뛰어들었다. 그런 점에서 tvN 20주년 특별기획 <100일의 거짓말>의 이가경(김유정)이 등장부터 보여주는 행동이나 대사는 훨씬 피부에 와닿는다. "나는 꼭 조선을 떠날거야. 여기는 지긋지긋해."

조선이 지긋지긋하고 하루 생계를 위해 소매치기로 살아가는 이가경이 '조선 독립' 같은 일에 관심이 있을 턱이 없다. 그녀는 그저 막연하게 돈을 모아 미국에 가는 걸 꿈꾼다. 미국이 어떤 곳인지도 잘 모르지만, 그곳이 적어도 이 조선보다는 나을 거라 여긴다. 그런데 그렇게 하루하루 나라 걱정할 여유 없이 자신을 걱정해야 하는 삶을 살아가던 그녀가 독립운동을 하는 유소란(김현주), 유필립(이무생) 부부와 얽힌다.

처음에는 소매치기한 가방에서 나온 총알을 되팔아 돈이나 챙기려던 심산이었다. 하지만 조선총독부의 신임 정무총감으로 들어온 사토 신이치(진선규)를 사살하고 아무런 미련 없이 자결하려는 유소란 앞에서 이가경은 묘하게 마음이 움직인다. 원하던 돈을 받고도 다시 돌려주는 이가경의 모습은 평소 돈에만 집착하던 그녀와는 너무나 다르다. 그리고 앞으로 유소란의 제안으로 이가경은 '밀정' 활동을 하게 될 예정이다. 거짓말 잘하고 연기 잘 하는데다 손기술도 좋다는 이유로.

즉, <100일의 거짓말>에서 밀정 활동을 하게 되는 이가경은 독립운동에 진심이어서 그런 선택을 하는 인물이 아니다. 어쩌다 그 일에 휘말리게 되는 것인데, 이 지점이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을 다루는 여타의 드라마들 같은 뻔한 애국적 스토리를 슬쩍 벗어나게 해준다. 그런데 과연 이가경은 늘 자신이 하는 말처럼 독립에는 관심도 없고 그저 돈만 벌어 미국으로 가는 게 자신의 유일한 관심사이자 꿈일까.

이런 의심의 눈초리로 <100일의 거짓말>의 인물들을 들여다보면, 이들이 하는 말과 행동들이 진심이 아닌 거짓으로 하는 것들이 아닐까 싶은 느낌을 준다. 이가경이 왜 그토록 조선을 떠나 미국으로 가려 하는가에 대한 이유도 어쩌면 더 절절한 조선에서의 어떤 경험 때문이 아닐까 싶고, 유소란이 사토 신이치를 암살하고 자결할 것이라며 가짜 부부행세를 하는 유필립에게 거리를 두는 것이 진심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지독하게 떠나고 싶은 마음은 어쩌면 그만큼 남고 싶은 마음의 다른 표현일 수 있고, 그토록 죽고 싶은 마음은 정반대로 너무나 살고 싶다는 열망일 수 있다. 여기에 이가경이 인연으로 얽히게 되는 김태웅(박진영)과의 관계도 겉과 속이 다른 예감을 준다. 겉으로는 양부인 사토 신이치의 아들로서 일본인의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조선인에 대한 마음이 여전하다는 걸 이가경과의 관계에서 보여주기 때문이다.

<100일의 거짓말>은 바로 이 겉으로 하는 말과 행동과 실제 속내 사이의 괴리를 통해 뻔할 수 있는 독립운동과 밀정 서사를 새롭게 보여주는 면이 있다. 그리고 이런 접근방식은 현재의 우리들에게도 공감대를 주는 방식이다. 사실 매일 '헬조선'이니 뭐니 하며 한국을 떠나겠다 말해도 실상 마음 한 구석에 한국에 대한 애착을 버릴 수 없는 우리들이 아닌가. 결국 모두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이 상황 자체가 일제강점기라는 질곡의 시대상황이 만든 결과라는 걸 이 드라마는 보여주고 있다.

초반 절절한 캐릭터로서 유소란을 연기하는 김현주가 도드라진 면이 있지만, 이가경이라는 인물의 실체가 조금씩 드러나면서 김유정의 존재감도 커질 거라 여겨지는 드라마다. 스릴러와 액션은 물론이고 절절함과 풋풋함이 오가는 유소란-유필립과 이가경-김태웅의 멜로도 기대되는 작품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gmail.com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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