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서 멍게가 사라지고 있다

김연수 경남도민일보 기자 2026. 10. 17.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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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대패삼겹살을 좋아한다.

대패삼겹살을 좋아하는 아버지는 멍게도 좋아한다.

갈색 종이봉투에 통닭을 담아 오던 여느 아버지들처럼, 부산 사나이는 멍게를 사 왔다.

할아버지의 멍게 사랑은 내리사랑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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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기자의 시선]

[미디어오늘 김연수 경남도민일보 기자]

▲ 멍게. 사진=gettyimagesbank

아버지는 대패삼겹살을 좋아한다. 대패 전도사다. 고기는 역시 대패라고 믿는 사람이다. 맛있는 대패집과 맛없는 대패집도 훤히 꿰고 있다. 주머니 사정이 만든 식성이다. 입맛은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아버지는 가족 외식을 하자고 하면 어김없이 맛있는 대패집에 가자고 한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파르르 떤다. 아버지는 세상에서 가장 맛없는 고기가 대패삼겹살이라고 생각하는 사람과 결혼했다.

대패삼겹살을 좋아하는 아버지는 멍게도 좋아한다. 종종 인터넷으로 멍게를 한 박스씩 주문해 먹을 정도다. 대패삼겹살과 멍게 사이에는 꽤 큰 간극이 있다. 최애 음식과 차애 음식이 각각 초딩 입맛과 어른 입맛이다. 아버지도 스스로 입맛에 일관성이 없다고 말한다. 아버지의 입맛은 암기 영역이다.

아버지의 아버지, 그러니까 나의 할아버지는 퇴근길에 부산 민락동 회센터에 들르곤 했다. 갈색 종이봉투에 통닭을 담아 오던 여느 아버지들처럼, 부산 사나이는 멍게를 사 왔다. 온 가족이 둘러 앉아 생멍게를 초장에 푹 찍어 먹었다. 새콤달콤한 맛이 혀를 휘감다가 끝에는 멍게 특유의 쌉싸름함이 남았다. 할아버지는 그 맛을 C1 소주로 씻어냈다.

할아버지의 멍게 사랑은 내리사랑이 됐다. 아버지도 멍게를 좋아하고 나도 멍게를 좋아한다. 내가 멍게를 먹을 때면 아버지가 생각나고, 아버지가 멍게를 먹는 모습을 보면 생전 할아버지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멍게의 주산지는 경남 통영이다. 국내 멍게 생산량의 70% 이상이 통영을 비롯한 남해안에서 나온다. 멍게는 '수하식'으로 양식한다. 바다 위에 부표를 띄우고 그 사이에 긴 밧줄을 연결한다. 여기에 다시 여러 가닥의 줄을 매달아 바닷속으로 늘어뜨린다. 어린 멍게는 이 줄에 붙어 자란다. 봄이 되면 살이 통통하게 오른 멍게가 줄마다 송송송 달라붙는다. 사람들은 바닷속에서 피어난 붉은 꽃송이 같다고들 말한다. '바다의 꽃'이라고도 표현한다.

통영에서는 멍게가 워낙 풍부하다 보니 먹는 방법도 다양하다. 부산 사람들에게 멍게는 대개 초장에 푹 찍어 먹는 일종의 에피타이저다. 통영에서는 밥에 비벼 먹고, 무쳐 먹고, 튀겨 먹기도 한다. 멍게 하나로 밥상을 차릴 수 있는 동네다.

통영 멍게가 바닷속에서 녹아내린다. 수온이 올라간 탓이다. 2024년 여름은 특히 심각했다. 양식 어민들은 멍게가 매달린 줄을 더 깊은 바닷속으로 내려봤지만 소용없었다. 멍게는 비교적 찬물에서 잘 자란다. 그해 여름 남해안 바닷물은 30도를 넘나들었다. 당시 집계된 남해안 멍게 피해 금�敾� 111억 5700만 원에 달했다.

▲ 2024년 8월26일 경남 통영시 한 멍게 양식 어장에서 어민이 고수온에 내장이 터져 뿌옇게 보이는 폐사한 멍게를 건지고 있다. 이 어민은 “올해는 수심 20m까지 수온이 높아 피해가 막대하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올여름 또 멍게가 죽어나간다. 지금까지 파악된 피해 금액은 185억 원 상당이다. 2년 전의 악몽이 되살아났다.

지난 13일 통영 수산안전기술원 회의실에 사람들이 모였다. '기후변화 대응 멍게양식 간담회'가 마련됐다. 이제는 고수온은 '뉴노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데 이견은 없었다. 핵심 대책은 '월하장'이다. 여름철 수온이 오르면 멍게를 먼바다, 더 깊은 곳으로 옮기는 방법이라고 한다. 뜨거워진 바다는 되돌릴 수 없으니 뾰족한 수는 없나보다.

내 기억 속 멍게는 일회용 스티로폼 도시락에 수북이 담긴 음식이다. 초장에 푹푹 찍어 먹으면 그만이었다. 언젠가는 멍게를 미식가만 즐기는 귀한 음식이 될 수도 있겠다. 오징어가 금징어가 됐듯이.

나는 솔직히 기후위기를 제대로 모른다. 과학적으로 설명할 자신이 없다. 멍게 맛은 안다. 쌉싸름한 바다의 맛. 저 먼 곳에서부터 아득하게 밀려오는 추억의 맛. 줄줄이 피어나던 바다의 꽃이, 올여름엔 피기도 전에 녹아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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