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벌레는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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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들어 가을 냄새가 제법 짙어졌다. 한글날 오후 농장 동무 여섯이 텃밭에 모였다.
3~4년 전부터 동무들이 너나없이 텃밭 배추로 김장하는 걸 포기한 이유다.
원인이 뭘까? 쌍화탕 한 병 넣어 삶아낸 돼지 앞다리살과 텃밭 부추 듬뿍 넣어 지져낸 부추전을 앞에 두고 동무들이 앞다퉈 '시나리오'를 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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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가슴잎벌레 사라지자 늠름해진 배추… 텃밭서 막걸리 한잔 하며 열띤 토론

10월 들어 가을 냄새가 제법 짙어졌다. 한글날 오후 농장 동무 여섯이 텃밭에 모였다. ‘완전체’로 모인 건 봄 농사철 이후 처음이지 싶다. 불을 피우려다 관뒀다. 옛 밭장은 해병대가 잡아갈 정도로 ‘불판 귀신’이다. 불 피워 고기를 구울 때마다 홀로 불 곁을 지킨다. 낮엔 아직 덥다. 인류는 고기를 생으로도 먹고, 불에 구워도 먹고, 때로 삶아도 먹는다. 삶기로 했다.
옛 밭장과 장을 봐 텃밭에 도착했다. 먼저 온 동무 넷이 감탄사를 쏟아내고 있다. 칭찬의 대상은 다름 아닌 배추다. 처음 주말농장을 시작한 북한산 자락 텃밭에선 볼 수 없었던 좁은가슴잎벌레(이하 좁은이)를 경기 벽제 우보농장을 거쳐 고양 선유농장에서 처음 만났다. 녀석들은 먹성이 좋고 집요했다. 찬 바람이 불 때까지 여린 배추를 너덜너덜해지도록 갉아먹었다. 녀석들이 배가 터지도록 먹고도 남을 정도로 모종을 잔뜩 넣는 것 외엔 답이 없었다.
6년 전 이사 온 난점마을 텃밭은 선유농장의 5분의 1이나 될까? 모종 넣는 면적은 줄었는데, 좁은이 놈들의 식성은 더욱 왕성해졌다. 정식 초기부터 맹렬한 기세로 배추를 뜯어 먹어 아예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망쳐놨다. 3~4년 전부터 동무들이 너나없이 텃밭 배추로 김장하는 걸 포기한 이유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평년보다 2~3주 늦게 낸 배추 모종에 구멍 하나 없다. 좁은이 놈들도 행방이 묘연해졌다. 원인이 뭘까? 쌍화탕 한 병 넣어 삶아낸 돼지 앞다리살과 텃밭 부추 듬뿍 넣어 지져낸 부추전을 앞에 두고 동무들이 앞다퉈 ‘시나리오’를 내놓는다. 첫째, 더위다. 지난여름, 더워도 너무 더웠다. 마른 작물에 물을 주면 지열 탓에 뿌연 수증기가 피어오를 지경이었다. 땅속에 잠복해 가을배추를 기다리던 좁은이 녀석들이 고열을 견디지 못하고 전멸했다는 제법 그럴듯한 주장이 설득력을 얻었다.
둘째, 모종이 튼실했고 정식 시기도 완벽했다. 올해는 더위 핑계로 배추 모종을 평년보다 늦은 9월 둘째 주말에야 냈다. “시기를 놓쳤다”는 걱정에 경기 양주화훼단지 단골 모종집 사장님은 “1~2주는 버실 것”이라며 제일 잘 자란 모종을 내줬다. 좁은이의 공격을 받지 않은 배추는 우량아로 성장하며 북한산 텃밭 시절의 위용을 뽐내고 있다. 반면 배추를 뜯어 먹어야 할 시기를 놓친 좁은이 녀석들은 굶어 죽었거나, 집단 이주를 택했으리란 게 일부 동무의 주장이다.
셋째, 누군가 ‘약’에 손을 댔다. 100% 유기농의 길을 걸었던 첫해를 빼고 그간 배추만큼은 복합비료의 도움을 받았다. 제초제를 포함해 농약은 여전히 금기다. 좁은이들의 맹렬한 기세에 맞서 방어용 무기로 사용하는 건 제충국(살충력이 높은 국화과 여러해살이풀)이 유일하다. 제충국은 거들 뿐 좁은이들의 식탐을 아예 막지는 못했다. 그런데 올핸 상황이 전혀 다르다. 필시 우리 중 누군가 ‘금지된 약물’을 뿌린 게 아니냐는 의심이 자연스레 나왔다.
올해 처음 배추 모종 사이사이에 뿌린 돌산갓의 효과를 본 것 같다는 주장도 나왔다. 돌산갓의 알싸한 향 탓에 좁은이들이 도망갔다는 얘기다. 한 동무는 “밭장이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삽질에 능한 옛 밭장은 ‘토목공사’에만 골몰해 작물에 소홀했던 반면, 현 밭장(옛 막내)은 작물 하나하나를 아기 돌보듯 한단다. 아부성 발언에 야유가 터져 나왔다. 아파트 재활용쓰레기장에서 업어온 코○○코 방수포로 새로 단장한 그늘막 아래는 선선했다. 막걸리 몇 잔 나누는 사이 석양이 주황으로 물든다. 올핸 텃밭 배추로 김장할 수 있을까? 다시 바라본 배추가 늠름하다.
글·사진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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