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캐고 우주 기지 꿈꾸는 동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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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석순은 11만 년 됐어요."
9월 8일 기초과학연구원(IBS) 기후물리연구단 연구실에서 야스퍼 와센버그 연구원이 아르메니아 동굴에서 가져온 석순을 보여줬다.
연구팀은 대한민국 동굴에서 얻은 석순을 분석해 지난 45만 년 동안 한반도의 기온이 크게 오르내렸다고 추정했다. 팀머만 단장은 "물이 대기와 땅을 거쳐 흘러드는 동굴은 여러 요소가 얽힌 기후를 연구하기 좋다"며 "세계 각지의 석순을 분석해 지난 1만 년간 지구의 기온 변화를 복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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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순에 과거 기후 새긴 동굴
“이 석순은 11만 년 됐어요.”
9월 8일 기초과학연구원(IBS) 기후물리연구단 연구실에서 야스퍼 와센버그 연구원이 아르메니아 동굴에서 가져온 석순을 보여줬다. 주변에는 중국, 보츠와나 등 세계 곳곳에서 온 석순이 있었다.
석순은 빗물이 석회암 속 탄산칼슘을 녹인 뒤 동굴로 스며들어 생긴다. 동굴 천장에서 떨어진 물방울 속 탄산칼슘이 굳어 바닥에 층층이 쌓이면 석순이 자란다. 석순은 물이 충분할 때 자라고, 건조하거나 꽁꽁 어는 추위에 성장이 느려지거나 멈추기를 반복하며 내부에 나이테처럼 층이 생긴다. 악셀 팀머만 IBS 기후물리연구단장은 “석순이 잘 자라는 환경은 인간이 살기에도 좋다”고 설명했다.
석순의 층에는 당시 기후에 따라 산소, 수소, 탄소 등의 동위원소와 마그네슘, 우라늄 등의 양과 비율이 다르게 남는다. 같은 원소지만 질량이 다른 원자인 ‘동위원소’는 물질의 변화 과정을 밝히는 데 주로 쓰인다. IBS 기후물리연구단은 석순 속 여러 원소의 동위원소와 비율 등을 분석해 기온, 강수량, 습도 등의 고기후를 알아낸다.

산소 원자의 동위원소에는 가벼운 산소-16과 무거운 산소-18 등이 있다. 산소-16이 든 물은 조금 더 가벼워 더 쉽게 증발하고, 산소-18이 든 물은 조금 더 무거워 비로 내린다. 비의 양과 비구름의 이동 경로에 따라 빗물 속 산소-16과 산소-18의 비율이 달라진다. 석순에 남은 탄산칼슘 속 산소 동위원소의 비율을 분석하면 과거 강수량을 추정할 수 있다.
연구팀은 대한민국 동굴에서 얻은 석순을 분석해 지난 45만 년 동안 한반도의 기온이 크게 오르내렸다고 추정했다. 기존 기후 모델은 한반도의 기온 변화 폭을 실제보다 작게 계산했다. 연구 결과는 기존 기후 모델을 보완해서 미래 기후를 더 정확히 예측하는 데 활용한다. 팀머만 단장은 “물이 대기와 땅을 거쳐 흘러드는 동굴은 여러 요소가 얽힌 기후를 연구하기 좋다”며 “세계 각지의 석순을 분석해 지난 1만 년간 지구의 기온 변화를 복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인터뷰 | 석순에서 과거를 캐는 과학자
악셀 팀머만 단장·야스퍼 와센버그 연구원 (IBS 기후물리연구단)
Q. 왜 종유석이 아닌 석순을 연구하나요?
A. 천장에서 아래로 자라는 종유석은 내부 구조가 불규칙하다. 반면 위로 자라는 석순은 탄산칼슘이 규칙적인 층을 이뤄 시간순으로 분석하고 고기후를 재구성하기 좋다.
Q. 어떤 동굴에서 석순을 가져오나요?
A. 입구가 작고 내부 온도가 일정해 석순이 고르게 자라는 동굴이 좋다. 연구팀은 온도, 빗물,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등을 오래 관찰한 뒤 채취를 결정한다. 동굴 보존을 위해 대부분 저절로 부러진 석순을 가져온다.
Q. 동굴 주변의 환경도 함께 조사하나요?
A. 땅 위의 빗물과 동굴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을 비교하면 빗물이 흙과 암석을 통과해 동굴에 도달하기까지 변화한 과정을 알 수 있다. 분석 결과는 석순으로 과거의 기온과 강수량을 더 정확히 추정하는 데 도움을 준다.
● 달과 화성의 미래 기지! 동굴
우주 동굴은 미래 기지를 짓기에 유리한 환경을 갖췄다. 동굴을 덮은 암석층은 우주방사선과 작은 운석을 막아 준다. 우주는 밤낮의 온도 차가 크지만 동굴 안쪽은 비교적 온도가 일정하다.
2000년대 들어 화성에서 용암동굴 입구로 추정되는 구멍이 1000개 넘게 발견됐다. 용암동굴은 용암의 겉 부분이 먼저 굳은 뒤, 안쪽의 뜨거운 용암이 흘러 나가면서 생긴 빈 통로다. 발견한 구멍이 운석 충돌로 생긴 분화구라면 가장자리가 솟거나 주변에 튀어 나간 물질의 흔적이 남는데, 일부 구멍에서는 이런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과학자들은 구멍의 모양 등을 분석해 349개가 동굴 천장이 무너져 생긴 ‘천창’일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다만 구멍이 실제 동굴 통로와 이어지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달에서는 지하 동굴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 구멍들이 발견됐다. 2024년엔 달 ‘고요의 바다’에 있는 지름 약 100m 구덩이에서 옆으로 약 30~80m 이어지는 동굴 통로가 확인됐다. 2026년 2월에는 금성에서도 용암동굴로 추정되는 구멍이 레이더에 포착됐다.
용암동굴과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진 동굴 후보도 있다. 2025년 중국 선전대 연구팀은 화성에서 발견된 구멍 8개가 과거 암석 속 광물이 물에 녹아 만들어진 동굴 입구일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구멍이 과거 물이 흘렀던 헤브러스 계곡에 있고, 주변에 물에 잘 녹는 탄산염과 황산염 광물이 있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동굴 내부에 얼음이나 생명체의 흔적이 남았을 가능성에 주목한다.
우주 동굴이 실제로 기지로 쓸 만한지 확인하려면 내부를 직접 탐사해야 한다. 하지만 지형이 가파르고 울퉁불퉁해 바퀴 달린 기존 로버는 접근이 어렵다.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팀은 2022년부터 화성 동굴 탐사용 로봇 ‘리치봇’을 개발 중이다.
리치봇은 몸체에서 긴 팔 8개를 펼치고, 금속 가시가 달린 손으로 동굴의 암석을 붙잡으며 이동하도록 설계됐다. 레이저로 주변 지형을 훑어 붙잡을 암석을 정하고 로봇 팔이 당기는 힘을 조절해 몸을 지탱한다. 로봇 아래엔 카메라와 시료를 채취할 장비를 달고 몸체 뒤에는 연결선을 달아 지상에서 전력과 통신을 공급받을 수 있다.

연구팀은 2023년 팔 1개를 단 리치봇을 만들어 미국 모하비 사막의 용암동굴에서 암석을 붙잡는 시험에 성공했다. 지구와 화성의 용암동굴은 중력과 암석의 성질 등이 다를 수 있어 앞으로 더 많은 추가 시험이 필요하다.
※관련기사
어린이과학동아 10월 15일호, [과거 캐고, 우주 기지 꿈꾸는 동굴]
[박수진 기자 soo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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