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수의 인터스텔라] “계좌도 카드도 없던 13억 인도인의 신용을 설계하다” 韓스타트업의 인디아 서바이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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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는 젊고 크고 넓다. 13억명이 계좌도 카드도 없는 저신용 서민이지만 미국의 하버드, MIT보다 들어가기 어렵다는 인도 공과대학 출신 IT 인재들이 실리콘밸리를 '씹어 먹는' 중이다.
뒷골목 사금융을 이용하는 13억명의 인도 서민, 일명 매스 니치(보이지 않는 다수)를 타깃으로 그들의 신용을 설계해 낸 K핀테크 기업 '어피닛'.
계좌도 카드도 없던 13억 인도인들을 어떻게 주류 고객으로 만들었는지, 숫자로 존재하지 않던 미확인 '신용'을 어떻게 데이터로 가시화했는지, 그 땀내 나는 이야기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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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10년 스타트업 생존기 ‘매스니치 서바이벌’
인도 서민 13억 명, 숨어 있던 다수를 사로잡다
적게 빌려주고 자주 갚는 ‘신용사다리’ 만들어
문자, 앱, 위치 등 데이터로 신용 기록 설계

인도는 젊고 크고 넓다. 미국, 중국에 이어 유니콘 기업이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고, 14억 인구의 중위 연령이 28~29세다. 13억명이 계좌도 카드도 없는 저신용 서민이지만 미국의 하버드, MIT보다 들어가기 어렵다는 인도 공과대학 출신 IT 인재들이 실리콘밸리를 ‘씹어 먹는’ 중이다.
국민 개개인으로 보면 낮은 GNP의 저소득국가임에도, 거대한 내수 덕분에 국가 전체 경제 총량은 글로벌 5위인 나라. 이 인도 시장에 진출해 12년 동안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국민 앱으로 성장한 한국 스타트업이 있다. 뒷골목 사금융을 이용하는 13억명의 인도 서민, 일명 매스 니치(보이지 않는 다수)를 타깃으로 그들의 신용을 설계해 낸 K핀테크 기업 ‘어피닛’.
‘어피닛’이 만든 대출 앱 ‘트루밸런스’가 인도 시장에 뿌리내려 대박을 터뜨리기까지, 그 찬란한 시행착오의 연대기를 담은 책 ‘매스니치 서바이벌’을 읽고 그 주인공인 이철원 대표를 인터뷰했다. 계좌도 카드도 없던 13억 인도인들을 어떻게 주류 고객으로 만들었는지, 숫자로 존재하지 않던 미확인 ‘신용’을 어떻게 데이터로 가시화했는지, 그 땀내 나는 이야기를 들어보자.
이철원은 SKT 자회사 와이더댄의 사업팀장으로 인도, 인도네시아, 필리핀 시장을 누볐다. 2006년 휴대폰 부가 서비스 B2B 기업 ‘액세스 모바일’ 창업해서 성공시켰지만 혹독한 번아웃을 거쳤다. 통신사 중심의 생태계가 스마트폰 중심으로 재편되던 2014년, 인도 시장에 휴대폰 요금 선결제 잔액 확인 서비스 ‘트루밸런스’ 앱을 출시했다. 대다수 인도인이 습관적으로 자신의 휴대폰 요금 잔액이 얼마인가를 확인하는 모습을 보고 출시된 서비스였다.
트루밸런스 앱은 2017년, 독자적인 대안 신용평가 기술로 신청 후 5분 만에 돈이 ‘꽂히는’ 대출 앱으로 발전했고, 건당 15만원 내외의 초단기 생활자금 대출 상품을 히트시키며 인도 국민 앱으로 떠올랐다. 현재 트루밸런스의 누적 다운로드는 1억2천 건을 돌파했고, 하루에도 수만 명이 이 앱을 통해 돈을 빌리고 있다. 누적 대출금액은 한화로 2조 원에 이른다.

-왜 인도였나요?
“저는 2002년부터 통신사에 서비스를 팔러 한 달에 한 번씩 인도를 드나들었어요. 그때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었어요. ‘인도는 코끼리와 같다. 뛰는 데 시간이 좀 걸려서 그렇지 한번 뛰기 시작하면 그 속도가 걷잡을 수 없다.’
한 10년 전까지만 해도 ‘대체 너희는 언제 뛸 건데?’라고 반신반의했는데, 지금은 정말 뛰기 시작했어요. 모디 총리가 집권하면서 이 나라의 비즈니스 인프라가 완전히 달라졌어요.
저도 제가 인도에서 금융을 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마흔 넘어서 스타트업을 시작했고, 첫 투자자가 저희를 보고 한 말도 “중년 벤처의 절박함”이었어요. 그 절박함이 인도에서는 자산이었어요. 이 나라는 버티는 사람에게 기회가 있어요."
-왜 하필 핀테크죠?
“선진국에서 핀테크는 간편 송금 정도의 편리성이지만, 개발도상국에서 핀테크는 차원이 달라요. 0에서 1을 만들 수 있는 가장 좋은 시장이에요. 기록이 없어서 은행에 못 가던 사람이 폰으로 몇 분 만에 돈을 빌리게 되는 건, 편의가 아니라 존재의 변화입니다.
다행히 모디 총리가 정부 기관의 규제와 허용을 영리하게 설계했고, 포용적 금융의 파트너로 핀테크 기업을 적극 지원했어요.”
-우리가 아는 인도와 실제 인도는 어떻게 다릅니까?
“인도는 1인당 국민 소득이 한달 평균 20만원 정도예요. 한국의 1/20이 정도죠. 우리나라 사람들은 인도를 가난하고 북적이는 나라로 하대하지만, 인도인들은 오히려 한국을 우습게 봐요. 작은 나라가 돈 좀 있다고 잘난 체한다는 거죠. 인도인들의 자긍심은 생각보다 어마어마합니다. 저희는 아시아의 중심을 한중일로 생각하지만, 서양인 시각에서 한중일은 극동이고 아시아의 본류는 인도예요.
수천 년의 거대한 문명과 종교의 발원지이고, 압도적인 인구와 명석한 두뇌를 가진 ‘대국’입니다. 따져보면 이스라엘에서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가 나왔고 인도에서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가 나왔어요. 종교는 가장 복잡한 인간의 창조물이기 때문에 여간 똑똑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어요. 이스라엘 민족과 인도 민족이 그만큼 똑똑하다는 거죠.”

-인도 14억 인구 중에서 신용카드 소지자는 1억명 남짓이라고요. 나머지 13억은 어떤 사람입니까?
“제가 인도 사람들에게 자주 내던 퀴즈가 있어요. 인도에서 제일 많이 팔리는 스마트폰이 뭘까요. 다들 삼성이라고 하는 데 아닙니다. 십만 원짜리 중국 폰입니다. 제일 많이 팔리는 차는 손바닥만 한 경차고, 제일 많이 쓰는 휴대폰 요금제는 백오십 원짜리 선불 요금제예요. 이 셋을 다 맞힌 인도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분들이 보던 인도는 상위 1.2%의 인도였거든요.
13억은 그 퀴즈의 답 쪽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한 달에 십오만 원쯤 벌고, 주급을 현금으로 받고, 계좌가 없거나 있어도 안 쓰고, 유심을 두 개 끼우고 요금이 싼 통신사로 옮겨 다녀요. 소수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다수입니다. 저는 이분들을 소수처럼 보이는 다수 ‘매스니치’라고 불렀어요.”
-그들이 트루밸런스 앱의 고객이 될 거라는 걸 어떻게 알아챘습니까? 강박적으로 잔액을 확인하고 전화가 끊길까 마음을 졸이는 인도인들의 사용자 특성을 어떻게 분석했나요?
“알아챈 방법은 두 가지였습니다. 먼저 숫자였어요. 인도 휴대폰 이용자의 90%가 선불이고 70%가 듀얼 심이고 충전은 일주일 단위가 제일 많았습니다. 그 숫자가 가리키는 사람들을 보러 골목으로 갔어요. 숫자가 그들이 누구인지 알려주고, 골목이 어떻게 사는지 알려줬습니다.
인도 사람들이 심심하면 조건반사처럼 잔액 확인 코드를 누르더라고요. 하루에도 몇 번씩.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아니라 사람들이 매일 무의식적으로 하는 행동에서 입구를 찾았습니다. 분석은 두 겹으로 했어요. 하나는 데이터입니다. 뉴델리 2만명의 사용 기록을 보니 선불 90%, 듀얼 심 70%, 주 단위 충전이 가장 흔했고, 충성 고객은 15~20%였어요.
다른 하나는 사람이었습니다. 한국 직원들이 구르가온 아파트에 합숙하면서 2주마다 앱을 고쳐 올리고, 사용자가 어디서 막히는지 바로 봤어요. 비자가 석 달이라 김치찌개 먹으러 한국으로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는 생활이었습니다.
거기서 알게 된 게 있어요. 그분들에게 잔액은 통신비가 아니라 그날 쓸 수 있는 돈이었습니다. 잔액이 떨어지면 전화가 끊기고, 전화가 끊기면 일감이 끊겨요. 그래서 잔액을 보여주는 앱이 곧 돈을 보여주는 앱이 됐고, 그다음 충전과 대출이 자연스럽게 따라왔습니다. 그렇게 2015년 1월 모바일 잔액 확인 앱 ‘트루밸런스’를 론칭했어요.”

-핵심 유저를 찾는 노력이 정말 아날로그적이면서도 절묘하더군요. 네트워크가 폭발하는 대학가 부근으로 다짜고짜 찾아가다고요. ‘150원 줄게 친구 데려와’ 마케팅의 효과는 어느 정도였나요?
“절묘했다기보다 절박했어요. 페이스북 광고를 할 돈이 없었습니다. 뉴델리 데이터에서 핵심 사용자를 추적해 보니 80%가 대학가, 그것도 공대 근처에 살더라고요. 그래서 찾아갔습니다. 10루피 캠페인은 추천한 사람과 새로 온 사람에게 각각 십 루피, 우리 돈 백오십 원을 주는 거였어요.
일주일 만에 십만 명이 들어왔습니다. 한 사람을 데려오는 비용이 페이스북 광고의 십분의 일이었어요. 효과보다 놀란 건 사람들이 스스로 영업사원이 된 거였습니다. 동네 가게 주인, 유튜버, 학생들이 ‘돈 버는 앱’이라며 퍼뜨렸고, 어떤 사람은 그걸로 학비를 벌고 에어컨을 사고 집을 고쳤어요.
부작용도 있었습니다. 공장 외곽에서 청소년들을 모아 가짜 계정을 만드는 치터가 나타났어요. 그걸 잡으려고 만든 게 통화 기록으로 사람을 가려내는 생활 지문이었는데, 그게 나중에 신용평가의 씨앗이 됐습니다. 그때는 몰랐어요.”
-어떤 과정을 거쳐 현지인들의 신임을 얻고 반복 행동을 끌어냈나요?
“14억 인도 인구를 인디아 원, 투, 쓰리라는 세 그룹으로 나눴어요. 인디아 원 그룹은 카드와 계좌가 있는 5천만~1억이에요. 투와 쓰리 그룹은 주급을 현금으로 받고 송금하러 대리점에 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매스 니치죠. 저희가 처음 크게 틀린 자리가 여기였어요. 잔액 확인에서 충전으로, 충전에서 결제로 올라갈 거라고 봤는데, 이분들은 온라인 결제 능력 자체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론이 “누군가 대신해 줘야 한다”였고, 그 누군가가 동네 잡화점 키라나숍 주인과 유튜버였어요. 신임을 얻는 방법은 단순했습니다. 보상은 바로 주고, 현금을 받아 대신 충전할 수 있게 하고, 그분들 전용 앱으로 만들어 줬어요. 반경 몇 킬로미터 안의 고객 지도, 미수금 장부, 고객별 다음 결제일이 뜨는 달력. 한번 들어온 고객은 리텐션이 매우 높았습니다.
반복 행동은 저희가 만든 게 아니에요. 이미 있던 리듬, 일주일마다 충전하는 그 리듬에 저희를 맞췄습니다. 그리고 고객이 믿은 건 앱이 아니라 옆집 아저씨였어요. 저희가 한 일은 그 아저씨가 손해 보지 않게 하는 거였습니다.”

-대출 앱이 없었을 때, 뒷골목 금융은 인도에서 어떻게 돌아가고 있던가요?
“동네 구멍가게인 키라나숍 카운터마다 사채업자 명함이 꽂혀 있었어요. 담배 가게 주인은 삼천 루피를 빌려 35일 동안 매일 백 루피씩 갚고 있었는데, 연이율로 치면 160%였습니다. 푸드트럭 청년은 만 루피를 120일 동안 매일 백 루피씩. 이십 대 일수업자 세 명을 만났더니 대출 90건을 돌리고 있었고 상환율이 아주 높았어요.
원리는 셋이었습니다. 매일 만나는 사람이 빌려준다, 그래서 도망을 못 갑니다. 매일 조금씩 갚는다, 주급 리듬에 맞아요. 보증인은 동네 평판이다, 떼먹으면 골목을 못 다닙니다. 비싸지만 가깝고 빠른 금융이었어요.
저희가 한 일은 이 셋을 앱으로 옮긴 겁니다. 매일 만나는 사람 자리에 매일 여는 잔액 앱, 매일 조금씩 자리에 소액과 짧은 만기, 동네 평판 자리에 데이터. 이자는 그분들의 몇 분의 일이었어요. 그때 저희끼리 한 말이 “당연한 거 아니야”였습니다.”
-생활 지문이라는 게 정말 신기했습니다. 계좌가 없어도 신용을 판단할 수 있는 지표가 된다고요. 이를테면 충전 습관. 정기적으로 충전하는 사람과 바닥날 때까지 버티다 충전하는 사람, 급여명세서 대신 데이터 사용량, 재직 증명서 대신 GPS 동선… 이런 데이터로 정말 갚을 사람을 판단할 수 있습니까? 연체율은 어느 정도 되나요?
“판단할 수 있고, 해마다 더 정확해집니다. 원리는 이거예요. 은행이 볼 수 없는 사람을 은행이 갖지 못한 데이터로 보는 것. 통장 잔액 대신 충전 습관, 급여명세서 대신 데이터 사용량. 충전 습관이 왜 신용이 되느냐면, 정기적으로 충전하는 사람과 바닥날 때까지 버티다 충전하는 사람은 현금흐름이 달라요. 그게 그 사람의 지문입니다.
그리고 인도는 모든 금융 거래가 문자로 와요. 급여가 들어와도 문자, 할부를 내도 문자. 저희 AI가 그 문자 한 줄에서 회사 이름과 급여와 잔액을 읽어냅니다. 잔액 확인 앱 시절에 통신사 문자에서 잔액을 뽑아내던 기술이 지금 신용평가의 핵심이 됐어요.

연체율 숫자는 대출을 처음 시작할 때보다 ⅓~¼ 수준으로 내려왔고 매년 더 낮아지고 있어요. 그리고 가려내는 것보다 중요한 게 있습니다. 작게 시작해서 갚는 사람의 한도를 올려 주는 거예요. 판단은 첫 대출에만 필요하고, 그다음부터는 기록이 판단합니다.”
-‘매스니치 서바이벌’ 책에는 여러 인도인이 나옵니다. 동네를 돌며 충전 서비스를 하는 소년들, 대학생, 택시 기사, 가정주부, 300명의 고객 장부를 확인하는 1인 에이전트… 현장에서 만나본 인도인들은 어떤 사람이고 그들의 생활은 어떻게 굴러갑니까?
“일단 세 사람이 떠올라요. 비하르주의 한 에이전트는 1미터짜리 종이에 분홍색과 검정색으로 손 글씨 광고를 만들었습니다. 꽃무늬 테두리에 상환 일정표까지 그려 넣었어요. 저희 MBA 출신들이 만든 자료보다 직관적이었습니다.
하이데라바드의 한 에이전트는 몸이 불편해서 걷기가 힘든데 온라인으로 통신 상품을 팔아 한 달에 삼만 원을 벌었어요. 자기가 받는 보상을 럭키코인이라고 부르면서 “한 방울 한 방울이 모여 바다가 된다”는 속담을 말해 줬습니다. 그리고 체크박스가 뭔지 몰라서 대출을 못 받던 배관공. 이분은 구글 렌즈로 화면을 한자 한자 번역해 가면서 대출을 신청했어요.
그들은 부지런하고 셈이 빠르고 체면을 중요하게 여겨요. 설문에서는 영어를 좋아한다고 답하는데 영어 문장을 읽게 하면 절반 이상이 틀렸습니다. 그리고 저희와의 인터뷰 약속을 “비가 와서” 안 지켜요.”

-인도인들의 ‘노프라블럼’은 ‘내 알 바 아니다’라는 뜻이라고요. 사업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무엇이었나요? 22개의 언어? 인도팀과 한국팀과의 문화 차이?
“언어와 문화보다 어려웠던 건 제가 틀렸다고 인정하는 거였어요. 잔액 확인에서 충전까지는 가지만 충전에서 결제까지는 갈 수 없다는 것, 슈퍼 앱이 안 된다는 것. 숫자가 먼저 말해 주는데 제가 눈을 감고 있었습니다.
두 번째는 시간이었어요. 라이선스 하나에 몇 년, 파트너 하나 만드는 데 몇 년. 협상에서는 처음 부른 가격이 70%까지 깎이는 일도 있었습니다. 한국식으로 빨리 달려들면 그게 약점이 됐어요. 협상은 한 방에 끝내는 게 아니라 점수를 조금씩 쌓는 긴 경기더라고요.
‘노프라블럼’은 제가 보기엔 내 알 바 아니라는 뜻이 아니었어요. 지금 이 자리에서 답을 강요하지 말라는 뜻에 가까웠습니다. 문제는 저희가 그 자리에서 답을 받아내려 했다는 거예요. “Yes, noted”도 동의인지 확인인지 그냥 들었다는 건지 끝나 봐야 알았습니다. 그래서 배운 게 돌려 말하지 않기, 한 번에 안 되면 열 번 말하기였어요.
22개 언어는 오히려 풀기 어렵지 않았습니다. 버튼은 영어로 두고 설명은 현지어로 깔았어요. 젊은 사람들은 힌디어를 영어 알파벳으로 쓰는 힝글리시를 제일 잘 읽었습니다.”
-인도인과 한국인의 돈에 관한 태도의 차이가 혹시 있나요? 누가 더 끈질기고 더 잘 믿고 더 큰 것을 바라거나 더 절실합니까?
“사람마다 다르고, 다른 건 게임의 규칙이었습니다. 제가 본 건 셋이에요. 첫째, 인도에서 돈은 작은 단위로 움직입니다. 이백 루피를 한 번에 충전하면 통신사가 데이터를 더 얹어주는데, 돈이 없어서 삼십 루피씩 쪼개 충전해요. 예산이 하루 단위입니다. 둘째, 신용은 이름이 아니라 동네에 붙어 있어요. 일수업자에게 빌린 돈도 상환율이 아주 높습니다. 보증인이 동네 평판이니까요. 셋째, 협상은 스포츠예요. 처음 가격은 시작점이고, 서두르는 쪽이 집니다.
절실함은 인도 쪽이 더 보였어요. 병원비, 동생 결혼, 다음 달 통신비. 한국 사람은 계획을 세우고 인도 고객은 하루하루를 삽니다. 그건 게으름이 아니라 소득 구조예요. 주급을 받으면 한 달 계획이 안 나오거든요. 믿음은 계약서보다 관계에 있었습니다. 저는 사람을 믿는 대신 구조를 믿기로 했어요.”

-소액 단기대출은 잘 팔렸습니까? 이 대출이 인도인들이 삶을 개선했나요?
“소액 단기대출은 잘 팔렸어요. 첫 초 소액 외상 상품은 출시 20일 만에 하루 만 건을 넘었습니다. 금액은 책에 있는 대로예요. 캐시론은 십오만 원 안팎을 몇 달, 레벨업론은 몇만 원을 일주일. 용도를 물어보면 전부 생활이었습니다. 동생 결혼, 아내 출산, 어머니 병원, 다음 달 통신비.
삶을 개선했느냐는 질문에는 솔직하게 답하고 싶어요. 십오만 원이 인생을 바꾸지는 않습니다. 바꾸는 건 그날 밤이에요. 병원비를 못 내는 밤을 넘기게 하고, 그게 쌓여서 기록이 되고, 기록이 있으면 다음에는 더 큰 돈을 더 싸게 빌릴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그분들에게 전당포와 동네 사채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저희가 그들의 삶을 개선했다고는 안 하고, 처음으로 정식 금융 안에 들어온 경험을 드렸다고 말합니다. 그다음은 그분들의 기록이 그들의 삶을 개선합니다.”

-조직이 커지면서 여러 번 결단을 내린 걸로 나와 있더군요. 동업자인 J의 판단대로 대출에만 집중하기로 하면서 ‘모두를 위한 금융’으로 비전을 선포했지요? 비전 선포가 나침반 역할을 했습니까?
“공동 창업자인 J가 2018년에 조용히 그러더라고요. “이렇게는 아닌 것 같아요. 대출에 집중해야 할 것 같아요.” 저는 시장이 열리는데 무슨 집중이냐고 했습니다. 1년 뒤에 그 말을 받아들였어요. 1년의 대가가 수백억 손실로 돌아왔어요.
비전이 준 방향감각은 무엇을 할지가 아니라 무엇을 안 할지였어요. 대출, 상품, 결제, 인프라로 나뉘어 있던 조직을 대출 1, 대출 2, 대출 3, 대출 4로 바꿨습니다. 직원들이 물었어요. 슈퍼 앱이 돼야 하는 거 아니냐고. 저는 숫자가 이미 말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모두를 위한 금융’은 상품 개수나 목록이 아니라 대상이에요. 카드 없는 13억. 그걸 정하고 나니 판단이 쉬워졌습니다. 이 일이 그 사람들의 첫 금융에 닿는가. 닿으면 하고, 안 닿으면 아무리 좋아 보여도 안 했어요.”
-당신이 모델로 삼았던 슈퍼 앱이란 어떤 모습인가요 중국의 위챗, 알리페이?
“맞아요. 위챗, 알리페이, 고젝, 그랩. 잔액 확인 위에 충전, 결제, 대출, 보험, 커머스를 다 얹었습니다. 계획은 아름다웠습니다. 현실은 달랐어요. 틀린 이유는 하나였어요. 그 회사들은 결제가 먼저 되는 시장에서 자랐습니다. 슈퍼 앱은 결제할 수 있는 고객에게만 통해요. 그런데 저희 고객은 결제 능력 자체가 없었습니다. 앱은 좋아하는데 지갑은 열 수 없었어요. 그해 매출이 백십억인데 영업손실이 삼백이십억이었습니다.
지금 저희가 하는 건 슈퍼 앱이 아니에요. 신용을 먼저 만들고 그 위에 상품을 하나씩 얹습니다. 저희가 직접 빌려주기도 하고 저희 심사를 통과한 분을 다른 금융사에 연결하기도 해요. 어떤 회사를 모델로 삼느냐보다, 우리 고객이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필요로 하는 사람인지가 먼저였습니다.”

-평균 대출 15만 원인 캐시론보다 최소 대출 1천8백 원, 일주일 상환이라는 레벨업론에 더 애정이 있어 보입니다. 그걸 신용 사다리, 신용학교라고 부르더군요. 1천8백 원을 제때 갚으면 한 단계씩 금액을 올려주는 게임식 설계 사다리를 유저들은 잘 건너갔나요?
“소액 대출인 레벨업론에 더 애정이 가는 이유는 이 상품이 저희가 무슨 회사인지 제일 잘 보여주기 때문이에요. 적은 금액을 일주일 빌려주는 건 대출이라기보다 시험입니다. 기록이 없는 사람에게 처음으로 기록을 만들어 주는 시험이요. 갚으면 다음은 조금 더, 또 갚으면 조금 더. 이 규칙은 저희가 발명한 게 아니라 그분들이 충전 앱에서 이미 익힌 규칙이었어요.
잘 건너갔느냐고 물으시면, 첫 계단을 넘긴 분들은 그다음부터 오래된 고객과 거의 차이가 없었습니다. 떨어지는 분들은 대부분 첫 계단에서 떨어져요. 그래서 첫 대출을 작게 하는 게 그분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고 저희를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신용학교라고 부르는 이유는 졸업이 있어서예요. 여기서 기록을 만든 분이 더 큰 대출로 가고, 저희 심사를 통과해서 다른 금융사 상품으로도 갑니다. 지금은 일주일 상품은 없고, 6개월이 최소 기간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일주일 안에 갚는 유저가 많습니다.”
-한편으론 누구에게 전화했는지, 어떤 문자메시지를 받는지… 본다는 게 좀 무섭기도 했어요. 앱을 깔고 로그인하고 신분증을 찍어 보내는 사이 AI로 심사가 이뤄지고 5분 만에 돈이 꽂히는… 이 공정으로 2021년 12월 창업 7년 만에 처음으로 흑자 전환했을 때, 어떤 깨달음이 찾아왔나요?
“일단 무섭다는 말, 이해합니다. 그래서 저희 원칙이 셋이에요. 본인이 동의한 데이터만 봅니다. 인도 중앙은행의 디지털 대출 지침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만 봅니다. 그리고 그 데이터를 거절이 아니라 승인을 위해 씁니다. 은행은 기록이 없으면 거절하지만 저희는 기록 대신 볼 것을 찾는 거예요.
흑자 때 깨달은 건 두 가지였어요. 하나는 흑자가 매출에서 오는 게 아니라 두 곡선이 만나는 지점에서 온다는 것. 이용자가 늘어 고정비가 나눠지는 곡선과 심사가 정교해져 떼이는 돈이 줄어드는 곡선. 이십만 원짜리 대출을 사람이 심사하면 남는 게 없어요. 그래서 시스템이 심사해야 했고, 그 시스템이 정교해지는 만큼이 이익이 됐습니다.”

-투자자인 소프트뱅크 그리고 크래프톤의 장병규 의장. 그들은 어피닛의 어떤 점을 높이 샀습니까?
“장병규 의장이 2014년 말에 첫 8억을 넣어주셨고, 소프트뱅크벤처스가 2016년 초에 30억을 넣었습니다. 장 의장이 그때 저희 회사에 투자한 이유 세 가지였어요. 첫째 인도라는 시장, 둘째 반복되고 예측 가능한 핀테크라는 사업, 세 번째가 ‘중년 벤처의 절박함’.
이삼십 대 창업자들이 드나들던 사무실에 시커먼 아저씨들이 들어와서 인생의 마지막 기회라고 하니 그런 생각이 드셨대요. 소프트뱅크는 백만 다운로드를 눈앞에 둔 숫자를 봤습니다. 장 의장이 글로벌 사업이니 글로벌 투자를 받는 게 좋다고 조언해 주셨어요.
돌아보면 두 분 다 기술을 보고 투자한 게 아니었어요. 그때 저희는 기술이 없었습니다. 시장과 절박함에 투자한 거예요. 그 뒤로 저희가 한 일은 그 두 가지를 기술로 바꾸는 거였습니다.”
-몸값 높은 인도 공과대학 IIT 출신들은 어떻게 스카웃했습니까?
“인도공과대학 IIT는 매년 백사십만 명이 응시해서 만 명이 붙고, 졸업하면 첫 연봉이 국내 기업과 비슷한 수준입니다. 스타트업이 데려오기 쉬운 사람들이 아니에요. 그래서 탐나는 사람이 있으면 메일을 계속 보냈습니다. 왜 당신이어야 하는지, 여기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사람은 돈만으로 안 오고, 자기가 왜 필요한지 들으면 옵니다. 지금도 그렇게 해요.
배운 것도 많았습니다. 이력서에서 회의 한 번 들어간 것도 경력이 되고, 평균 이삼 년마다 옮기니까 이직 사유가 진짜인지 가려내는 게 면접의 핵심 기술이었어요. IIT 출신들에게 이직 이유를 물으면, 개인보다 팀 우선 조직 문화를 이야기합니다.
한국 조직과 인도 조직을 한 팀으로 묶고, 문서로 일하는 방식을 세우고, 인도 리더를 앞에 세운 게 성과를 냈어요. 작년에는 우버 출신 AI 책임자를 모셔 왔습니다. 인도의 인재 시장은 깊어요. 문제는 그 사람들이 일할 수 있는 조직을 저희가 만들 수 있느냐였습니다.”

-한국인들의 완벽주의와 인도인들의 대충주의, 한국인들의 겸손과 인도인들의 자신감… 그 다름을 어떻게 화합했습니까? 그들과 지내면서 춤 실력은 많이 늘었나요?
“한국과 인도는 우선순위가 달랐습니다. 한국팀은 완성도를 먼저 보고 인도 팀은 속도와 대응을 먼저 봐요. “직관적으로 만들어 달라”고 하면 버튼 색만 바꿔 오는 일이 있었는데, 그건 성의 없는 게 아니라 같은 말을 다르게 해석한 거였습니다.
화합이라기보다 방법을 바꿨어요. 말로 하던 걸 문서로 하고, 돌려 말하지 않고, 한국 사람이 인도 팀을 관리하는 대신 인도 리더를 앞에 세웠습니다. 겸손과 자신감은 오히려 저희가 배웠어요. 한국식 겸손은 투자자 앞에서 자신 없음으로 읽히더라고요. 인도 동료들이 숫자를 들고 당당하게 말하는 걸 보고 저희 보고 방식이 바뀌었습니다.
춤은 안 늘었어요. 디왈리 파티에서 인도 직원들이 추는 걸 보면 저는 아직 멀었습니다. 대신 제가 대학 때 민요 동아리에서 장구를 쳤거든요. 인도 리듬에 장구가 의외로 맞아요.”
-금융 데이터가 없는 사람이 5분 만에 대출받을 수 있는 이런 식의 혁명은 한국에서도 필요한 것 같습니다만.
“한국은 사정이 달라요. 신용 기록 인프라가 촘촘해서 거의 모두가 점수를 갖고 있습니다. 5천만 명이 좀 넘는 인구에 신용카드 수가 거의 3억 개 가깝다고 들었어요. 인도는 14억 7천만 인구 중에 신용카드 수는 1억 2천만 개 정도예요. 저희가 한 건 신용 데이터는 없지만 신용은 있는 나머지 사람들을 위해 대안 신용평가 모델을 만든 거예요.
그래서 저희 다음 시장은 한국이 아니라 베트남 같은 개발도상국이에요. 지금 정부 샌드박스 안에서 저희 신용평가를 검증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수억 명의 인도인들에게서 확인한 방식을 다음 나라로 옮기는 단계예요.”

-50년 전 무함마드 유누스 교수는 방글라데시 그라민 은행에서 했던 실험 “가난한 사람도 함께 신용을 연대 보증하면 돈을 잘 갚을 수 있다”는 걸 증명하면서 노벨 평화상까지 받았습니다. 그 기저에는 인간에 대한 사랑과 구제의 마음이 있었지요. 당신은 어떤가요? 어떤 마음으로 사업을 했습니까?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저는 구제하러 간 게 아니라 사업하러 갔어요. 첫 회사가 무너진 뒤였고, 마지막 기회라는 절박함과 큰 문제를 봤다는 흥분이 첫 마음이었습니다. 유누스 교수님과 나란히 놓기엔 부끄럽죠. 겹치는 게 있다면 하나예요. 가난한 사람도 갚는다는 믿음. 그분은 그걸 연대 보증으로 증명하셨고, 저희는 데이터로 확인했습니다.
옆집 눈치 대신 스마트폰에 남는 충전 습관과 문자 기록을 봤어요. 그리고 사업으로 해야 오래 갑니다. 자선은 돈이 떨어지면 멈추지만, 갚은 사람에게 다시 빌려주는 구조는 계속 돌아가요. 마음은 나중에 생겼습니다. 빈민가에서 갓난아이 병원비 때문에 대출을 받고 고마워하던 분, 몸이 불편한데도 백오십 원짜리 보상을 모아 가족을 먹이던 에이전트. 그런 분들을 만나고 나서야 이 일이 무엇인지 알았어요."
-이 성공은 데이터가 이룬 겁니까 발바닥이 이룬 겁니까?
“성공이라는 말은 아직 안 씁니다. 살아남았어요. 순서로 답하면 발바닥이 데이터를 만들었습니다. 골목에서 본 행동, 잔액을 하루 몇 번 확인하고 삼십 루피씩 쪼개 충전하는 행동이 나중에 심사 변수가 됐어요. 데이터는 발바닥으로 확인한 것을 1억 명에게 넓힌 거고요. 그리고 데이터가 이상하면 다시 골목으로 갑니다. 발바닥, 데이터, 다시 발바닥이에요.”
-누구에게 가장 많이 배웠나요?
“가장 많이 배운 건 고객이에요. 그분들은 제 가설이 틀릴 때마다 알려줬습니다. 결제로 넘어갈 수 없다는 것도, 슈퍼 앱이 아니라 돈 몇 푼이 필요하다는 것도, 영어를 좋아하지만 못 읽는다는 것도 전부 고객이 행동으로 가르쳐 줬어요.”

-회사의 실적은 지금 어느 정도입니까?
“2021년 12월에 처음 한 달 흑자를 낸 뒤로 흑자를 유지하고 있어요. 트루밸런스는 1억 2천만 명이 내려받았고, 해마다 성장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낯선 시장, 낯선 소비자에게 진출하려는 스타트업 리더에게 조언을 부탁합니다.
“첫째, 시장의 크기 말고 문제의 크기를 보세요. 인도가 14억이라는 숫자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 안에서 누가 어떤 문제를 매일 겪는지를 봐야 해요. 둘째, 설문이 아니라 손가락을 보세요. 사람들이 좋다고 말하는 것과 실제로 하는 행동은 다릅니다. 저는 그 차이를 수백억 주고 배웠어요.
셋째, 가기 전에 조건 셋을 확인하세요. 현지에 가서 살 사람이 있는가, 몇 년을 버틸 돈이 있는가, 책상이 아니라 골목에서 관찰할 각오가 있는가. 이 셋이 있으면 인도만큼 큰 기회가 없고, 없으면 인도만큼 어려운 시장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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