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가 오페라면 KBO는 로큰롤…잠실이 딱 그랬다
잠실야구장을 떠나보내며
![전 세계 100곳 넘는 야구장을 화폭에 담아온 화가 앤디 브라운이 가장 아끼는 작품 중 하나인 잠실야구장 그림. [앤디 브라운]](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10/17/joongangsunday/20261017011841268rphq.jpg)
어떻게 셈하든 잠실야구장은 집과 사무실을 빼면 내가 한국에서 가장 오래 머문 건물이다. 다만 지붕이 없을 뿐이다. 아직은.
지난 14일 와일드카드 결정전이 마지막 ‘잠실 더비’였다. LG가 4-1로 이기며 두산의 시즌이 끝났다. 열리지도 않은 2차전 표를 사 둔 터라 더 아팠지만, 올 시즌을 생각하면 그럴 만했다. 40년 동안 한 구장을 나눠 쓴 두 팀의 마지막 맞대결이었다. 잠실의 가을 야구는 조금 더 이어지지만, 12월이면 철거가 시작된다.
그 자리에는 3만 석 규모의 돔구장이 들어선다. 완공 목표는 2032년. 그때까지 두 팀은 바로 옆 1988년 올림픽 주경기장을 엉거주춤 개조한 야구장에서 다섯 시즌을 보낸다.
나는 어릴 때부터 야구팬이었다. 영국인으로선 드물지만 없는 일은 아니다. 첫사랑은 보스턴 레드삭스와 산하 마이너리그팀 포터킷 레드삭스였다. 포터킷은 몇 년 전 구장도, 이름도 잃었다.
2012년 한국에 와서 처음 산 곳은 충남이었다. 한화 이글스의 땅이지만, 야구사를 좀 아는 사람이라면 그곳이 원래 베어스의 땅이라는 걸 안다. OB 베어스는 1982년 대전에서 창단해 세 시즌을 보낸 뒤 서울로 떠났고, 그 빈자리를 채운 게 빙그레, 지금의 한화다.
![2013년 잠실야구장을 찾았을 당시 관중석에서 기자(왼쪽)의 모습. [사진 케빈 밀러]](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10/17/joongangsunday/20261017011842520mmxr.jpg)
1982년 7월 문을 연 잠실은 한국 야구의 큰 순간들을 품었다. 그해 세계야구선수권 최종일 일본전에서는 김재박의 ‘개구리 번트’와 한대화의 3점 홈런이 우승을 결정지었다. 1999년 한화의 첫 우승도 이곳에서 나왔다. 1990년 관중 난동처럼 아름답지 않은 순간도 있었다. 그것도 잠실이었다.
MBC 청룡이 1983년, 동대문을 거친 OB가 1986년 자리를 잡으며 ‘한 지붕 두 가족’이 시작됐다. 지붕도 없는 야구장에 붙은 별명치고는 꽤 근사하다. 잠실을 홈으로 쓰는 동안 LG는 네 번, 두산은 다섯 번 정상에 올랐다. 2000년 김동주가 경기장 밖까지 날린 150m 홈런의 낙하지점에는 동판이 박혔다. 구장은 사라져도 그 동판은 남는다.
덥든 춥든, 비가 오든 맑든 그 관중석에 앉았다. 거의 늘 1루 쪽 응원단 바로 옆 레드석이었다. 순수한 기쁨도, 가슴이 무너지는 패배도 거기서 겪었다. 니퍼트 같은 레전드를 떠나보내는 자리에서는 경기가 끝나고도 한참을 남아 있었다.
두산 팬은 ‘최강 10번 타자’로 불린다. 나도 내 몫은 하려고 애썼다. 2015년 한국시리즈는 영국에서 밤잠을 설쳐 가며 봤고, 연애 시절엔 한화 팬이던 아내를 잠실로 데려가 두산 팬으로 ‘개종’시켰다. 애국가보다 봄여름가을겨울의 ‘브라보 마이 라이프’를 먼저 외웠을 것이다. 포스트시즌 일부 경기에서 무작위로 나눠주는, 돈으로는 살 수 없는 두산 깃발은 내 물건 가운데 손에 꼽을 만큼 자랑스럽다.
이후 코리아중앙데일리의 야구 기자로, 스포츠부장으로 일하며 전국 야구장을 두루 다녔다. 어느 곳도 잠실을 대신하지 못했다.
잠실은 완벽한 적이 없었지만 집이었다. 그 시절 야구장이 대개 그렇듯 어수선한 콘크리트 덩어리이고, 스카이박스나 기업 접대용 라운지 같은 건 염두에 두지 않고 지어졌다. 한 번은 경기 중 기업 행사에 갔는데, 두산의 해법은 평범한 사무실 벽에 커다란 깃발을 테이프로 붙이는 것이었다.
그런데 야구란 원래 그래야 하지 않나. 잠실은 기업이 아니라 팬을 위한 곳이었다. 의도는 아니었을지 몰라도 결과는 그랬다. 어느 자리든 거기서 거기였고, 예전엔 적은 돈으로도 좋은 시야를 얻을 수 있었다. 아름다울 만큼 민주적인 경기장이었다.
롯데 팬이자 KBO의 열렬한 전도사였던 고(故) 케리 마허는 ESPN에 MLB가 오페라라면 KBO는 로큰롤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로큰롤은 깔끔할 필요가 없다. 거칠고 투박해야 한다. 잠실이 딱 그랬다. 전 세계 100곳이 넘는 야구장을 화폭에 담아 온 화가 앤디 브라운에게 잠실 그림은 가장 아끼는 작품 가운데 하나다.
올해는 두산과 상관없는 이유로 평소만큼 야구장에 가지 못했다. 그래서 잠실의 끝이 불쑥 다가왔다. 아직 서 있는 곳을 미리 애도하는, 이상한 상실감이 든다. 잠실을 오래 드나든 팬이라면 다들 비슷할 것이다.
2032년 베어스가, 그리고 트윈스가 돌아오면 관중석 위엔 지붕이 있을 것이다. 아마 잴 수 있는 거의 모든 면에서 더 나은 야구장일 것이다. 다만 우리 집은 아닐 것이다.
짐 불리 코리아중앙데일리 에디터. 영국 런던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요크대 정치학과 졸업. 22세 때인 2012년 한국에 처음 왔다. 2016년 ‘코리아중앙데일리’에 합류, 비즈니스에디터·스포츠부장을 거쳐 콘텐트전략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골수 두산 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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