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의 내일을 기르는 씨앗[이완의 흙 한줌](5)

2026. 10. 16.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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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벼 여섯 품종 이름표. 이완 제공

사람 별명 같기도 하고 옛 지명 같기도 한 낯선 이름들이 있다. 조동지, 노인도, 흑도, 소유리, 강원도, 보리벼. 모두 한때 우리 들판에서 길렀으나 이제는 보기 어려워진 토종벼다. 올해 전교생이 16명인 작은 학교에서 커다란 화분 6개에 이 여섯 가지 벼를 심었다. 나는 2학기부터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농사 수업을 맡아 아이들과 벼를 돌보았다.

학교가 작으니, 아이들 누구나 농사일에 제 몫을 할 수 있었다. 벼는 품종별로 따로 길렀고, 자라는 모습이 어떻게 다른지 기록했다. 거둔 볍씨도 섞이지 않게 갈무리했다. 품이 많이 들고 세심한 눈길이 필요한 일이었다. 작아서 모자란 학교가 아니었다. 작아서 벼 한포기, 아이 한 명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학교였다.

물론 작다고 저절로 되는 일은 아니다. 전교생이 한 달에 한 번 손발을 맞추려면 누군가 뜻을 품어야 한다. 선생님들은 아이들이 날마다 먹는 쌀이 어디서 오는지 알기를 바랐다. 흙을 만지고 싹을 틔우는 경험이 배움의 바탕이라 여겼다. 아이들이 벼 곁에서 배울 시간은 그렇게 마련됐다.

여섯 빛깔의 벼는 아이들과 함께 자랐다. 아이들은 화분 앞에 쪼그려 앉아 벼꽃을 지켜보았다. 줄자를 대 키를 재고, 벼알 끝에 난 까락의 길이를 적었다. 어떤 벼는 훌쩍 키가 컸고, 어떤 벼는 한참 늦게 이삭을 내밀었다. 서로 다른 속도로 자라는 벼를 돌보며 아이들도 저마다의 속도로 자랐다. 기록지에는 벼가 아이들 마음에 남긴 무늬가 고스란히 쌓였다.

작은 학교 존폐, 아이 수로만 판단해선 안 돼

2학기 첫 수업 날, 출석을 불렀다. 선생님이 병설 유치원에 아이 둘이 새로 들어왔다고 했다. 1학기에는 유치원 아이가 1명뿐이었는데, 이제 그 아이 곁에 둘이 더 앉아 있었다. 내년에 1학년이 될 아이가 셋이라니. 반가웠다. 그런데 반가움 뒤로 무언가 목에 걸렸다. 아이 둘이 늘어난 일이 이토록 큰 소식이 되는 곳. 그게 지금 우리가 사는 마을이다.

고학년은 그나마 낫다. 학년이 내려갈수록 아이 수가 가파르게 줄어든다. 해마다 새로 만나는 아이들이 그만큼 귀해졌다는 뜻이다. 첫째를 시골 학교에 보낼 때만 해도 전교생은 100명에 가까웠다. 여섯 해 뒤 졸업할 무렵에는 40명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웃 마을 학교는 사정이 더 나빴다. 지인의 막내는 혼자 입학해 선생님과 단둘이 공부했다. 아이 옆 빈자리에는 인형이 앉아 있었다고 한다. 아이에게는 짝이 필요했고, 선생님에게는 가르칠 아이들이 필요했다.

이 장면은 외딴 시골 학교만의 일이 아니다. 사람이 줄면 학교가 작아진다. 학교가 작아지면 아이 키우기가 어려워진다. 젊은 식구들은 농촌을 떠나거나 아예 들어오지 않는다. 그렇게 학교가 끝내 문을 닫으면 마을은 삶의 밑바탕마저 잃는다. 흔히 ‘지방소멸’이라 부르는 흐름이다.

‘소멸’이라는 말은 이 일을 저절로 꺼져가는 불처럼 보이게 한다. 실제로는 사람과 사람, 사람과 땅을 잇던 끈이 하나씩 끊어져온 결과다. 아이가 줄어든 학교는 문제의 뿌리가 아니다. 마을이 사람을 맞아들이고 머물게 하는 힘을 오랫동안 잃은 끝에 드러난 모습일 뿐이다. 학교는 한 마을이 다음 세대를 맞이할 수 있는지 가늠하는 생활 기반이다. 아이 수만으로 문을 닫는다면 남아 있던 끈마저 끊어버리는 셈이다. 작은 학교의 존폐를 아이 수로만 판단해서는 안 되는 까닭이다.

아이들이 관찰한 벼 자람새. 이완 제공

벼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조선도품종일람>에는 100여년 전 이 고장에서 노인도와 흑도를 길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벼를 심는 사람이 없다. 우리는 다른 고장에서 씨앗을 얻어서 뿌렸다. 아이들이 쓴 기록지를 펼쳐보니 여섯 가지 벼의 차이가 한눈에 들어왔다. 까락의 길이와 색, 키와 이삭 모양이 저마다 달랐다. 씨앗 몇톨을 심었을 뿐인데 오래된 농사의 시간이 눈앞에 그려졌다. 낟알에는 어느 논에서 자랐는지, 어떤 날씨를 견뎠는지, 누가 해마다 씨를 받아왔는지가 담겨 있다. 이제는 그 내력을 다 알 길이 없다. 씨앗은 대대로 물려받은 생명이면서, 그 땅에서 살아온 이들의 살림을 적어둔 기록이다.

농부가 늙으면 다음 사람이 논을 이어받는다. 한 가지 벼가 100년을 건너온 건 씨앗이 좋아서만이 아니다. 누군가 심고, 실패하고, 적어두고, 다시 심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 당연한 일이 어려워졌다. 농사짓는 사람이 줄면서 그 벼를 기억하는 사람도 시나브로 사라졌다. 언제 심는지, 어느 논이 맞는지, 어떻게 말리고 갈무리하는지에 관한 앎마저 끊긴다.

마을 형편에 맞춰 아이들이 배울 길 찾아야

예전에는 아이들이 어른 곁에서 모를 내고 볍씨를 고르며 농사를 몸으로 익혔다. 끈의 한쪽 끝은 씨앗을 건네는 어른이, 다른 한쪽 끝은 그것을 건네받을 아이가 쥐고 있었다. 씨앗을 이어갈 사람이 줄어든 일과 마을에 아이가 줄어든 일은 따로 일어난 두 사건이 아니다. 한 줄의 끈이 양 끝에서 함께 풀려가고 있다. 화분 6개는 그 두 끝을 잠시 맞대본 자리였다.

끈을 맞댄다고 그때의 모습 그대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토종벼도 달라진 날씨를 비껴가지 못했다. 덥고 눅눅했던 올해, 여섯 가지 벼는 모두 애를 먹었다. 보리벼와 조동지는 그런대로 버텨냈지만, 노인도와 강원도, 소유리는 끝내 이삭을 실하게 채우지 못했다. 흑도는 참새와 노린재에게 낟알을 빼앗기고도 새 이삭을 세웠다. 좁은 화분에서 한 해 길러본 결과이니, 날씨뿐 아니라 재배환경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100년 전 같은 고장의 논에서 자랐다는 흑도와 노인도조차 올해는 서로 다른 길을 갔다.

흔히 토종이라 하면 어떤 날씨에도 끄떡없는 억센 벼를 떠올린다. 그러나 토종은 어디서나 살아남는 벼가 아니다. 한 고장의 흙과 날씨 속에서 오래 적응해온 벼다. 그해의 비와 더위, 병과 벌레를 견딘 벼가 맺은 낟알이 다음 해로 건너간다. 씨앗을 창고 깊이 넣어두는 것만으로는 모자라다. 이 땅에 거듭 심어봐야 앞으로도 여기서 살아갈 씨앗인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학교도 마찬가지다. 문을 열어두는 것만으로는 다음 세대를 맞이할 수 없다. 달라진 마을 형편에 맞춰 아이들이 배우고 머물 길을 찾아야 한다.

무엇이 살아남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래도 내년에는 올해 받아둔 볍씨를 아이들과 흙에 묻으려 한다. 이제는 다른 고장에서 얻어온 씨앗이 아니라 이 마을에서 한 해를 난 씨앗이다. 이삭이 시원찮았던 노인도와 강원도, 소유리도 쭉정이 사이에서 골라낸 낟알로 한 번 더 길러볼 생각이다.

내년 봄, 유치원의 세 아이도 1학년 교실에 들어선다. 이어짐은 이토록 작다. 누군가 씨앗을 남기고, 아이가 앉을 자리를 비워두지 않은 덕이다. 어른들은 삶과 맞닿은 배움의 길을 열고, 아이들은 제 손으로 벼를 기르며 밥과 땅과 마을의 내력을 이어간다. 그렇게 학교는 다음 세대를 품는 터전이 된다.

이완 여성 농민·생태활동가 402sou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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