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전 도운 아이 훗날 찾아와 “후원자 됐어요”… 내겐 최고의 선물[M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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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복지전문기관 초록우산의 여승수(61) 사무총장은 35년째 초록우산으로 출근하고 있다. 대학 때 사회복지사 자격을 취득하고, 1992년부터 현장에서 일을 시작한 뒤 2024년 1월에는 초록우산 사무국을 책임지는 사무총장 자리까지 올랐다.
여 총장은 "저는 정년퇴직을 해도 사회복지사입니다. 자격증도 그대로 있습니다. 아동복지 분야에서 오래 일한 만큼, 당분간 현장에 관한 관심을 놓지 않고 싶어요. 용기를 내어 따뜻한 기부에 나서는 것이 아동 삶의 변화로 이어지는 뜻깊은 실천이라는 신념에는 변화가 없고 그대로 행동할 것입니다. 초록우산 아동 후원도 계속할 것이고, 또 제가 할 수 있는 다양한 방식으로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일에 힘을 보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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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들에 ‘마음까지 따뜻한 사회복지사’란 말 자주 해 와
암투병 아동 머리 자라 다시 방문… 드라마처럼 모두 박수
작은 정성이 한 가정에 큰 변화를 줘… 행복하고 보람차죠
다양한 방식으로 ‘아이들 행복한 세상 만들기’ 힘 보탤 것

아동복지전문기관 초록우산의 여승수(61) 사무총장은 35년째 초록우산으로 출근하고 있다. 대학 때 사회복지사 자격을 취득하고, 1992년부터 현장에서 일을 시작한 뒤 2024년 1월에는 초록우산 사무국을 책임지는 사무총장 자리까지 올랐다. 30년 넘게 도움이 필요한 아이의 옆을 지키는 일, 내 결정 하나로 한 아이의 삶과 미래 경로를 바꿀 수도 있는 일, 서류 뭉치 곁이 아닌 현장의 아이 옆에서 온전히 감정을 나누는 일을 하는 이의 삶의 의미와 직업윤리가 궁금했다.
지난달 30일 찾은 서울 중구 초록우산 사무국 한편에 마련된 여 총장의 방은 소박했다. 그의 책상 옆 벽에 걸려 있는 작은 액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마음까지도 따뜻한 사회복지사’라는 문구와 초록우산이 그려진 작은 캘리그래피였다. 사회복지사는 이미 따뜻한 일을 하는 사람인데, 그 앞에 굳이 ‘마음까지도 따뜻한’이라는 문구로 동어를 반복한 이유를 알고 싶었다.
여 총장은 “제가 평소 동료들에게 저 말을 자주 했다고 해요. 동료 한 명이 저 말이 인상적이었는지 2018년쯤 제게 이 문구가 적힌 작은 캘리그래피 액자를 선물하더라고요. 그래서 걸어 둔 것입니다.” 그는 쑥스러운지 액자가 걸린 이유를 말하고, 문구의 의미는 설명하지 않았다. 재차 물었다. 그는 “누군가를 도와주는 일인데, 마음 한 스푼 얹으면 도움을 받는 이들의 마음에 변화가 조금은 더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대부분의 직장인은 안다.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됐을 때 마음의 변화를…. 특히 같은 일을 수십 년 할 때의 당황스러운 권태를…. 여 총장에게 “직장인으로서 매너리즘은 없냐”며 얕은 질문을 했고, 여 총장은 본질적 ‘삶의 의미’를 짚었다. 그는 “현장의 사회복지사로 일을 시작해 지금은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지만, 사실은 지금도 여전히 사회복지사입니다. ‘현장에 있을래? 사무국에 있을래?’라고 묻는다면, 저는 현장의 사회복지사를 택할 겁니다. 처음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지만, 그냥 쉬지 않고 ‘행복하고 보람찬 일’을 하고 싶어요. 그게 제 마음입니다.”

35년째 사회복지사로 일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아동이 있는지 물었다.
여 총장은 “예전에 ‘사랑의 리퀘스트’라는 프로그램을 담당할 때 만난 한 아이가 기억에 남습니다.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로 집안이 기울었는데, 아이가 뼈에 생기는 암까지 앓게 됐습니다. 어머니 혼자 생계를 이어 가고 있어 도저히 큰 치료비를 마련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죠. 당시 제가 가정을 방문해 아동의 사연이 방송에 소개될 수 있었어요. 국민께서 십시일반 모아 주신 성금으로 치료를 지원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 만났을 땐 항암치료로 머리카락이 거의 없었던 아이가 힘든 치료와 골수이식을 잘 견디며 건강을 회복해 나가는 그 과정은 아직도 벅찬 감동입니다. ‘행복하고 보람찬 일’이죠.”
이렇게 아이를 도와주고 나면, 그 인연이 계속 이어지는지 궁금했다. 그는 “그 아이가 짧았던 머리가 다시 자란 모습으로 사무실에 찾아왔어요. 드라마처럼 직원 모두가 박수로 그 아이를 맞아 줬어요. 이후에도 아이와 어머니는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까지 연락을 주셨습니다. 우리의 작은 정성이 한 아이의 삶과 한 가정에 큰 변화를 만들어 냈다는 생각에 한없이 뿌듯했습니다.”
여 총장에게 사회복지사와 아이의 ‘라포르’(신뢰관계)가 언제 어떻게 형성되는지 물었다. 현장의 사회복지사들만 아는 어떠한 포인트가 분명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그 질문을 하시니, 1993년쯤 인천에서 만난 한 중학생 아이가 떠오릅니다. 조부, 동생과 함께 어렵게 생활하던 아동이었는데 공부를 잘했지만 말수가 적고 낯선 사람을 피하는 모습이었어요. 저는 여러 번 가정 방문을 했습니다. 관심사를 묻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이야기를 나눴어요. 극적이지는 않지만, 아이의 마음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하는 걸 느꼈어요. 그러다 어느 날 그 아이에게서 편지가 왔습니다. 그 편지에는 ‘저에게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고 물어봐 준 사람이 선생님이 처음이었어요’라고 적혀 있었어요.”
여 총장의 답변에 라포르 형성을 위한 특별한 비법 같은 것은 없었다. 그저 내 아이에게 하듯, 애정을 가지고 현재 관심사가 무엇인지 묻고,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꿈꾸는 일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물어봐 주는 일. 그것이면 충분했다. 여 총장이 말한 중학생 시절의 그 아이는 대학을 나와 직장 생활을 하게 됐다. 어느 날은 쌍둥이 자녀를 데리고 감사의 인사를 하러 여 총장을 찾아왔다. 그는 “선생님, 저 초록우산 후원자가 됐어요”라고 했다. 이것은 여 총장이 가장 좋아하는 선물이다. 동시에 초록우산이 지향하는 ‘나눔의 선순환’이기도 하다.
여 총장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그의 가정은 어떤지 궁금했다. 남의 아이를 제 아이처럼 돌보는 사회복지사의 가정은 어떤 모습일까. 여 총장은 “이 질문은 어려운데요. 저는 ‘아동 중심’으로 생각하려고 합니다. 우선, 가급적이면 아이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 주려고 합니다. 그리고 섣불리 제가 판단하려 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부모가 무언가를 선택해 ‘너 이것 해라’가 아니라, ‘이러한 선택지들이 있어’라고 알려 준 뒤 아이가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것이지요.”
올해 연말 퇴임 후 무엇을 할지도 궁금해졌다. 해외 한 달 살기를 한다거나, 순례길을 걷는다는 식의 대답을 할 것 같지는 않았다. 여 총장은 “저는 정년퇴직을 해도 사회복지사입니다. 자격증도 그대로 있습니다. 아동복지 분야에서 오래 일한 만큼, 당분간 현장에 관한 관심을 놓지 않고 싶어요. 용기를 내어 따뜻한 기부에 나서는 것이 아동 삶의 변화로 이어지는 뜻깊은 실천이라는 신념에는 변화가 없고 그대로 행동할 것입니다. 초록우산 아동 후원도 계속할 것이고, 또 제가 할 수 있는 다양한 방식으로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일에 힘을 보탤 겁니다.”
손기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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