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브스夜] '꼬꼬무' 김귀정 열사 사망 사건···"귀정이의 시신을 지켜라" 그들이 '진짜' 지켜내고자 한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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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시신을 지키기 위한 친구들의 눈물겨운 사수 일지가 공개되었다.
15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에서는 '귀정이를 지켜라 - 35년간의 사수'라는 부제로 김귀정 열사 사망 사건을 조명했다.
그리고 얼마 전 벌어진 경찰의 시신 탈취 사건으로 진실이 가려져 버린 한 노동자의 죽음 앞에 친구들은 스스로 귀정을 지키기 위해 나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에 귀정의 친구들과 어머니는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했고 국가는 "김귀정의 사망은 전경들의 직무집행상의 과실로 발생한 것"이라며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인한 사망을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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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연예뉴스 | 김효정 에디터] 친구의 시신을 지키기 위한 친구들의 눈물겨운 사수 일지가 공개되었다.
15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에서는 '귀정이를 지켜라 - 35년간의 사수'라는 부제로 김귀정 열사 사망 사건을 조명했다.
1991년 5월 어느 새벽, 수백 명의 청년들이 서울 명동의 백병원으로 모였다. 그리고 이들은 스크럼을 짜고 영안실 앞을 막아섰다.
어느 누구도 왜 그래야 하는지 설명하지 않았지만 순식간에 수천 명의 학생들이 모이고 그중 100여 명이 영안실을 지키고 있었던 것. 그리고 그들은 "우리는 절대 귀정이를 내줄 수 없다"라며 하나의 목소리를 냈다.
몇 시간 전 숨진 스물여섯 살의 대학생 김귀정의 시신을 지키기 위한 성균관대 학생들이 마음을 함께했던 것.
뜻밖의 죽음을 맞은 귀정. 이에 경찰은 귀정의 사망이 단순 사고사라 판단하고 빨리 부검을 하고 장례를 치르자고 했다. 하지만 친구들은 달랐다. 그들은 귀정의 사망에 의문을 갖고 정확한 사망 경위를 파악해 달라 요구한 것.
그러나 검찰은 귀정의 사망 5시간 만에 압수 수색 영장을 발부했다. 그리고 얼마 전 벌어진 경찰의 시신 탈취 사건으로 진실이 가려져 버린 한 노동자의 죽음 앞에 친구들은 스스로 귀정을 지키기 위해 나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사실 낮에는 공장 보조, 밤에는 식당 일을 하며 학비를 벌며 민주주의보다 먹고사는 일이 더 절박했던 귀정은 높은 학비 때문에 학교를 그만두었었다. 하지만 결코 포기할 수 없는 학업에 대한 의지로 1988년 성균관대 불문과에 다시 입학한 귀정. 그는 앞선 대학 생활과 달리 이번에는 알바도 하며 틈틈이 대학 생활을 즐기며 살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학생 운동을 하다가 수배자가 된 친구를 보며 스스로의 삶을 반성하게 된 귀정은 결국 운동권 동아리에 가입해 학생운동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리고 귀정은 "나의 일신만을 위해 호의호식하지 않을 것, 결코 그러지 않을 것"이라는 다짐으로 동아리연합회 임원 선거에도 출마하며 학생운동에 앞장섰다.
사망했던 날도 귀정은 집회에 참여했다. 그런데 순식간에 사라진 귀정은 주검이 되어 친구들 앞에 돌아왔던 것이다.
그런 귀정을 지키기 위해 병원으로 모인 학생들. 그리고 시신을 지키던 그날 새벽 영안실 안의 전화기가 울렸다. 그리고 누군가가 다급한 목소리로 "오늘 밤에 상황이 있을 거예요, 누군가 정말 죽을지도 몰라요"라고 말했다.
부검을 위한 시신 압수수색 영장 만료일이었던 그날. 새벽 5시 무장한 전경들 1500여 명이 동원되어 학생들을 향해 최루탄과 돌을 던지고 맨몸이나 다름없는 학생들은 귀정이의 시신을 지키고자 이를 막아섰다.
경찰은 거기에 진압용 살수차 동원해 최루액 물대포를 쏘았고 죽음도 불사하며 귀정의 시신을 지키고자 한 사수대는 끝까지 귀정을 지켜냈다.
하지만 경찰은 다시 돌아올 것을 경고하며 영장을 재발부 받았다. 그리고 며칠 후 검찰과 부검의가 귀정의 시신을 부검하고자 찾아왔다.
사수대의 의지와 달리 귀정의 어머니가 부검에 동의했던 것. 누구보다 완강히 부검을 반대했지만 친구들의 안위를 걱정했던 어머니는 "난 우리 딸 같은 일이 다시 생기는 것 원하지 않는다"라며 결국 부검을 허락했던 것이다.
1991년 6월 7일 부검이 시작되고 부검 결과는 검경의 주장과 동일한 단순 압박에 의한 질식사로 판명되었다.
앞서 부검에 동의하며 경찰 진압 과정에 대한 수사를 요청한 귀정의 어머니. 하지만 사수대는 검찰을 믿지 못했고 결국 동문들에게 도움을 청해 진상조사단을 결성했다. 국과 공권력을 믿지 못한 이들이 최후의 보루를 만든 것.
그리고 귀정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밝히고자 당시 귀정이 참여했던 시위에 갔던 많은 이들이 제보를 해왔다.
1991년 5월 25일, 비 내리던 그날 집회에서는 여느 날과 달리 후퇴하는 학생들을 향해 최루탄을 쏘는 토끼몰이를 했다. 그리고 사복 체포조인 백골단까지 등장하며 시위대를 진압했다.
그리고 시위대는 이들의 폭력을 피하기 위해 골목으로 도망쳤다. 하지만 그곳으로도 경찰의 최루탄이 날아왔고 백골단 역시 시위대의 뒤를 쫓았다.
일명 사과탄인 손에 쥐고 던지는 최루탄을 시위대를 향해 던진 경찰들. 이를 직접 맞은 채수진 학생은 귀정을 위해 자신이 겪은 일을 모두 증언했다.
그는 자신의 옆으로 검고 동그란 머리들이 산처럼 쌓이던 광경을 잊지 못했던 것. 그리고 이 모습을 지켜보며 사진으로 남긴 한 대학의 학보사 기자는 증거 사진을 진상조사단에 제보했다. 이에 과잉 진압에 의한 사망이 명백하다고 판단한 진상조사단.
87년 박종철 이한열 열사의 죽음은 6월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되고 이에 대통령 직선제가 16년 만에 부활했지만 전두환의 친구 노태우가 당선되며 또다시 신군부 출신의 대통령이 집권을 하게 된 대한민국.
노태우는 "나는 전두환과 다르다"라며 선을 그었지만 국가 보안법을 앞세워 대학생을 비롯한 수많은 시민을 구속, 시위를 무력 진압했다. 이에 1991년, 대학생이 또다시 공권력에 의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그러나 일부 경찰의 돌발 행동이라 선을 그은 공권력. 이에 수십만 명이 매일 거리로 나와 정권 퇴진을 요구했고 수많은 이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죽음으로 저항했다.
그리고 또다시 시위 현장에서 사망한 대학생 귀정. 이에 학생들은 과잉 진압의 진실을 이번에는 반드시 밝혀내야만 했다. 그리고 공권력은 어떻게든 진실을 막아야 했다.
진상조사단의 증거에도 경찰은 끝까지 과잉 진압을 인정하지 않았고 검찰도 끝까지 귀정의 죽음이 단순 사고사라고 판단했다.
이에 당시 진상조사단 중 한 명은 "압박 질식사에 이르게 된 선행 요인이 있었는데 그걸 밝히지 못했다는 게 아직도 부채감으로 남아, 송구하고 미안하다"라고 말했다.
압박 질식사로 종결된 귀정의 사망. 그리고 치르게 된 장례식. 귀정의 친구들과 가족은 귀정의 운구를 끌고 귀정의 학교인 성균관대로 향했다. 그런데 한복에 유건을 쓴 유림들이 유학자들의 위패를 모신 성역과도 같은 성균관대를 시신이 지나갈 수 없다며 막아섰다.
이에 친구들은 빗속에 무릎을 꿇고 간청했다. 귀정을 지키지 못했다는 미안함에 마지막 길만은 후회 없이 보내주고 싶었던 것. 결국 친구들의 진심은 유림을 움직였다.
귀정의 친구들 뿐 아니라 3만여 명이 참여한 귀정의 장례식. 그들의 마음속에 귀정은 김귀정 열사로 남았다. 그리고 2년 뒤 출범한 김영삼의 문민정부.
이에 귀정의 친구들과 어머니는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했고 국가는 "김귀정의 사망은 전경들의 직무집행상의 과실로 발생한 것"이라며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인한 사망을 인정했다. 귀정이 사망하고 4년 만에 진실이 인정받은 것이다.
여전히 귀정을 그리워하고, 곁을 지키는 사수 대들은 한 해도 빠지지 않고 귀정이 떠난 날이면 귀정을 찾아간다. 그리고 수백 명의 친구들을 위해 늘 밥을 짓는 귀정의 어머니.
살아남아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귀정의 친구들에게는 "나의 일신만을 위해 살지 않겠다"라는 귀정의 다짐이 마음속에 남았다.
그들은 "세상을 바꿀 수는 없더라도 억울하게 죽이거나 죽지는 말자"라고 다짐하고 세상을 정의롭고 바르게 살아가기 위해 애쓰고 있다.
내가 사는 오늘은 누군가가 그렇게 소원하였던 일상이었음을 새기며 언젠가 먼 훗날 다시 만날 귀정에게 "나 어땠어? 나 괜찮게 살다왔지?"라고 자신 있게 물어볼 수 있는 삶을 살아가겠노라 다짐했다.
지금도 귀정이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부채감에 시달리는 친구들. 하지만 지금까지 그를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것만으로도 귀정을 지켜낸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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