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김치 맛에 빠졌는데… 담글 시간도 공간도 없는 우리[이용재의 식사의 窓]

이용재 음식평론가 2026. 10. 15. 23:01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K푸드'의 약진 속에 한식의 상징인 김치도 세계로 뻗어 나가고 있다.

무 한 통, 배추 한 포기만 담그려 해도 김치는 제법 넓은 공간을 차지한다. 늘어나는 1인 가구의 주거공간, 특히 부엌은 김치처럼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을 만들기에 비좁다.

공간 문제는 집 밖에서도 김치의 맛을 좌우한다.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용재 음식평론가
‘K푸드’의 약진 속에 한식의 상징인 김치도 세계로 뻗어 나가고 있다. 고춧가루의 매콤함, 생마늘의 알싸함에 발효로 생긴 젖산의 새콤함과 특유의 냄새까지 외국인에게는 난도가 만만치 않은 음식이라 여겼건만 시쳇말로 잘나가고 있다. 20여 년 전 미국 지역신문에서 젓갈도 쓰지 않고 발효도 거치지 않은 샐러드를 김치라 소개한 레시피를 보고 항의 메일을 보냈던 경험을 떠올리면 격세지감이다.

특히 요즘은 이웃 나라 일본에서도 사랑받고 있다. 소셜미디어에는 ‘진짜 한국산 김치를 먹고 싶다. 좋은 브랜드를 알려 달라’ 같은 질문이 넘쳐난다. 일본인들은 특히 김치냉장고를 신기하게 여기는 듯 ‘한국에서는 집집마다 김치 전용 냉장고를 둔다는데 사실입니까?’라고 묻는다. 그러면 한국인들은 친절하게 답한다. ‘모든 집에 김치냉장고가 있는 건 아닙니다만, 저희 집에는 있습니다. 사실은 두 대 있어요.’

이 같은 세계적인 인기에도 마음 한구석에는 불안함이 도사리고 있다. 정작 한국에서 김치의 미래는 낙관적일까? 10년 넘게 관찰하고 고민해 왔지만, 선뜻 ‘그렇다’라고 말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김치를 직접 담가 먹는 가정이 줄고 있다. 조사 기준에 따라 다르지만 전체 가정의 20∼30% 수준으로 보면 무리가 없다.

왜 집에서 김치를 담그지 않을까. 우선 심리적 장벽을 꼽는다. 막상 담가 보면 생각만큼 어렵지 않지만 염장과 발효를 거쳐야 하는 음식이라 어렵다고 여기고 엄두를 내지 못한다. 2023년 기준 끼니를 직접 조리해 먹는 가정이 60% 수준인 현실에서 김치까지 담가 먹기는 쉽지 않다.

여기에 공간적 제약도 더해진다. 무 한 통, 배추 한 포기만 담그려 해도 김치는 제법 넓은 공간을 차지한다. 늘어나는 1인 가구의 주거공간, 특히 부엌은 김치처럼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을 만들기에 비좁다. ‘다라이’(대야) 같은 김치 전용 용기를 둘 곳도 없다.

공간 문제는 집 밖에서도 김치의 맛을 좌우한다. 음식점에선 대량 조리뿐만 아니라 숙성과 저장을 위한 공간까지 필요하다. 지대가 비싼 도시일수록 이런 공간을 확보하기 어렵다. 그 탓에 충분히 익히지 않은 김치를 낸다. 발효와 숙성으로 깊은 맛을 내지 못하니, 대신 양념을 통한 매운맛과 단맛으로 이를 가리는 김치가 늘어난다.

그렇다고 대량 생산하는 시판 김치가 만족스러운 것도 아니다. 2005년부터 직접 김치를 담가 먹어 왔지만 종종 시장의 흐름을 살펴보려고 사 먹어 본다. 대기업부터 지역 농협까지 선택의 폭은 넓지만 대부분 염장에서 약점을 보인다. 숙성, 즉 익히는 거야 사 온 뒤 집에서 하면 된다손 치더라도 애초에 배추가 제대로 절여지지 않았다면 맛의 발달에 한계가 있다.

‘김치 없인 못 살아 정말 못 살아’라는 ‘김치 주제가’(1985년)가 있고, 영하 2도∼영상 1도에서 숙성과 저장에 특화된 냉장고까지 갖추고 사는 우리다. 피를 타고 흐른다고 해도 과장이 아닐 만큼 친숙한 음식이 김치다. 그런데 정작 이런 현실에서 김치의 묘미가 조금씩 잊히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 김치를 마음 편히 집에서 담가 먹을 수 있는 시공간의 여유를 어떻게 되찾을 것인가. 이제는 국가 차원의 고민이 필요하다.

이용재 음식평론가

Copyright © 동아일보.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