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서 왕 전설 깃든 웨일스인의 자존심 [세계의 국립공원 영국 에리리국립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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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웨일스 지역의 스노도니아Snowdonia국립공원의 공식 명칭이 '에리리Eryri국립공원'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2022년에 스노도니아국립공원 명칭을 웨일스어인 '에리리'로 바꾸고, 정상도 스노우돈Snowdon에서 '이르 위드바Yr Wyddfa'로 바꾸었다.
광대한 면적에 야생적인 경관이 있는 미국·캐나다·호주의 국립공원과 달리, 이미 원시적인 자연이 사라진 영국에서는 '가장 영국적인 경관으로 남아 있는 농촌·산촌'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했다.
영국에서도 가장 외곽이고 가장 시골인 웨일스의 북쪽 에리리국립공원에 목가적 풍경의 진수가 '조용하게'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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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웨일스 지역의 스노도니아Snowdonia국립공원의 공식 명칭이 '에리리Eryri국립공원'으로 바뀌었다. 영어로 '눈 덮인 산'이라는 뜻인 스노도니아에서, 웨일스어로 '고지대 산, 독수리 땅'이라는 의미로 바뀐 것이다. 웨일스어는 영어와 프랑스어의 차이만큼이나 판이하게 다르다. 예를 들어 잉글랜드England는 웨일스어로 '클로이그르Lloegr'이다. 웨일스 사람들이 쓰는 영어 역시 잉글랜드식 영어와는 달라 알아듣기 어렵다.
영국은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 4개 '지역국'을 합친 국가다. 그래서 '연합왕국 유케이UK United Kingdom'라는 약칭을 쓴다. 정치·외교적으론 한 국가이지만, 사회·문화적으론 매우 이질적이어서 사이가 좋지 않다. 영국에서 가장 격렬한 축구 경기는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시합이고, 스코틀랜드와 북아일랜드는 종종 영국 정부와 갈등을 빚는다.
웨일스도 민족 정체성을 강조하면서 영어보다는 웨일스어를 더 많이 사용한다. 그래서 2022년에 스노도니아국립공원 명칭을 웨일스어인 '에리리'로 바꾸고, 정상도 스노우돈Snowdon에서 '이르 위드바Yr Wyddfa'로 바꾸었다. 웨일스 전설에 나오는 '거인의 돌무더기 무덤'이라는 뜻이다.

해발 1,085m인 이르 위드바는 웨일스와 잉글랜드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매년 60만 명이 정상을 밟는다. 날씨가 좋으면 멀리 아일랜드 섬까지 조망할 수 있다. 이르 위드바로 가는 탐방로는 6개 노선이 있는데, 가장 대중적인 루트는 랑베리스 패스Llanberis Pass다. 에리리국립공원의 거점 타운인 랑베리스의 외곽에서 정상까지 약 7.3km, 왕복 5~7시간 거리다.
길의 대부분은 기찻길 옆으로 간다. 중간에 하프웨이 하우스Halfway House라는 카페가 있어 쉬어 가기 좋다. 경사가 완만하고 정비가 잘되어 있어서 초보자가 가장 많이 찾는 코스다. 그러나 에리리국립공원의 홈페이지에는 6개 노선 모두가 '어렵고, 힘든 코스hard and strenuous'라고 쓰여 있다.
다음으로 인기 있는 노선은 마이너스 트랙Miner's Track이다. 해발 359m인 페니패스Pen y Pass 고개에서 출발해서 3개의 호수를 통과한 후 마지막 힘을 짜내어 정상에 오르는 코스다. 6.5km 거리에 왕복 5~6시간이 걸린다.

페니패스에서 출발해 산등성이를 타고 오르는 피그 트랙Pyg Track도 유명하다. 경사가 급한 바위투성이 길에서 칼바위 능선 500m를 통과해야 하는, 난이도가 높은 코스다. 두 코스의 기점인 페니패스 주차장은 만차일 경우가 많으므로 셔틀버스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정상의 바위산 꼭대기에는 사방의 지명과 거리가 새겨진 황금빛 동판이 있고, 인증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어린이들을 데리고 온 부모들이 꽤 많은데, 그곳에는 전설적인 아서 왕의 스토리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아서 왕이 이곳에서 악명 높던 거인을 물리치고 그의 시신 위에 돌을 덮어 거대한 돌무더기가 되었다는 전설이다. 이 돌들은 슬레이트, 즉 얇게 쪼개지는 점판암이다. 영국뿐만 아니라 유럽 전역의 궁전과 성당, 공공건물의 지붕 재료로 쓰여, 웨일스의 돌이 세계를 덮었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정상까지 어느 코스로 오르든, 챙 넓은 모자와 선크림, 식수가 필수적이다. 햇빛을 피할 나무 한 그루 없기 때문이다. 기상이 급변하는 경우가 많아 비옷과 방풍복을 가져가는 것이 좋다. 오르고 올라, 산 정상에 서면 노동의 대가를 충분하게 보상받는다. 정상에서 365도 돌아가며 사방팔방의 경관이 시야에 확 들어온다. 나무가 없어 속이 훤히 드러난 근육질 산체山體와 시퍼런 빙하호수들이 한눈에 조망된다.
안개와 바람이 휘몰아치고 구름이 가득 끼더라도, 그런 사나운 풍경이 오히려 오랜 추억으로 남는다. 정상 바로 아래에 기차역을 겸하는 탐방안내소가 있다. 코끝이 찡하도록 차가운 바람을 뚫고 들어가, 두 손 모아 마셨던 뜨거운 핫초코와 따뜻한 파이 맛을 잊을 수 없다.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 같은 풍경
정상에 가장 쉽게, 빨리 도착하는 방법은 산악열차를 이용하는 것이다. 가파른 경사에서 기차가 밀리지 않도록 선로 가운데에 톱니궤도를 설치한 톱니열차다. 랑베리스역에서 정상 바로 밑까지 약 7.5km, 편도 1시간 걸린다. 1896년에 개통할 때와 같은 증기기관차는 지정된 날에만 운행하고, 보통 디젤 기차를 운행한다. 왕복 가격은 어른 기준 증기기관차가 13만 원, 디젤은 9만 원이다. 날씨가 나쁠 경우 정상에서 2km 떨어진 지점에 있는 클로그윈Clogwyn역까지만 운행한다. 여기서부터 다소 가파른 길을 1시간 이상 걸어서 올라가야 한다. 겨울에는 선로가 얼기 때문에 5월에서 10월까지만 운행한다.
기차를 타고 바라보는 풍경은 신의 정원 같다. 카펫이 깔린 것 같은 연두색 구릉에 하얀 양들이 점점이, 또는 떼를 지어 풀을 뜯는 목가적 풍경은 평화롭기 그지없다. 기차의 커다란 창틀은 액자가 되고, 풍경은 그 안에 담겨 그림이 된다. 그런 부드러운 풍경은 정상으로 올라갈수록 언덕의 굴곡이 깊어지면서 황량한 풍경으로 바뀐다. 풀밭이 벗겨진 험준한 산악의 맨살과 힘줄이 거칠고 투박하게 다가온다. 바람과 안개가 휘몰아치면, 이곳이 웨일스와 잉글랜드의 최고봉이고, '폭풍의 언덕'과 같은 거친 환경의 소설이 탄생한 영국의 산임을 실감하게 된다.

에리리국립공원(2,142㎢)은 펑퍼짐한 구릉과 언덕으로 이루어진 지형에 15개의 1,000m급 봉우리가 솟아 있고, 그 사이로 18개의 호수와 거친 계곡, 74km의 해안선이 굽이치는 다양한 풍경을 지니고 있다. 공원면적의 5%에 해당하는 110㎢의 숲이 자연림이라고 자랑할 만큼, 영국에서는 본래의 자연이 많이 남아 있는 국립공원이다.
매년 400만 명 이상의 탐방객이 공원 구석구석까지 연결된 등산로와 마을길을 통해 산과 계곡, 강과 호수, 문화유적을 방문한다. 공원 안에서 2만6,000명에 이르는 주민이 농업, 목축업, 상업 등의 다양한 경제활동을 하며 살고 있다. 영국의 15개 모든 국립공원이 그렇듯이, 공원구역 안에 들어가도 공원 바깥과 잘 구분되지 않는다.
광대한 면적에 야생적인 경관이 있는 미국·캐나다·호주의 국립공원과 달리, 이미 원시적인 자연이 사라진 영국에서는 '가장 영국적인 경관으로 남아 있는 농촌·산촌'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했다. 따라서 영국 국립공원은 모두 자연의 바탕 위에 사람들의 삶과 역사가 어우러진 '문화경관cultural landscape'이다. 살아 있는 '삶의 터전living landscape', '일터의 현장working landscape'이 영국 국립공원의 정체성이다.

공원구역 대부분이 사유지이고, 공원을 탐방하려면 사유지를 출입해야 한다. 따라서 땅 주인들에게 부탁해 통로를 열고, 그들과 지역사회에도 혜택을 주는 일이 국립공원청의 가장 중요한 업무다. 의회민주주의의 발상지답게, 이해관계자들끼리 대화와 타협이 합리적으로 이루어지는 그들처럼, 우리나라의 국립공원에서도 그런 이해관계가 '부드럽게' 풀어졌으면 한다.
우리나라 자연의 아기자기한 풍경에 익숙해진 상태에서 외국의 거대하고 장엄한 국립공원을 보면 다른 우주에 온 것 같은 아찔한 느낌을 받는다. 반면에, 영국 국립공원의 낮은 구릉과 언덕에서 양이 풀을 뜯는 시골 풍경을 보면 마치 고향에 온 것처럼 평온하고 나른한 느낌을 받는다.
영국에서도 가장 외곽이고 가장 시골인 웨일스의 북쪽 에리리국립공원에 목가적 풍경의 진수가 '조용하게' 담겨 있다. 그러다가 기상이 급변하면 에밀리 브론테의 소설 '폭풍의 언덕'처럼 거칠고 황량한 풍경이 된다. 따뜻한 연두색 봄과 을씨년스러운 갈색 가을이 공존하는 에리리국립공원이다.

교통
에리리국립공원은 런던으로부터 북서쪽 끝 해안에 위치한다. 런던에서 공원의 거점 도시 랑베리스Llanberis까지는 400km가 넘는 거리다. 런던 유스턴Euston역에서 뱅고어Bangor까지 기차로 4시간 간 뒤, 버스를 타고 40분이면 랑베리스에 도착한다.
자동차로 갈 경우는 런던에서 M1 고속도로로 진입해서 M6, M56을 거쳐 A55, A4244를 따라 랑베리스에 도착한다. 런던에서 5시간 걸린다.
지역의 도로 일부는 폭이 매우 좁아서 앞에서 달려오는 차량과 충돌하지 않을까 조마조마할 정도라 조심해야 한다. 랑베리스에서는 에리리국립공원의 각처로 가는 버스 시스템Sherpa'r Wyddfa을 이용하면 된다. 맨체스터나 리버풀에서는 기차를 타고 에리리국립공원의 거점 타운 중 하나인 베투스이 코이드Betws y Coed에 내리면 된다.
월간산 10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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