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의 오른팔이 만든 조선 최고 군사도시 [전라도의 숨은 명산 강진 수인산]

김희순 광주샛별산악회 산행대장 2026. 10. 15.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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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수인산修仁山(564m)은 가을이면 더욱 돋보이는 산이다. 수인산 단풍 명소는 홈골저수지에서 남문 구간 방향을 따라 481m봉을 지나면서부터 시작된다.

강진군과 장흥군 경계에 걸쳐 있지만 대부분 '강진 수인산'으로 부른다. 수인산 점유 면적이 강진군에 비해 훨씬 넓고 정상석도 장흥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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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인산은 크기에 비해 골이 깊다. 조망바위(280봉)에서 도룡제가 보인다.

강진 수인산修仁山(564m)은 가을이면 더욱 돋보이는 산이다. 단풍나무보다 굴참나무가 주종을 이루지만, 기암들과 어우러진 모습은 어느 단풍 명산에도 뒤지지 않는다. 수인산 단풍 명소는 홈골저수지에서 남문 구간 방향을 따라 481m봉을 지나면서부터 시작된다. 동서로 길게 뻗은 병풍바위에 다가갈수록 웅장한 암석미에 압도된다. 바위 주변 숲이 울긋불긋 물들기 시작하면 마치 금실과 은실로 수놓은 것처럼 호화로운 성채로 변신한다. 붉게 물든 산성의 돌담을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보이는 장흥호(탐진호)는 산이 물에 잠긴 것인지 물에 산이 떠 있는 것인지 모를 진풍경이다.

481봉에서 본격적인 단풍길이 시작된다.

홈골저수지 원점회귀가 일반적

수인산은 높지는 않지만 골이 깊고 지형 자체가 천혜의 요새인 철옹성이다. 사방이 깎아지른 수직 절벽이고, 능선을 따라 6km에 이르는 수인산성이 있다. 산성은 고려시대 왜구의 침입에 대비해 축조한 것으로 추정되며, 우리나라 성곽으로는 드물게 내성과 외성이 있는 구조다. 전란이 일어났을 때는 인근의 보성, 장흥, 강진 백성들이 피란을 왔다. 수인산 정상인 노적봉 봉수대는 장흥 억불산 봉수에서 전해오는 신호를 받아 전라병영성으로 전달하는 중계 봉수 역할을 했다.

비석바위에는 명사들의 흔적이 새겨 있다.

강진군과 장흥군 경계에 걸쳐 있지만 대부분 '강진 수인산'으로 부른다. 장흥군은 억울하다. 수인산 점유 면적이 강진군에 비해 훨씬 넓고 정상석도 장흥군에 있다. 수인산성에는 4개의 문이 있다. 남문, 서문, 북문은 험준한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어 접근이 매우 까다로운 반면, 동문은 장흥 유치면 평지와 연결되어 산성의 주 출입구 역할을 했다. 장흥 쪽에서 바라보는 수리봉과 노적봉(정상)으로 길게 뻗은 능선도 걸출하다. 그러다 보니 두 지자체가 설치한 안내도와 이정표가 제각각이어서 상당한 혼선이 있다.

수인산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 산은 아니지만, 이정표와 등산로는 잘 정비되어 있다. 장흥 방향 동문을 제외하고 남문, 서문, 북문은 강진 방면에서 오른다. 가장 일반적인 등산 코스는 홈골저수지에서 서문을 거쳐 비석바위와 정상을 찍고 북문을 거쳐 홈골로 하산하는 코스다.

봉수대가 있었던 노적봉 정상에서 광주샛별산악회 회원들.

어느 쪽에서 올라도 북문에서 만나

장흥 수미사 코스도 인기다. 이곳은 수인산 동쪽에서 서쪽 홈골저수지까지 12km 이상 아우르는 매력적인 구간이다. 아담한 수미사는 고찰의 흔적은 없지만, 13세기 고려 후기 고승인 장흥 출신 원감국사 충지(속명 위원개)가 말년에 머물렀던 곳이다. 불교문학에 뛰어난 업적을 남긴 충지가 입적하자, 그의 제자들이 조성한 6m 높이의 마애여래좌상이 절 뒤쪽에 있다. 마애불이 있는 병풍바위와 젖꼭지바위, 장닭 벼슬처럼 뾰족뾰족하게 솟아 있는 계관암(닭벼슬바위)이 볼거리다.

정상을 가려면 어느 방향에서 올라가더라도 북문 갈림길에서 만난다. 이곳에서 정상까지는 불과 300m 정도지만 상당히 가파르다. 커다란 정상석 너머엔, 북쪽으로 무등산, 서쪽으로 월출산, 동쪽으로 득량만을 비롯해 강진만의 기름진 해안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봉수대를 짐작하게 하는 석축의 흔적은 없고 안내문만 있다. 운치 있는 가을 풍경을 기대한다면 정상에서 도둑골 방향으로 하산하는 것이 좋다. 지네처럼 기다란 성벽을 따라가다 보면 장흥호에 잠긴 가을 산이 기다리고 있다.

난공불락의 요새답게 오르내리기 버거운 산성의 석축.

곳곳에 다양한 유물과 흔적 있어

수인산은 방어가 용이한 산세인 만큼, 구한말 의병장들이 수인산성을 거점으로 일제에 항전했고, 동학농민군이 이끌던 부대는 3일 만에 전라병영성을 함락시켰지만 장흥 석대들 전투에서 패한 후 이곳을 마지막 은신처로 삼았다. 저항과 진압 과정에서 홈골에 있었던 유서 깊은 수인사와 청련암이 시련을 겪다가 일제 강점기 이후 폐허가 되었다. 홈골저수지 근처에 있는 지금의 수인사는 그 이후 생긴 것이다.

격동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수인산에는 다양한 유물과 흔적이 곳곳에 분포해 있다. 백제, 고려, 조선시대 축성 기술을 비롯해 기와편, 자기류, 맷돌, 우물 터, 별장이 머무르던 별장 터, 비밀통로인 수구水口 등 다양하다. 서문 쪽에 있는 비석바위를 빼놓을 수 없다. 조선시대에는 사대부나 관료, 양반들이 명승지를 다녀온 후 유람록을 남기거나 바위에 이름과 시문을 남기는 것이 유행이었다. 약 6m 높이의 비석바위에는 '광양현감'이라는 글씨가 보이고, 전라병영성에 부임했던 전라 병마절도사들과 그를 수행한 지방 수령과 무관의 이름이 새겨 있다.

수인사에서 서문으로 오르는 등산로 초입.

강진 '병영면'이 된 까닭

강진 병영면은 한때 잘나가던 군사도시였다. '병영兵營'이라는 지명도 1417년 광산현(현 광주)에 있던 군영을 옮기면서 고유명사가 된 것이다. <강진읍지> 기록에 의하면 병영성 인근 거주 인구는 3,000여 가구 2만 명으로 추정되며, 병영성 안에는 군병과 관아 인력이 1,000명 정도 살았다고 한다. 덕분에 '북에는 개성상인, 남에는 병영상인' 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군수업을 바탕으로 상업도 꽤 번성했었다.

거대한 성채처럼 우람한 병풍바위 일대는 최고의 단풍 명소다.

태종 이방원은 피비린내 나는 무력으로 조선 3대 왕좌에 앉은 인물이다. 그가 초대 전라 병마절도사로 무장 마천목을 위임한 배경을 생각해 본다. 이방원과 정도전은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는 데 결정적인 공을 세웠다. 이후 재상 중심의 정치를 꿈꾸는 정도전과 국왕 중심정치를 주장하는 이방원은 갈등이 극에 달한다. 이방원의 곁에서 흔들리지 않는 충성심으로 선봉장에 섰던 사람이 마천목이다.

병영성은 마천목에 의해 축조되었고, 약 500년간 백성을 보호하는 역할을 했지만, 1894년 3만여 명의 동학농민군에게 함락되었다. 당시 성내에 있던 대부분의 건물들은 불타고 오랜 세월 동안 성곽은 헐리고 방치되었다. 1997년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서 국가사적 제397호로 지정되었고, 꾸준한 복원 사업으로 총길이 1,060m 높이 3.5m의 성곽 전체와 치성, 옹성, 남문과 진남루가 제 모습을 찾았다.

홈골저수지 너머로 옹골찬 수인산의 암릉이 보인다.
전라도와 제주도를 관할한 전라병마절도사가 지휘했던 강진 병영성.

산행길잡이

홈골저수지-수인사-서문-비석바위-북문 갈림길-정상-북문갈림길-홈골-홈골 저수지(7km, 4시간)

홈골저수지-별락산 갈림길 이정표-481봉-병풍바위 조망대-남문-홈골 갈림길-수인산 정상-이정표-도둑골-갈림길-홈골저수지(9km, 5시간)

구룡마을-수미사-계관암-수리봉-탕건바위-남문-홈골 갈림길-수인산 정상-홈골 갈림길-수인사-홈골 저수지-지로마을(12km 6시간)

홈골저수지까지는 대형버스 진입이 불가하다. 지로마을 입구에서 1km 정도 소로를 걸어 올라가야 한다. 승용차는 홈골저수지 입구에 4~5대 정도 주차 가능하다. 홈골저수지 입구에 산행개념도가 있다.

정상으로 가는 최단코스는 수인사를 거쳐 서문으로 접어들면 되고, 단풍을 보려면 남문을 목표로 크게 돌아간다. 북문에서 홈골로 하산하면 너덜지대가 많아서 길은 사납지만 숲 그늘이 좋고 협곡의 경관도 뛰어나다.

교통

서울센트럴시티터미널에서 강진버스여객터미널까지 하루 4회(07:50, 10:50, 14:00, 17:40) 버스가 운행한다. 4시간 30분 소요되며, 요금은 우등 3만5,800원, 프리미엄 4만5,000원이다.

강진버스여객터미널에서 작천·병영·옴천 방향 농어촌 버스를 이용한다. 수인사 입구인 성동리까지 농어촌 버스가 하루 12회(06:20, 07:20, 08:20, 08:30, 09:40, 10:30, 11:30, 12:10, 13:10, 14:30, 16:10, 17:30) 운행한다. 약 30분 소요되며, 요금은 1,000원이다.

볼거리

병영성 앞에 하멜기념관이 있다. 우리나라를 서양에 최초로 알린 '하멜표류기'의 저자 하멜은 일본 나가사키로 가던 중 풍랑을 만나 제주도에 표류하면서 13년간 조선에 체류했다. 그중 7년을 강진 병영에 억류됐다. 그는 1666년 탈출해서 일본을 거쳐 네덜란드로 귀국한 후, 밀린 임금을 청구하기 위해 쓴 체류 보고서가 '하멜표류기'다. 하멜기념관은 강진군과 하멜의 고향 호르큼시와 자매결연해 2007년 개관했다. 당시의 항해도구, 도자기, 생활도구, 고지도 등 200여 점이 전시되어 있고,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월간산 10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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