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이 지핀 전쟁 불씨, ‘아프리카의 뿔’까지 옮겨붙었다
미국과 이란의 전쟁이 소강상태에 접어든 사이 제2전선 격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예멘의 친이란 무장세력 후티의 교전이 멈추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홍해를 두고 예멘과 마주 보는 화약고 ‘아프리카의 뿔’ 지역에서의 무력 충돌도 재개됐다. 2023년 10월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침공하면서 불붙은 중동 전쟁의 불똥이 레바논·사우디·예멘 등으로 튄 데 이어 아프리카에도 전운이 드리우고 있다. 미국 공습으로 쑥대밭이 된 중동의 이란부터 정부군과 반군 간 3년째 내전으로 무정부 상태인 아프리카 수단에 이르는 4500㎞의 거대한 전선이 만들어지는 양상이다.

◇연일 공격 주고받는 사우디·후티
호르무즈 해협에서 치고받던 미국과 이란이 미국 중간선거(11월 3일)를 앞두고 숨 고르기에 들어간 사이 홍해 바브엘만데브 해협 일대에서 사우디와 후티의 무력 충돌은 격화하고 있다. 사우디 에너지부는 13일 X에 “사우디 동부 다란에 있는 아람코 본사 건물이 공격을 받아 소규모 화재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이번 화재는 사우디군이 “후티가 발사한 미사일이 사우디 동부로 향하고 있다”며 경보를 내린 직후 발생했다. 후티는 지난달 사우디의 이슬람 성지 메카와 수도 리야드에 드론 공격을 가한 데 이어, 지난 10~11일 이틀 연속으로 리야드 킹칼리드 국제공항 여객 터미널 등을 미사일로 타격했다.
지난 1주일간 후티 공격으로 사우디에서 19명이 사망했다. 아랍권 최대의 군사 강국임을 자부해온 사우디가 일개 반군인 후티의 기습 공격에 비틀거리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미국의 개입 여부와 시점이 관건으로 떠올랐다. 미국은 지난 3월 이후 후티에 대한 타격을 중단하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의 병력 파견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트럼프는 13일 사우디에 대한 지원 가능성을 시사했다.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후티가 매우 악랄한 방식으로 사우디를 공격하고 있다”며 “실패한 국가 이란의 지시에 따라 미국 선거를 앞두고 유가를 끌어올리기 위한 것 같다”고 했다. 이어 “선거가 끝난 뒤에도 나는 이 자리(대통령직)에 있을 것이며, 절대로 잊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중간선거의 승패와 무관하게 선거가 끝난 뒤 사우디를 지원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사우디를 겨냥한 후티의 공세가 중간선거까지 남은 2주 남짓 기간 동안 더욱 격렬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전운 고조되는 ‘아프리카의 뿔’
최근 후티가 홍해 연안의 예멘 주요 도시들을 잇따라 점령하자 공포에 질린 주민들은 바브엘만데브 해협 건너 지부티로 긴급히 대피했다. 지리적으로는 가깝지만 엄연히 다른 대륙인 만큼 전화(戰禍)로부터 안전할 것이라는 바람이었다. 하지만 이 지역도 정정이 불안해지고 있다. 우선 지부티와 함께 ‘아프리카의 뿔’에 속하는 에티오피아에서 무력 충돌이 4년 만에 재개됐다. 13일 에티오피아군은 북부 에리트레아와의 국경 지대에 인접한 티그라이주 도시 잘람베사를 점령했다. 티그라이주는 에티오피아 전체 인구의 6%에 불과하지만 과거 에티오피아를 철권 통치했던 티그라이족의 본거지로 현재는 분리 독립 움직임이 강하게 일고 있는 곳이다.
2022년 발효됐던 중앙정부와 티그라이 독립 세력 간 휴전 협정이 파기됐다고 서로 주장하면서 지난달 교전이 재개돼 최소 52명이 사망했다. 특히 에티오피아 정부가 이번 티그라이의 봉기 배후에 에리트레아가 있다고 의심하면서 두 나라의 전쟁 재발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1993년 에티오피아의 홍해 연안 지역이 에리트레아로 분리 독립하며 떨어져나간 뒤 두 나라는 영토를 두고 1998~2000년 전면전을 벌였고 20년간 외교 관계를 단절했다 2018년에야 복원했다. 아비 아머드 에티오피아 총리가 화해를 이끈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평화상을 받을 정도로 국제사회가 평화 정착 성과로 평가했지만 모두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에티오피아와 에리트레아는 지난 1일 상대방에 대해 단교 방침을 밝혔고, 에티오피아는 “에리트레아군이 자국 땅을 침범했다”며 전면전도 불사하겠다고 밝혔다. 최악의 경우 에티오피아 내전 및 에티오피아·에리트레아 전쟁으로 최대 80만명이 희생됐던 과거의 악몽이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 워싱턴포스트는 “에티오피아가 전면전에 빠져들면 국경 밖의 불안정한 정세와 맞물려 전쟁이 확산할 위험이 더욱 커진다”고 분석했다.
◇잠잠하던 소말리아까지 출렁
아프리카의 뿔을 이루는 또 다른 나라 소말리아 정세도 출렁이고 있다. 할리우드 영화 ‘블랙 호크 다운’의 배경으로 유명한 소말리아는 1990년대부터 무장 단체들의 테러가 빈발해 오랫동안 무정부 상태였다가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수면 아래에 있던 분리독립 문제가 중동 전쟁과 얽히면서 돌발 이슈로 부상한 것이다. 소말리아 영토 북부 아덴만 인접 지역을 자신들의 영토라고 주장하는 소말릴란드 통치 세력은 1991년 독립을 선언했음에도 승인하는 나라가 없어 존재감이 미미했다. 그러다 이스라엘이 지난해 소말릴란드를 국가로 깜짝 승인하면서 중동·아프리카의 새로운 화약고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이스라엘이 눈엣가시로 여기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에 대한 강제 이주를 염두에 두고 소말릴란드에 접근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면서 아랍 국가들의 강력한 반발을 불렀다. 이후 미국·이란 전쟁 발발 등의 여파로 한동안 잠잠했던 소말릴란드 이슈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갑작스럽게 꺼내 들었다. 13일 오하이오 중간선거 유세에서 돌연 소말릴란드를 화제로 꺼내며 “소말리아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완전히 다른 국가”라고 했다.
트럼프가 어떤 의도로 이 같은 발언을 했는지에 대한 해석이 분분한 가운데 소말릴란드 대통령실이 트럼프 발언을 소셜미디어에 공유하며 환영 입장을 발표하는 등 중동의 관심사로 재부상했다. 미국이 이스라엘과 보조를 맞춰 소말릴란드를 국가로 승인하려는 움직임을 보일 경우 중동과 아프리카를 뒤흔드는 ‘폭탄’이 될 가능성이 크다. 프랑스 국제라디오방송(RFI)은 “이스라엘이 소말릴란드에 개입하면 상황이 악화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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