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공공신탁, 반년간 계약 6건...김성주 이사장 “목표 달성 쉽지 않아”
여야 “속도 내야”...김 이사장 “대상자 엄격하게 제한한 탓”
시범사업이라지만...시행 전부터 여러 차례 예견된 '병목'
현장선 “기존 제도부터 개선”...실적보다 운영 기반 마련 우선
공공·민간 역할 나누고, 분절된 지원 체계는 연계해야

이재명 정부의 국정과제인 '치매안심재산관리서비스'(이하 치매 공공신탁)가 시범사업 초기부터 저조한 계약에 머물며 제도의 허점을 드러냈다. 신청은 꾸준히 늘고 있지만 실제 계약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4월 시범사업을 시작한 뒤 8월까지 접수된 신청은 242건으로 집계됐지만, 계약 체결 사례는 6건에 그쳤다. 첫해 목표 인원인 750명과 비교하면 달성률은 0.8% 수준이다.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14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올해 세운 목표를 달성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시범사업 도입 배경에는 이른바 '치매머니' 문제가 있다. 치매로 재산 관리가 어려워지면 자산이 제때 쓰이지 못한 채 묶이거나 사기·갈취의 표적이 되기 쉽다는 우려가 제기돼 왔다. 지난해 5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현 인구전략위원회)가 공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3년 기준 65세 이상 치매 상병자 약 124만 명이 보유한 자산은 154조 원에 달했다. 국내총생산(GDP)의 6.4%에 이르는 규모다.
치매 공공신탁은 치매나 경도인지장애 등으로 금전 관리에 어려움을 겪거나 경제적 학대 위험이 있는 65세 이상 고령자의 재산을 관리하는 공공서비스다. 지난해 8월 국정기획위원회 '국정운영 5개년 계획안'에 처음 포함됐고, 정부의 123개 국정과제 중 치매 관련 정책으로는 유일하다. 공단은 65세 미만 치매 환자와 경도인지장애 진단자뿐 아니라, 해당 진단을 받지 않았더라도 경제적 학대 피해가 판정됐거나 의심되는 경우까지 시범사업 대상에 포함했다.
이용자는 본인의 의사와 필요에 따라 현금과 예금, 연금소득, 주택연금, 임대차보증금 반환채권 등 관리 가능한 재산을 맡길 수 있다. 위탁 재산 상한은 10억 원이다. 공단은 개인별 재정지원계획에 따라 의료비와 요양비, 일상생활에 필요한 비용 등을 관리한다.
계약 방식은 인지 상태에 따라 다르다. 경도인지장애 진단자는 본인의 의사에 따라 직접 계약할 수 있지만, 치매 환자는 계약의 유효성을 둘러싼 법적 분쟁을 방지하기 위해 원칙적으로 후견인을 선임해야 한다.

이날 국감장에서 여야 의원들은 사업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더딘 추진 속도를 한목소리로 질타했다. 최보윤 국민의힘 의원은 발달장애인 재산관리 서비스를 예로 들었다. 이 서비스는 2022년 시범사업으로 시작해 지난해 10월에야 본사업으로 전환됐다. 진행 과정에서 신청부터 계약까지 오래 걸리고, 서류와 이용 절차가 복잡하다는 비판도 있었다. 최 의원은 "이미 한 번 경험한 문제인 만큼 시행착오를 줄여 달라"고 당부했다.
대상자 확대도 제안했다. 65세 이상 인구가 1,000만 명을 넘었고, 재산 관리에 어려움을 겪는 고령자가 모두 치매 환자는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그는 "재산을 잃은 뒤 경제적 학대로 판정받거나 치매 진단을 받은 뒤에야 공공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너무 늦지 않으냐"고 짚었다. 공단 노후준비서비스 상담에서 위험 신호가 포착되면 곧바로 재산관리 서비스로 연결하자는 의견도 덧붙였다.
김 이사장은 "이 서비스가 필요한 모든 국민이 원한다면 신청하고 도움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답했다. 경도인지장애나 치매가 우려되는 고위험군까지 대상을 넓혀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지금 속도가 안 나는 건 대상을 너무 엄격하게 제한해서"라고 강조했다.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계약 실적을 겨냥했다. 이 의원은 "서비스 시작 두 달이 지나서야 첫 계약이 이뤄졌다"며 "올해 목표 건수를 채우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또 홍보 강화와 함께 전국 치매안심센터가 초기 상담을 적극적으로 맡도록 협의하라고 촉구했다. 신청부터 계약까지 걸리는 시간을 줄일 방안도 주문했다.

김 이사장은 계약이 부진한 원인으로 재산을 맡기는 데 대한 거부감과 자녀 등 가족 간 의견 차이, 법원의 후견인 선임 지연을 들었다. 특히 후견인 선임 절차가 길어지면서 계약이 늦춰지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며 국회와 보건복지부에 제도 개선을 요청했다.
하지만 공공후견과의 연계는 사업 시행 뒤에야 드러난 문제가 아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해 9월 '2025 국정감사 이슈 분석' 보고서에서 치매공공후견 피후견인을 2023년 말 기준 262명으로 집계했다. 전체 고령 치매 환자의 0.02% 수준이다. 후견인 선임까지는 평균 6개월 이상 걸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복지부는 공공후견인 수 등을 고려해 시범사업 목표를 750명으로 잡았다. 올해 공공후견 지원 인원은 300명이다. 치매 환자를 대상으로 후견인 선임이 필요한 상황에서, 공공후견 지원 규모와 시범사업 목표치 사이에 괴리가 생긴 셈이다. 정부는 올해 2월 제5차 치매관리종합계획에 이어, 이날 발표한 '제1차 국가인구전략 기본계획'에서도 공공후견인을 2030년까지 1,900명으로 늘리겠다고 재차 밝혔다.
인력 부족 문제는 지난해 국회에서도 다뤄졌다.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해 복지위 국감에서 2024년 말 기준 전국 치매안심센터 종사자 5,006명 가운데 사회복지사가 720명으로, 전체의 14.4%에 그친다는 자료를 제시했다. 공공신탁 대상자 발굴도 치매안심센터가 맡는 만큼, 기존 인력 부족 문제가 되풀이될 수 있다는 우려였다. 전담 인력을 반드시 사회복지사로 한정할 필요는 없지만, 대상자 발굴 업무 부담이 큰 상황에서 전문성을 갖춘 인력을 확보하는 데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거부감과 가족 반발 역시 예상됐던 문제다. 공공신탁은 당사자들뿐 아니라 관련 업무 종사자들에게도 아직 생소한 제도다. 특히 재산 관리처럼 가족 간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영역에서는 제도에 대한 이해와 수용이 확산되기까지 적잖은 진통이 예상된다. 국민연금연구원이 사업 모델을 설계하기 위해 현장 종사자 20명을 심층 인터뷰한 보고서에는 "사기를 당해도 통장은 내가 관리해야 한다는 마인드가 강하다"는 증언이 실리기도 했다.
국회 논의 과정에서도 신중론이 나왔다. 지난해 8월 법안소위에서 이스란 당시 복지부 1차관은 "치매 환자가 100만 명 가까이 되고 가족이 아닌 사람이 재산을 관리하는 경우도 있어 법적 분쟁 소지가 있다"고 했다.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은 기존 성년후견제도로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 해외 사례와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 현장선 "기존 제도부터 개선"...실적보다 운영 기반 마련 우선
현장에서는 공공신탁이 제 기능을 하려면 후견인 선임과 기존 제도와의 연계 방식부터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기존 치매공공후견 사업이 부진한 원인은 해결하지 않은 채 공공신탁과의 연계에만 집중한다는 비판이다.
현장에서는 사업 첫해에 설정한 목표치가 현실적인지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계약 실적을 늘리는 데 치중할 경우, 이미 요양시설에서 급여관리자 제도를 통해 생활비 등을 관리받는 기초생활수급자까지 공공신탁 대상에 포함해 기존 지원과 중복될 수 있다는 우려다.
반면 국민연금연구원 보고서에는 시설 입소 후 치매안심센터의 개입이 중단되면서 재산 관리에 공백이 생긴다는 현장 증언도 담겼다. 이용자 선정 과정에서 기존 지원과의 중복 여부를 살피는 동시에, 시설 입소 이후 지원이 끊기는 사각지대도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대상자를 넓히는 것뿐 아니라 실제 재산 관리와 법률행위를 담당할 인력의 역할과 처우도 정비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복지부 안내서에 따르면 지원인은 일상적인 재산 지출을 돕고 사용 내역과 증빙자료를 공단에 보고한다. 대리인은 의료·요양 관련 의사표시나 시설 입소계약 등 정해진 범위에서 법률행위를 대리한다.
친족이 없는 경우 주변 인물 가운데 지원인과 대리인을 정해야 하지만, 이들의 보수와 책임 범위가 명확하게 정립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공신탁 이용자를 늘리는 데만 급급하지 않고, 실제 재산 관리와 일상적인 지원을 맡을 인력의 역할과 책임을 구체화하고 적절한 보상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치매 공공신탁이 복지 현장에 안착하려면 공공신탁과 민간신탁의 역할을 명확히 나누고, 후견·돌봄 서비스와의 연계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보험연구원 등은 치매 진단 전부터 재산 사용 계획을 세우려는 수요는 민간신탁이 담당하고, 민간 상품을 이용하기 어려운 저소득층과 취약계층은 공공신탁으로 지원하는 방안을 제시해 왔다. 여기에 후견과 돌봄까지 분절된 서비스들이 연계돼야 이용자가 필요한 지원을 끊김 없이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제도를 실제로 운영할 현장 인력의 전문성을 확보하는 일도 과제다. 국민연금연구원 보고서에는 한 기관만으로는 대응하기 어려운 만큼 금융·법률 전문가와 사회복지사가 협력하는 체계가 필요하다는 현장 의견이 담겼다. 계약직 순환 근무로는 전문성을 축적하기 어려워 장기적으로 업무를 맡을 전담 인력이 필요하다는 제언도 나왔다.
공단은 진행 중인 시범사업 관련 연구용역 결과를 반영해 운영상 문제점과 개선 방안을 도출하고, 대상 확대와 위탁재산 관리 방식 등을 보완해 2028년 본사업 전환에 대비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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