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빛바랜 손편지부터 홍술장군 행렬까지… 의성의 시간을 걷다
사직제·전승행렬·군영체험으로 지역 역사와 전통 재현

"장모님 추모 1주기에 부쳐 장인어른께 드립니다."
40년 전 서독에서 띄운 편지의 첫 줄이다. 의성종합운동장 전시장 유리 진열대 안에서 이 문장을 읽었다. 지난 10일 개막한 제40회 의성문화제 현장이다.
편지는 1986년 7월 9일 서독 괴팅겐에서 쓰였다. 보낸 사람은 사위, 받는 사람은 장인이다. 장모의 첫 기일을 맞아 멀리서 가족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적었고, 같은 지면에 체르노빌 원전 사고와 당시 독일의 날씨도 언급했다. 의성문화원 아카이브 기획전 '사물의 시간'에는 손글씨가 빼곡한 원본과 항공우편 봉투가 나란히 놓였다. 설명 문구는 '체르노빌 직후 서독에서 온 편지'. 세계사의 사건은 교과서 밖에서 이렇게 한 가족의 안부 속으로 들어와 있었다.

시선을 옮기자 '第一回 義城文化祭(제1회 의성문화제)'라고 적힌 책자가 보였다. 1983년 10월 23~24일 열린 첫 의성문화제의 기록이다. 1986년 발행된 '의성문화' 제1호도 함께 공개돼, 43년간 이어진 지역 문화행사의 발자취를 보여줬다. 문소루와 의성읍의 옛 전경, 고운사를 담은 흑백사진 앞에서는 관람객들의 걸음이 느려졌다.
전시는 거창한 유물보다 살림의 물건을 앞세웠다. 1959년 대학 가계부, 1953년 지폐, 상평통보, 이사 날짜를 정하던 '이거택일(移居擇日)' 문서가 당시의 살림살이와 생활풍습을 전했다. 이 가운데 사촌마을에서 쓰던 디딜방아에는 '庚申年·庚申月·庚申時·姜太公造(경신년·경신월·경신시·강태공조)'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의성문화원은 이를 액운을 막고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던 민간신앙의 흔적으로 풀이했다. 손동욱 의성문화원 아카이브팀장은 "사촌마을에서 쓰던 디딜방아인데 이런 글귀가 남아 있는 경우가 많지 않다"고 설명했다. 곡식을 찧던 농기구가 마을 공동체의 믿음과 생활문화를 증언하는 민속자료로 남은 것이다.
이 물건들은 저절로 전시장에 온 것이 아니다. 주민과 기록활동가들이 수집에 힘을 보탰다. 아키비스트 김승하 씨 등은 생활유물의 사용 시기와 사연을 조사해 기록카드를 쓴다. 의성문화원은 이를 디지털 자료로 정리해 전시와 간행물 제작에 활용한다. 역사가 대개 거창한 사건의 이름으로 기억되는 것과 달리, 이곳에서는 서랍과 헛간에 있던 것들이 카드 한 장씩의 이름을 얻고 있었다.

전시관을 나서자 운동장에는 홍술장군의 깃발이 나부꼈다. 오전 10시에는 전통 예복을 갖춘 제관들이 사직제를 봉행했고, 11시에는 장군과 병사 복장의 참가자들이 깃발을 앞세워 트랙을 행진했다. '홍술장군의 비밀산성' 군영체험장에는 성곽과 망루 모형, 깃발과 북이 옛 군영의 분위기를 냈고, 꽃등놀이도 별도 전통문화 프로그램으로 펼쳐졌다. 목공체험장에서는 한 어린이가 나무 조각을 붙잡고, 다른 어린이는 망치로 못을 두드렸다. 작은 목재를 사이에 두고 두 아이의 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해가 지자 운동장 주변 먹거리 장터에 불이 들어왔다. 방문객들이 천막 사이를 오가는 가운데 한 부스에는 '의성마늘 한우버거 콤보 1만원'이라는 안내판이 걸렸다. 밤에는 '崇義門(숭의문)' 현판을 내건 무대에 보라색 의상의 가수 강문경이 올랐다. 객석에서는 보라빛 응원봉이 흔들렸고, 관객들은 휴대전화에 공연 장면을 담았다. 낮에 본 기록이 종이와 먹으로 남은 과거라면, 밤의 기록은 화면 속에서 저장되는 현재였다.
'의로운 성 의성, 홍술, 전통과 미래를 잇다'를 주제로 열린 이번 문화제는 지난해 구봉공원 일원과 의성문화원에서 의성종합운동장으로 장소를 옮겨 열렸다. 마지막 날인 11일에는 홍술장군 전승행렬과 문화예술단체 공연이 이어지고, 저녁에는 가수 김준수의 축하공연이 성황리에 열렸다.
40년 전 괴팅겐의 편지는 소란한 운동장 한편에서 조용히 읽히고 있었다. 한 사람의 안부가 기록으로 남아 가족의 시간과 세계사의 한 장면을 함께 전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