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이들의 음식 [이종건의 함께 먹고 삽시다]

한겨레 2026. 10. 14.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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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이들의 식탁이 세월을 만나 미식으로 격상되는 경우.

가난한 이들의 음식이었다가 향토 음식으로 한편을 지키고 있었는데 고물가 시대 저렴한 한 끼로 도시 사람들의 각광을 받게 된 것이다. 가난한 이들의 음식이 그때의 모습 그대로 다시 호출되는 시절을 산다.

아시아 지역, 가난한 이들의 음식은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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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빈민대회 조직위원회 제공

이종건 | 옥바라지선교센터 활동가

가난한 이들의 식탁이 세월을 만나 미식으로 격상되는 경우. 실은 비교적 흔한 일이다. 인당 몇만 원은 기본으로 잡아야 하는 야키니쿠는 일본인이 버리는 식재료인 ‘호루몬(내장)’을 구워다 먹은 재일조선인들의 가난한 사정에서 시작했다. 잡내를 없애기 위해 간장과 마늘 등에 가볍게 양념해 구워 먹기 시작한 것. 그러니 야키니쿠 집 어디를 가도 김치와 나물 3종세트가 있고 유행 따라 양념치킨, 냉면, 순두부찌개 등 한식메뉴들이 등장한다. 한정식은 아닐지언정 한반도 보편의 밥상문화가 일본 식생활에 스며드는 일에 빈곤한 이들의 문화가 한몫 단단히 해낸 것이다. 빈곤한 이들의 사정은 못난 식재료에서도 그 쓸모를 찾고, 쓸모 따라 먹던 것이 오랜 편견을 이겨내면 마침내 유행을 만나 주류의 문화로 편입된다.

최근 일본 편의점을 중심으로 300엔 조금 안 되는 연어 도시락이 대유행을 했다고 한다. 당혹스러운 비주얼이다. 흰밥에 잘게 바스러진 연어조각들이 한 줌 올라있다. 소금에 극단적으로 절여 손가락 두 마디 정도 되는 한 줌으로 밥 한 공기를 너끈히 비운다는 것이다. 무슨 말장난 같은 음식인가 했는데, 실은 ‘보닷코’라는 근본이 있는 반찬이었다. 가난한 이들의 음식이었다가 향토 음식으로 한편을 지키고 있었는데 고물가 시대 저렴한 한 끼로 도시 사람들의 각광을 받게 된 것이다. 불황으로 지출에 예민한 일본인들의 심금을 울리는 마케팅이었다. 이후 아주 약간의 반찬을 곁들여 흰밥을 와구와구 먹을 수 있는 도시락들이 유행처럼 출시됐다고 하니, 야키니쿠의 유행과는 정반대라고 할 수 있겠다. 가난한 이들의 음식이 그때의 모습 그대로 다시 호출되는 시절을 산다.

아시아 지역, 가난한 이들의 음식은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구하기 쉬운 단순한 재료를 염장하거나 발효해서 보관하기 쉽게 만들며 적은 재료로 가능한 많은 탄수화물을 먹도록 하는 식이다. 홍콩에는 두부를 발효시켜 만든 푸유가 있다. 얼마나 짠지, 한두 조각으로 밥이나 죽 한 그릇을 깨끗하게 비울 수 있어 가난한 이들의 음식을 대변한다. 대만의 서민들은 오래전부터 논밭 근처에서 채집한 민물조개로 키암라아를 만들어 먹었다. 우리로 치면 조개젓갈 격으로 밥도둑이란다. 소금에 절이고 바짝 말려 짜디짠 작은 생선을 의미하는 필리핀의 투요. 기름에 튀겨 한 그릇 쌀밥 옆에 두어 마리를 곁들인다. 한국에는 무엇이 있을까. 고추장에 밥을 비비는 일. 온갖 젓갈과 나물 장아찌, 소금을 잔뜩 친 생선과 절임류 반찬들. 분명 궁중음식은 아니렷다.

빈곤의 풍경은 국경을 넘어 공통분모를 가진다. 부유의 풍경 또한 그랬다. 가난한 사람들을 쫓아낸 자리에 빌딩이 오르고 개발과 강제퇴거가 일상화되며 거대한 도시를 형성했던 것 또한 홍콩과 마닐라, 도쿄, 타이베이와 서울이 모두 함께 겪은 공통의 역사다. 전쟁위기와 산업전환이라는 격동기를 함께 겪고 있는 이웃들이 이제 더 큰 공통분모를 만들기 위해 서울로 모인다. 10월17일은 빈곤철폐의 날이다. 올해는 ‘아시아빈민대회’가 개최되며 홍콩, 필리핀, 대만, 일본, 한국의 반빈곤운동 활동가들이 서울로 모여 함께 깃발을 들고 행진한다. 토요일 오후 1시면 종각역 일대에 각기 다른 언어와 다종다양한 깃발 아래 ‘빈곤 철폐’를 외치는 행진이 판을 크게 벌일 참이다. 모두 쌀밥을 먹는 운명 아래 놓여있으니 절박한 시절임에도 유쾌한 연대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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