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품종 따라 크기, 맛, 색 저마다 다른 과육 ● 올리브오일 풍미는 생산자가 설계한다 ● 구매할 때 산도 표기와 함께 눈여겨볼 것들
농장에서 바로 수확한 올리브.
내가 먹어본 과일 가운데 최악의 맛을 꼽으라면 단연 올리브다. 제주도에 올리브 농장이 있긴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올리브나무를 보기는 좀처럼 힘들다. 나무는 굵은 줄기가 빙빙 꼬여서 자란 것처럼 기묘하고 단단하게 생겼다. 잎의 앞면은 반짝반짝 윤이 나는 진한 초록이고, 뒷면은 보송보송한 질감이라 뿌연 초록이다. 바람에 흔들리는 올리브나무가 은빛으로 일렁이는 것처럼 보이는 건 바로 양면의 잎 때문이다. 그런 나무들이 숲을 이루면 신비로운 동물이나 마법사, 요정 같은 존재가 툭 튀어나올 것처럼 묘한 풍경을 이룬다. 우리가 흔히 본 적 없는 나무이기에 무리 지어 자라는 것이 더 신기하게 다가온다. 이 나무의 열매는 정말 쓰고 떫고 맛이 없다. 생과를 치아 끝으로 살짝 물기만 해도 아찔한 맛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같은 지역에 사는 새(특히 철새)들에게만큼은 인기 있는 과일이 올리브다. 무게·당·지방 함량이 높아 적은 양을 먹어도 높은 열량을 낼 수 있으며, 소화가 잘되기 때문이다. 가장 맛없는 열매인 것은 맞지만 인류 역시 이 과일을 절이고, 으깨고 기름을 짜서 수천 년째 먹고 있다. 최근에는 아침마다 이 열매의 기름을 한 잔씩 마시는 사람도 늘어나는 것 같다.
다양한 색과 크기의 과육 즐긴다
나무에 열린 올리브 열매.
올리브 열매는 '바글바글'이라는 표현이 걸맞을 정도로 무성하게 열린다. 올리브 생산량이 많은 편인 이탈리아 남부 지역을 기준으로 1년을 보자. 이른 봄에 새순이 돋고, 늦은 봄과 초여름에 꽃이 피고, 여름에 열매가 무럭무럭 자라 초가을이면 색이 변하기 시작한다. 이때부터는 열매 품종과 용도에 맞게 시기를 따져 수확한다. 수확한 후에는 가지치기 등을 하며 나무를 다듬고 보듬는 시기를 맞는다. 올리브나무는 올해 열매가 가득 맺혔다면 내년에는 듬성듬성, 그 다음 해에는 다시 가득 차는 게 일반적이다.
열매는 산뜻한 초록색이었다가 올리브그린(말 그대로 올리브 녹색)을 거쳐 보라색, 자주색으로 검붉게 되면서 점점 까매진다. 우리가 열매 자체를 먹는 올리브는 색과 크기가 다양하다. 어떤 뚱뚱하고 커다란 품종은 초록 열매일 때, 또 다른 작고 갸름한 품종은 자주색으로 익었을 때 맛이 좋다. 이처럼 과육 상태와 풍미가 알맞은 때를 기다려 수확하기에 품종마다 색과 모양, 크기가 제각각이다. 물론 이런 품종도 생과가 맛없기는 매한가지라 소금물에 절이는 등의 다양한 방법으로 쓴맛을 줄인다. 그 후 맹물에 담가 짠맛 등을 빼고 허브, 채소, 과일, 염장 해물 등과 함께 다른 절임물에 넣어 새로운 풍미의 올리브 절임을 만든다. 다만 캔이나 병에 든 균일한 크기와 색의 블랙 올리브 제품은 다른 얘기다. 까맣게 익은 올리브를 사용하는 제품도 있지만 일정한 기준 이상 익은 올리브를 수확해 전처리하는 과정에서 색이 검게 변하는 경우가 더 많다.
원료는 자연이 주고, 풍미는 생산자가 설계한다
기름을 짜는 올리브는 대체로 초록색일 때 수확한다. 과육이 단단하고 자그마해 수율은 낮지만 풋풋항 향과 쓴맛, 매운맛 등이 다채롭게 어우러져 있고, 폴리페놀 함량도 높다. 오일은 단일 품종으로 만들기도 하지만 서너 가지를 섞기도 한다. 어느 방법이 더 낫다고는 단정할 수 없다. 이는 마치 조향사가 향을 배합하듯 오일 생산자가 최적의 맛과 향을 만들기 위한 선택 과정이기 때문이다. 간혹 올리브오일 병에 맛을 표현하는 단어나 문장을 써둔 제품이 있다. 과실·풋사과·허브·꿀·풀·견과류·후추 등의 향이 난다거나, 같은 과실향이라도 강하다, 부드럽다 등으로 표현한다. 쓰고(bitter), 맵다(pungent)는 표기가 있다면 폴리페놀이 풍부할 확률도 높다. 올리브오일의 풍미는 원료와 생산과정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치지만 생산자의 의도 역시 깊이 반영된다.
최근 이슈는 뭐니 뭐니 해도 올리브오일의 '산도'가 아닐까. 구매자 대부분이 낮은 산도를 선호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산도가 낮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올리브오일의 산도는 오일 속 유리지방산(free fatty acids)의 함량을 올레산(oleic acid)으로 환산해 표기한 것이다. 말이 너무 어려우니 한번 풀어보자. 올리브오일 속 지방은 대부분 중성지방 형태다. 중성지방은 글리세롤에 지방산 3종이 결합한 모양이다. 지방산은 올레산, 리놀레산, 팔미트산 등 여러 종류가 있는데 올리브오일 속에는 올레산이 특히 많다.
이 중성지방이 어떤 요인에 의해 쪼개지면 글리세롤에서 지방산들이 떨어져 나간다. 이렇게 따로 돌아다니는 지방산을 유리지방산이라고 한다. 즉 유리올레산, 유리리놀레산, 유리팔미트산 등이 되는데 이를 편의상 대표 지방산인 올레산으로 환산해 산도를 표기한다는 말이다. 현재 먹고 있는 올리브오일의 산도가 0.3%라고 표기돼 있다면 오일 100g당 올레산(사실은 유리지방산)이 0.3g 들었다는 것이다. '산도'는 앞서 설명했듯 유리지방산의 함량이므로 '신맛'과는 상관없다. 그래서 올리브오일의 산도를 맛으로 가늠하기는 어렵다.
올리브오일의 산도가 말해 주는 것
잎 제거 및 세척 중인 올리브.
사람들은 산도가 낮은 올리브오일을 선호한다. 틀린 판단은 아니다. 올리브오일의 산도는 착즙 당시 열매의 상태와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나무에서 알맞게 익은 건강한 열매, 섬세하고 재빠른 수확, 습기가 적고 바람이 잘 통하는 상태에서의 운반, 수확 즉시 세척과 착즙이라는 조건에서 얻은 기름일수록 산도가 낮다. 반대로 나무에서 지나치게 익은 열매, 벌레 먹었거나 수확 중 상처 입은 열매, 수확 직후가 아닌 며칠 아니 몇 시간이라도 묵혔던 열매에서 짠 오일은 산도가 높게 측정된다. 앞서 설명한 것과 같이 나쁜 열매 따위가 섞이면 효소나 미생물이 작용해 지방산을 쪼개어 유리지방산이 만들어진다. 같은 농장의 열매일지라도 수확물의 상태와 당시 자연조건 등에 따라 매번 산도의 차이가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다. 확실한 건 신선하고 좋은 열매로 바로 짠 기름이 산도가 낮다는 점이다.
갓 짠 올리브오일(왼쪽). 빵과 함께 맛봤다.
국제올리브협회(IOC·International Olive Council)는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오일의 올레산 기준을 100g당 0.8g 이하여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그렇다고 올레산 함량이 0.8% 이하라고 해서 모두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오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유럽연합(EU) 기준이라면 산도가 낮을지라도 맛과 향을 평가하는 '관능검사'를 통과하지 못하면 '버진 오일' 등급으로 떨어진다. 그리고 산도가 낮다는 말이 폴리페놀 함량이 더 높다거나, 항산화 효과가 증대된다거나, 심혈관 건강에 더 이롭다거나, 풍미가 훌륭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올리브오일의 산도 표기를 눈여겨볼 필요는 있지만 그 숫자가 좋은 오일의 지표와 같은 의미는 아닐 수 있다. 산도와 함께 생산지, 생산자, 품종, 수확 연도(이때 착유할 확률이 높다), 병입 날짜(착유 후 바로 병입하지 않고 탱크에 보관하기도 한다), 사용 기한 그리고 앞서 말한 풍미나 맛 표현까지 한번 꼼꼼하게 살펴보자.
이탈리아 최초 유기농 인증, 브로냐 올리브 먹어보니…
이탈리아 남부 칼라브리아 지역에서 올리브오일을 생산하는 브랜드 브로냐가 운영하는 농장. 농장주가 올리브나무를 손질하고 있다.
이탈리아 남부 칼라브리아 지역에서 1909년부터 올리브오일을 생산한 브랜드 브로냐(Brogna)의 농장과 공장을 방문했다. 이곳은 이탈리아 최초로 유기농 인증을 받았다. 브로냐는 시바리(Sibari) 평원에서 다양한 종류의 올리브를 키워 오일을 생산한다. 오전 중에 만나 함께 농장에 갔다. 수확한 올리브를 공장에 가져오자마자 순식간에 잎을 분리하고, 세척해 바로 기름을 짠다. '짠다'기보다는 올리브를 갈아서 페이스트 질감의 반죽을 만들어 약 30분간 저으며 섞는다. 이 과정에서 올리브 반죽 사이사이에 잘게 퍼져 있던 기름이 서로 만나 덩어리가 커진다. 이렇게 해야 건더기, 물, 기름을 분리할 때 수월하다. 반죽이 끝나면 기름을 추출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무에 있던 열매가 연한 풀색의 기름이 되어 흐른다. 한 국자 떠서 빵에 끼얹어 먹었다. 산뜻하고도 강렬한 풍미가 입과 코에 맴돈다. 풋풋함 가운데 매콤, 쌉싸래한 맛이 숨어 있고 무엇보다 간결하고 반질반질한 기름 맛이 정말 일품이다. 몇 시간 전만 해도 떫고 쓰던 과일이 이토록 신비로운 자연의 맛으로 탈바꿈하다니 신기할 뿐이다. 건강한 기름이라는 이름표를 떼더라도 이 매력적인 풍미의 과일로부터 벗어나긴 영영 힘들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