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최루가스 뒤덮인 파리…재정 포퓰리즘이 불러온 프랑스의 비극

임주희 2026. 10. 14.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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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과 나들이를 즐기는 시민들로 북적이던 프랑스 파리의 보방 광장이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이날 시위는 파리를 넘어 프랑스 전역으로 확산했다.

유럽 2위 경제 대국인 프랑스는 코로나19와 에너지 위기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재정지출을 확대했고, 여기에 연금과 의료 등 복지 지출 부담까지 늘었다.

고등학생들의 시위를 계기로 긴축 재정 등 정부 정책과 유가 급등에 따른 생활비 부담에 대한 불만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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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재정 삭감 불만 학생 시위에
경찰 최루가스·물대포로 맞대응
코로나·에너지 위기 세금 땜질로
재정적자 가중…채무 GDP 110%↑
소비쿠폰·최고가격제 韓도 남일 아냐
IMF, “반도체 초과세수 비축” 권고
프랑스 파리 앵발리드 인근 보방 광장에서 지난 13일(현지시간) 교육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진 가운데, 광장 일대에 최루가스 연기가 자욱하게 퍼지자 시위 참가자들이 코와 입을 가린 채 이동하고 있다. 파리(프랑스)=임주희 기자


산책과 나들이를 즐기는 시민들로 북적이던 프랑스 파리의 보방 광장이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시위대는 경찰을 향해 돌을 던졌고, 도로 위에서는 불길이 치솟았다.

고등학생·대학생들이 거리로 나섰다. 어린아이와 부모들도 나섰다. 경찰은 시위대에 최루가스와 물대포, 공포탄으로 응수했다. 마치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배경으로 한 영화가 눈앞에 펼쳐진 듯 했다.

만약 현재 대한민국에서 이런 상황이 벌어졌다면 어떻게 됐을까 상상해봤다. 프랑스의 어린 학생들이 거리로 나선 이유는 자국 정부의 방만 재정으로 교육환경이 더는 무너져서는 안된다는 간절함이었다.

이는 한국 뿐 아니라 세계 모든 국가 정부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나마 한국은 반도체 발(發) 초과세수 덕에 당장 국가재정에 문제는 없을 것 같지만, 소비쿠폰·석유 최고가격제 등 확장재정을 펼치고 있는 우리 정부도 프랑스의 상황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난 13일(현지시간) 오후 5시쯤 파리 7구 앵발리드 인근 보방 광장에선 경찰이 쏜 최루가스가 퍼지면서 광장 주변은 매캐한 냄새로 가득 찼다.

불과 몇 시간 전 이탈리 광장에서 시작된 행진은 음악이 울려 퍼지고 형형색색의 깃발이 나부끼는 비교적 평화로운 분위기였다. 그러나 행렬이 보방 광장에 다다르면서 분위기는 급변했다.

“마크롱은 사퇴하라.”

시위대 사이에서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구호가 터져 나왔다. 행렬 선두에는 ‘우리는 젊지만 침묵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현수막이 내걸렸다. ‘공교육에 더 많은 돈을’, ‘청년들에게 지원과 희망을’이라는 피켓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대학생 노조 위니옹 에튀디앙트(UE)를 비롯한 학생단체와 노동조합도 행진에 동참했다. 현장에서 마이크를 잡은 한 대학생은 “청년들은 자신의 미래를 다시 자기 손으로 되찾기로 결심했다”며 연대를 촉구했다.

프랑스 파리 이탈리 광장에서 지난 13일(현지시간) 교육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학생 시위대가 ‘군대가 아닌 대학에 예산을 투입하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과 깃발을 들고 보방 광장으로 행진하고 있다. 파리(프랑스)=임주희 기자


이날 시위는 파리를 넘어 프랑스 전역으로 확산했다. 프랑스 내무부에 따르면 전국에서 16만1500명, 파리에서만 4만1500명이 참가했다. 주최 측은 전국 참가자를 약 48만명으로 추산했다.

정부 집계로는 첫 대규모 시위가 열린 지난 6일(26만명)보다 줄었지만, 주최 측 집계로는 지난 6일(45만명)보다 늘어난 것이다.

프랑스 정부에 따르면 이번 시위로 지금까지 6800명 넘게 체포됐다. 이 가운데 86%가 18세 미만 미성년자다. 시위가 격화하면서 지금까지 교직원 147명이 다친 것으로 교육부는 집계했다.

학생들을 거리로 내몬 것은 긴축재정으로 인해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교육환경이다. 교사 부족과 과밀학급, 낡은 학교시설에 대한 불만이 쌓이면서 교육예산 확대와 교원 충원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프랑스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 12일 전국 3700개 고등학교 가운데 약 130곳이 문을 닫았으며, 시위 당일인 13일에는 휴교한 고등학교가 214곳으로 늘었다.

프랑스 파리 앵발리드 인근 보방 광장에서 지난 13일(현지시간) 교육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시위대가 도로 위에 지른 불. 파리(프랑스)=임주희 기자


정부도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학생들의 반발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 12일 파리모터쇼에서 취재진과 만나 “이는 시간과 협의, 토론, 존중이 필요한 사안들”이라며 시위대에 자제를 촉구했다.

정부는 교육 여건이 열악한 114개 학교에 대체교사 3000명을 투입하기로 했지만, 학생단체들은 고등학교 교육예산을 100억유로 늘려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이 같은 교육환경을 만든 것은 프랑스의 만성적인 재정난이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유럽 2위 경제 대국인 프랑스는 코로나19와 에너지 위기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재정지출을 확대했고, 여기에 연금과 의료 등 복지 지출 부담까지 늘었다.

1974년 이후 지속적인 재정적자가 이어지면서 국가채무는 국내총생산(GDP)의 110%를 훌쩍 넘어섰다.

재정 불안은 금융시장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이달 초 프랑스 10년 만기 국채금리는 4.95% 수준까지 오르며 2002년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이탈리아와 그리스보다 높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 상황까지 내몰렸다.

과거 저금리 시절 발행한 국채의 만기가 돌아오면서 이자 부담도 커지고 있다.

하지만 조기 총선 이후 의회가 여러 정치 세력으로 분열되면서 정부는 재정 개혁을 추진할 동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재정적자를 줄이려면 지출을 더 억제해야 하는데, 학생과 노동계는 교육과 복지에 더 많은 예산을 투입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정부의 긴축 재정과 청년들의 교육 투자 요구가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는 셈이다.

프랑스 파리 앵발리드 인근 보방 광장에서 지난 13일(현지시간) 경찰이 교육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시위대를 향해 물대포를 발사하고 있다. 시위 참가자들이 물대포를 맞으며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파리(프랑스)=임주희 기자


이런 갈등은 교육 문제를 넘어 마크롱 대통령의 퇴진 요구로까지 번지고 있다. 연금개혁과 생활비 부담, 경찰의 시위 대응을 둘러싼 불만까지 겹치면서 정부에 대한 불신도 커지고 있다.

학생들의 반발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시위에 참가한 한 대학생은 “정부는 교육에 충분한 예산을 쓰지 않고 있다”며 “이는 학생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교육뿐 아니라 공공서비스를 축소하는 정부 정책에도 반대한다”며 오는 17일 예정된 집회에도 참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3주째 프랑스 전역에서 이어지고 있는 학생 시위는 내년 대선을 앞두고 교육 문제를 넘어 더 광범위한 사회적 불만으로 번지는 분위기다.

고등학생들의 시위를 계기로 긴축 재정 등 정부 정책과 유가 급등에 따른 생활비 부담에 대한 불만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오는 17일에는 생활비 상승에 항의하는 집회가 열릴 예정이라고 AFP 통신은 전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한국을 비롯해 확장재정을 펼치고 있는 다른 국가들도 프랑스의 상황을 반면교사 삼아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이날 태국에서 열린 IMF·세계은행 연차총회에서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7월보다 0.7%포인트 높은 3.3%로 제시하면서, 반도체발(發) 일시적 초과세수는 미래 위기에 대비해 비축할 것을 권고했다.

IMF는 “한국은 인공지능(AI) 발전의 최전선에 있어 재정 측면에서도 상당한 혜택을 얻고 있다”면서도 “상황 악화에 대비해 초과세수의 일부를 우선 저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IMF는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일반정부 부채비율이 올해 46.1%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임주희 기자 ju2@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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