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하려던 문경 3봉 극기훈련장 되다 [낭만야영 문경 묘봉·공덕산·천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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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문경의 묘봉妙峰에 올랐다. 묘봉 하면 문경새재 너머 속리산을 등에 업고 유명세를 떨치는 묘봉을 떠올리겠지만, 문경의 묘봉도 이름처럼 기묘한 형태의 바위가 즐비하다.
5년 전에는 대승사를 들머리로 공덕산을 올라 묘봉으로 하산했다.
나 역시 공덕산부터 천주산까지는 초행길이라 위성지도를 열고 등고선을 보며 거리와 시간을 계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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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문경의 묘봉妙峰에 올랐다. 묘봉 하면 문경새재 너머 속리산을 등에 업고 유명세를 떨치는 묘봉을 떠올리겠지만, 문경의 묘봉도 이름처럼 기묘한 형태의 바위가 즐비하다. 한여름 뙤약볕 아래 기암절벽을 넘나들었던 추억에 더해, 진흙 속의 진주 같은 천주산까지 종주하기로 했다. 천주산은 봄이면 핑크빛 진달래로 산꾼들을 유혹하는 창원 천주산의 명성에 가려져 있다. 산세만 놓고 보면 문경 천주산은 산림청 선정 100대 명산에 들지 못한 게 아쉬울 정도로 멋진 산이다.
마침 스케줄이 맞는 이경실과 지난해 선유도 장군봉에 이어 두 번째 백패킹에 도전하는 박민재가 합류했다. 5년 전에는 대승사를 들머리로 공덕산을 올라 묘봉으로 하산했다. 당시에는 인적이 드물어 우거진 산길을 헤치며 무작정 능선을 향해 올라야 했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어느 방향으로 얼마나 더 올라야 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고생 끝에 만난 묘봉의 기암들을 오르내리며 신나게 하산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백패킹 초보가 합류한 이상, 난이도 조정이 필요했다. 박배낭을 메고, 윤필암에서부터 체력을 소모하면 산세가 험한 천주산을 오르기 힘들 것 같았다. 암릉이 많은 묘적암 구간을 생략하고 바로 묘봉을 공략하기로 했다.

'자두봉'이 될 뻔한 묘봉
평소 장난을 잘 치는 민재는 배낭을 짊어지고 된비알을 오르는 게 익숙하지 않은지 말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묘봉 정상에 가까워지자 작은 슬랩 구간이 나타났다.
"누나 나한테 왜 이러는 거예요. 도대체 내가 뭘 잘못한 거예요?"
민재가 앓는 소리를 냈다.
"이 바위를 올라서야 진정한 백패커가 되는 거야!"
민재에게 굵직한 밧줄을 넘기며 말했다.
경실이는 우리의 실랑이는 아랑곳없이 물 만난 물고기처럼 신나게 바위를 기어올랐다. 투덜대던 민재도 막상 바위에 올라서자 펼쳐진 풍경에 감탄했다. 성금 다가온 가을날씨에 바람도 선선했다. 여름 내내 지긋지긋하게 괴롭혔던 짜증 지수는 제로였다. 묘봉 정상에 정상석은 없었다.
"여기 묘봉 정상 맞아요?"
민재가 물었다.
"전에는 나무에 '묘봉'이라고 적힌 팻말이 걸려 있었는데, 그것도 없어졌네?"
명색이 봉우리인데, 작은 표지석 하나 없는 게 아쉬웠다.
배낭에서 자두를 꺼내 나눠 주었다. 단내 나는 입안에 새콤한 자두가 들어가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민재가 다 먹은 자두씨를 들어올렸다.
"이거 그냥 버리면 안 되죠?"

"그럼~ 아무데나 씨앗을 버리면 생태계가 교란될 수 있으니까 함부로 버리면 안 돼!"
늘 바른 생활이 몸에 밴 경실이가 단호하게 말했다.
"만약에 여기 자두나무가 자라면 봉우리 이름을 '자두봉'이라고 불러야겠네요."
민재가 씨앗을 배낭 주머니에 챙겨 넣으며 말했다.
정말 자두나무 한 그루가 잘 자라서 '자두봉'이 된다면 속리산 묘봉보다 더 유명해질지도 모를 일이다.
배낭에서 드론을 꺼냈다. 그런데 아뿔싸! 기체에 SD카드가 없었다. 전원을 켜보니, 사진 몇 장 정도 찍을 내장 메모리는 있었다. 번거롭지만 촬영 후 휴대폰으로 내려 받으면 몇 번이고 찍을 수 있을 터였다. 드론을 한 바퀴 날리고 나니, 금세 땀이 식으며 한기가 느껴졌다. 세 개의 산 중 이제 겨우 하나를 올랐을 뿐이다. 천주산까지 가려면 서둘러야 했다.

"왜 산을 세 개나 타는 거야?"
공덕산으로 향했다. 우거진 숲 속에는 거친 숨소리만 맴돌았다. 나 역시 공덕산부터 천주산까지는 초행길이라 위성지도를 열고 등고선을 보며 거리와 시간을 계산했다. 앞으로 더 지칠 것을 감안하면 야간산행도 각오해야 했다. 조급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초조함과 불안감을 안겨주고 싶지 않았다.
"이 된비알만 오르면 공덕산이야. 이제 천주산 하나만 더 오르면 우리 야영지니까 조금만 더 힘내자!"
"아니, 누나! 우리 산을 세 개나 타는 거야?"
민재가 당황하며 물었다.
"언니, 내가 얘기했지! 종주는 욕구 불만인 사람들이 하는 거라고~!"
믿고 따라가겠다던 경실이마저 배신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박배낭 메고 종주를 해봐야 진정한 백패커가 되는 거라고!"
6km에 4~5시간 정도 걸린다고 간단히 브리핑해 주었지만, 당일 등산에 익숙한 두 사람에게 박배낭의 무게는 큰 변수였다. 그래도 걷다가 힘들면 어디서든 야영을 하면 된다. 멋진 밤하늘과 풍경 따위는 포기하면 그만이다. 공덕산에 도착해 두 사람에게 물었다.

"앞으로 300m 정도 내려갔다가 200m 정도 올라가야 하는데, 천주산은 가팔라서 한두 시간은 더 가야 할 거야. 힘들면 여기서 야영하자."
별 헤는 밤을 꿈꾸며 올라왔을 두 사람은 하늘이 꽉 막힌 공덕산보다는 고된 천주산을 선택했다. 위성지도 등고선이 빼곡한 걸로 봐서는 어마어마한 절벽을 기어오르거나 끝없는 천국의 계단을 올라야 할 것이다. 약 1.2km 거리에 고도 300m를 내리 꽂았다. 다리가 풀리면 아차 하는 순간 고꾸라질 수도 있었다. 뒤에서 조바심이 나지 않도록 속도를 늦췄다.
등고선 바닥까지 내려오자 산 속은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이제 다시 속도를 내야 했다. 천국의 계단은 끝이 보이지 않았지만, 위험한 절벽을 기어오르는 것보다 나았다. 절벽의 경사도에 따라 계단의 높이도 달라졌다. 무거운 배낭이 익숙하지 않은 두 사람에게는 버거운 길이었다.

초가을에 만난 반딧불이
다행히 정상에 가까워지자 전망이 트였다. 묵묵히 계단을 오르는 경실이 뒤편으로 자취를 감춘 석양의 잔상이 어슴푸레 빛나고 있었다. 계단 끝에는 바위벽을 따라 로프가 길게 이어져 있었다. 발아래에서는 작은 실수라도 기다리듯 어둠의 대마왕이 시커먼 입을 벌리고 있는 듯했다. 랜턴에 의지해 조심스레 발을 옮겼다. 절벽을 지나 암릉을 기어올랐다. 숲 속을 빠져나오자 안전한 계단이 나타났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두 사람을 기다렸다. 민재와 함께 계단을 올라오던 경실이가 다급하게 외쳤다.
"언니! 반딧불이다!"
맙소사! 길고 고된 길을 뚫고 온 우리를 환영하듯 작은 불빛 하나가 바람을 타고 넘실넘실 날아다니고 있었다. 가슴이 뭉클했다. 반딧불이는 금세 초가을 밤 한 자락 꿈처럼 감쪽같이 사라졌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천주산에 올라섰다. 드디어 무사히 야영지에 도착했다.
"누나, 내가 생각하는 백패킹은 선유도 장군봉처럼 산 정상에 올라가서 밤하늘 보고, 풍경 바라보며 하룻밤 자고 내려오는 거예요. 풍경도 없는 산 속을 극기훈련 하듯 무작정 걷는 건 별로라고요!"
저녁을 먹으며 민재가 투덜댔다.
"나도 그런 백패킹이 힐링되고 좋긴 해. 근데 멋진 바위도 올라보고, 고꾸라질 듯 내려가기도 하고, 심장이 터질 것처럼 오르다가 마지막에 멋진 야영지에 도착하면 감동이 배가돼. 기억에 오래 남고. 그 감동 때문에 다시 문경으로 내려왔잖아? 어쩌면 너도 어느 날 문득 징글징글했던 문경의 '자두봉'과 천주산 종주가 생각 날 수도 있어. 하하"
"아니! 절대 안 그럴걸!?"
민재가 눈을 부릅뜬 채 웃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민재야 너무 장담하지 마! 나도 종주 싫어했는데, 오늘 너무너무 좋아서 또 하고 싶어질 것 같아!"
경실이가 흐뭇해하며 말했다.
내내 하늘을 뒤덮었던 구름이 사라지고 쏟아질 듯한 별하늘을 가로지르는 은하수가 어슴푸레 모습을 드러냈다. SD카드가 없어 은하수를 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다음날 드라마틱한 운해도, 멋진 일출도 없는 평범한 하루가 시작됐다. 빨리 하산해 든든한 아침을 먹기로 했다. 텐트를 정리하던 민재가 밤에는 보지 못했던 이정표를 보고 외쳤다.
"누나! 여기서 천주사까지 800m밖에 안 된대! 아니 우리는 도대체 왜 이 쉬운 길을 5km나 돌아서 온 거지!?"
나는 에어매트 바람을 빼며 말했다.
"'자두봉'을 만나기 위해서!"
또다시 시작되는 논쟁을 막으려는 듯 경실이가 외쳤다.
"우리 내려가서 뭐 먹을까?"
역시 먹는 것 앞에서는 종주도 평화롭다. 고꾸라질 듯 가파른 800m의 하산을 마치고, 민재가 원하던 짬뽕집으로 향했다.

산행 중 먹다 남은 과일, 그냥 버려도 될까?
"과일은 자연분해되니까 괜찮겠지." 산에서 과일을 먹다 보면 한 번쯤 해볼 법한 생각이다.
1 등산 중에 먹은 과일 껍질이나 씨앗을 산에 버리거나 심는 것은 쓰레기 투기로 간주되어 폐기물 관리법에 따라 20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국·도립공원에서는 자연공원법에 따른 별도의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다.
2 산에서 주로 먹는 과일(수박, 참외, 사과, 포도 등)은 대부분 사람이 인위적으로 개량한 품종이거나 수입된 외래종이다. 이 씨앗이 산에서 자라나게 되면 고유 자생종의 서식지를 침범해 생태계 교란을 일으킬 수 있다.
3 과일 씨앗이나 껍질에 남아 있는 농약이 야생동물에게 해가 될 수 있다. 사람이 먹는 과일 맛에 길들여진 동물이 등산로 주변을 맴돌다 로드킬을 당하거나 사람을 공격할 수도 있다.
따라서 먹고 남은 과일 껍질 등은 배낭에 다시 넣어 가져오는 것이 가장 깔끔하다. 산에서는 '자연분해'보다 '내 배낭 속 분해'가 정답이다. '묘봉'이 '자두봉'으로 바뀌는 일은 없도록 하자.

월간산 10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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