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사람 대신 풀만 자라는 ‘나의 살던 동네’ [포토 다큐]

정효진 기자 2026. 10. 13.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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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대문구 현저동의 한 주민이 계단을 오르고 있다.

쌀집만 세 개가 있는, 크고 활기찬 마을이었다. 정육점, 미용실, 방앗간, 구멍가게가 길 따라 늘어져 있었다. 산 아래 언덕 저 끝에서부터 구불구불 내려오는 골목 구석구석까지 집이 있었다. 지붕 없이 천막만 친 방도, 판잣집도 있었다. 복작복작 와글와글, 정신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골목골목 이웃하며 살았다. 김금례 할머니는 결혼하고 이곳으로 이사 와 여기서 큰딸을 낳았다. 스무 살 때부터 이곳에 산 최미강자 할머니는 올해로 여든여섯이 됐다. 누구는 딸이 대학생 때 이사 와서 20년을 넘겼고, 누구는 초등학교부터 여기서 다녀 50년을 넘겼다.

지난달 11일부터 21일까지 촬영한 현저동의 빈집을 콜라주 형태로 모았다. 아래 사진 일부도 현저동의 사람, 동물, 물건 등을 콜라주 했다.

재개발이 추진된다는 소리가 20년이 넘게 마을을 흔들었다. 소식을 듣고 어떤 사람들은 들어오고 어떤 사람들은 나갔다. 매년 당장이라도 뭐가 될 것 같았고, 사람들은 집을 고치지 못했다. “지긋지긋할 정도로” 시간이 가는 동안 마을에는 빈집이 더 많아졌다. 무언가를 기다리기만 한 집들은 점차 늙어갔다. 500가구가 넘던 마을에 지금은 30여 명이 남았다. 골목 어느 집이 비어 있고 어느 집에 사람이 사는지는 동네 사람들만 안다.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 아주 많은 풀, 아주 많은 집, 그 사이로 작고 적은 사람들이 뜨문뜨문 있는 동네. 등산복을 입은 외부인들은 마을을 힐긋 살펴보고 지나가고 이 동네에서 50년을 넘게 산 노인들은 옹기종기 한데 모여 앉아 있는 곳.

한때 집이 있던 자리에 풀이 무성해졌다. 어느 집 앞에는 어린이용 자전거가, 어느 방 안에는 넥타이 하나만 남았다. 높은 데 있어 공기가 좋고 별도 잘 보이는 마을이었다. “달이 둥실 뜨면 너무 예뻐서 집에 불을 다 끄고 달을 내다볼 정도”였다. “인왕산에 진달래며 개나리가 알록달록 뒤덮이면 얼마나 좋은지” 몰랐다. 서로 속속들이 아는 이웃들은 누구 집 딸이 태어나서 어느덧 비슷한 할머니가 될 때까지 함께 시간을 보냈다. 이미 이사를 간 사람들도 매일 버스를 타고 이곳 노인정에 온다. 참새들은 슈퍼 앞에 뿌려주는 쌀을 얻어먹고, 사람들은 같이 장을 보고 수영장에 다닌다.

지난 7월 서대문구가 모아타운 가로주택정비사업 조합 설립을 인가했다. 지난달에는 시공사 선정을 위한 주민 공청회가 열렸다. 내년에 착수해 2030년에 준공할 계획이다. 마을 사람들은 이번엔 진짜 하나 싶다면서도 언제 이사 가야 하느냐며 서로 물었다. 집 한 채가 애들 과자값은 아니니까 확실하게 정해져야 알아보겠다고 했다. 키우는 닭에게 “우리 이사 가면 너는 죽은 목숨”이라고 농담을 건네지만 마당에는 여전히 배추며 고추가 자라고 있었다.

“다 버리고 가야지” 마음먹으면서도 어디서부터 정리를 시작해야 할지 아직 모른다. “게딱지같이 작은 집이라도 여기가 좋다”는 마음과 더 일찍 해야 했다는 마음, “좋은 시절 여기서 다 보냈는데”하는 마음과 후련하다는 마음이 켜켜이 쌓여서 이 평범한 마을을 이룬다. 먼저 떠난 사람들이 두고 간 것들과 아직 사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것 모두가 골목 구석구석을 채우고 있다.

집도 아니었던 방에서 살던, 집을 짓고 살던, 어릴 때부터 늙을 때까지 살던 사람들이 아마 이제 곧 떠난다. 누군가는 훌훌, 누군가는 뒤돌아보며. 잠이 잘 오던 어떤 지붕, 달이 아주 밝게 둥실 뜬 어떤 풍경을 뒤로하고. 무릎이 아프던 높은 계단도, 슈퍼 앞에 모여 앉던 익숙한 얼굴도 두고.

아직은 이 작고 조용한 동네에 나지막하게 어둠이 깔리면 주민들은 빈집들을 지나 골목의 계단을 오른다. 시간이 얼마나 지나도 땅에는 늘 집이 있고 사람들은 그 사이사이 골목골목을 메우고……

사진·글 정효진 기자

정효진 기자 hoh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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