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나를 다시 일으킨 것은 걷고, 읽고, 쓰는 일이었다”…이신우 작가의 삶과 기록
경마장에서 만난 수많은 인연과 이별…흩어진 마음을 붙잡아 준 기록과 독서의 힘

[한국독서교육신문 김현주 기자]
누군가에게는 성공의 기록으로 기억되는 삶이 정작 그 삶을 살아온 사람에게는 버텨낸 시간으로 남기도 한다. 한국 경마계 최초의 여성 조교사 이신우 작가의 이야기가 그렇다.
2001년 서울경마공원 최초의 여성 기수로 데뷔한 이신우는 2011년 국내 최초 여성 조교사로 새로운 길을 열었다. 남성 중심의 경마계에서 기수와 조교사로 활동하며 여러 기록을 세웠고, 2025년 7월에는 조교사 통산 400승을 달성했다.
그러나 이신우가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꺼낸 이야기는 화려한 기록이나 성공담보다 그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 함께했던 말들과의 이별, 그리고 무너진 자신을 다시 일으킨 시간에 가깝다.

최근 북콘서트 전문 MC 박제인 사람북닷컴 대표와 진행한 인터뷰에서도 이신우는 책에 담긴 이야기를 다시 꺼냈다. 경마장에서 처음 자신의 길을 발견했던 순간부터 관계의 상실로 힘겨웠던 시기, 글쓰기를 시작한 계기와 오늘의 삶을 대하는 태도까지 솔직하게 전했다.
'최초'라는 기록 뒤에 있었던 버티는 시간
이신우가 처음 경마장을 찾은 것은 IMF 외환위기 무렵이었다. 대학에 진학했지만 가정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진로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고, 고등학교 시절 교사의 권유를 떠올려 경마장을 방문했다.
그곳에서 힘차게 질주하는 경주마와 기수들을 보며 자신이 가야 할 길을 발견했다. 당시에는 여성 기수가 없는 줄도 몰랐다고 한다. 눈앞에 펼쳐진 경주에 마음이 끌렸고, 그렇게 시작한 일이 평생의 직업이 됐다.
이후 최초의 여성 기수, 최초의 여성 조교사라는 이름이 따라붙었지만, 그는 그 수식어가 언제나 자랑스럽기만 했던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실력보다는 그냥 버티는 힘."
남들이 성취로 바라보는 시간을 그는 이 한마디로 설명했다.
여성 선배가 거의 없는 환경에서 중요한 선택을 스스로 해야 했고, 자신의 위치를 설명할 비교 대상조차 없었다. 그러나 여성이라는 이유로 자신이 더 힘들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어떤 일을 하든 어려움은 있기 마련이라고 받아들였다.
그렇게 오랜 시간 현장을 지켜온 뒤 후배 여성 조교사가 등장한 일은 그에게 의미 있는 변화였다. 자신이 먼저 길을 걸어왔기에 누군가는 그 길을 이어갈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여러 번의 이별 끝에 펜을 들다
경주마를 돌보는 조교사에게 말은 단순한 관리 대상이 아니다. 오랜 시간을 함께하며 성장을 지켜보고, 때로는 은퇴와 죽음으로 이별해야 하는 존재다.
이신우는 코로나19 시기에 경마가 중단되고 여러 경주마를 예정보다 일찍 떠나보내야 했다. 새로운 사업에 도전했다가 경제적인 어려움도 겪었다. 여기에 14년 동안 함께한 반려견의 죽음과 오랜 시간 자신을 지지했던 사람과의 관계 단절까지 겹쳤다.
경제적 손실도 힘들었지만 무엇보다 견디기 어려웠던 것은 소중한 관계를 잃었다는 사실이었다.
그 시기 가까운 선배가 마음속에 쌓인 감정을 글로 기록해 보라고 권했다. 어린 시절부터 편지 쓰기와 낙서를 좋아했던 그는 다시 펜을 들었다.
처음부터 책을 낼 생각은 없었다. 당시 느끼던 분노와 슬픔, 원망과 그리움을 메모하듯 써 내려갔다. 누군가에게 차마 털어놓지 못했던 이야기들도 종이 위에서는 숨길 필요가 없었다.
이신우는 그때 쓴 글들이 힘겨운 시간을 버티게 해준 지팡이와 같았다고 회상했다.
그렇게 쌓인 기록들이 한 권의 책으로 묶였다. 『너를 잃고 나를 얻다』는 누군가와의 이별을 다룬 이야기이면서, 이별 이후에도 계속 살아가야 하는 한 사람이 자신을 돌아본 기록이다.
"기억은 흩어져 버리잖아요"…기록이 남긴 것
이신우는 인터뷰에서 글쓰기의 의미를 이야기하며 "기억은 흩어져 버리잖아요"라고 말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난날의 감정은 흐려지고, 어떤 기억은 현재의 마음에 따라 달리 해석되기도 한다. 그러나 당시 써 놓은 글에는 그 순간 자신이 무엇을 느끼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가 남아 있다.
그가 자신의 기록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금은 책에 담긴 힘겨웠던 시절의 글을 다시 읽고 싶지 않다고 했다. 당시의 감정을 다시 붙잡고 싶지 않을 만큼 그 시간을 지나왔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럼에도 기록을 남긴 일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글 속에는 그 시절의 자신이 있었고, 다시 살아가려는 의지도 함께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에게 글쓰기는 문학적인 표현을 완성하는 일이 아니었다. 자기 마음을 외면하지 않고 들여다보는 과정이었다.
잘 쓰려고 애쓰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기록한 일이 결국 자신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다. 글쓰기를 '비상약'이라고 표현한 것도 그런 경험에서 비롯됐다.
걷기에서 시작해 읽고 쓰는 삶으로
이신우가 힘겨운 시기를 지나면서 다시 자신을 움직이게 한 것은 거창한 목표가 아니었다. 밖으로 나가 걷는 일이었다.
기수 생활을 하면서 체중 관리를 위해 끊임없이 운동해야 했던 그에게 운동은 오랫동안 고된 일이었다. 하지만 마음이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는 오히려 몸을 움직이지 않은 채 혼자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특별한 준비 없이 가볍게 밖으로 나가 걸었다. 반드시 땀을 흘리거나 운동 성과를 내야 한다는 생각을 내려놓고 그저 걷기 시작했다.
그는 당시의 경험을 "우울은 움직이는 걸 따라오지를 못하더라고요"라고 표현했다.
걷기만으로 모든 어려움이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다만 밖으로 나가 몸을 움직이는 작은 행동이 무기력했던 일상에서 벗어나는 출발점이 됐다고 했다.
이후 걷는 동안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마음에 떠오르는 것을 글로 쓰기 시작했다. 글을 쓰다 보니 더 많은 표현을 접하고 싶어졌고, 자연스럽게 책을 읽게 됐다.
독서는 다른 사람들의 삶과 생각을 만나는 통로가 됐다. 자신과 다른 경험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그들의 깨달음을 통해 자신의 삶을 다시 바라볼 수 있었다.
걷기에서 시작된 작은 변화가 글쓰기로 이어지고, 글쓰기는 다시 독서에 대한 관심을 넓혔다.
이신우의 경험은 독서와 글쓰기가 반드시 특별한 목표나 성과를 위해서만 이루어지는 활동은 아니라는 사실을 생각하게 한다. 삶이 힘겨울 때 책을 읽고 자신의 마음을 적어보는 일은 혼란스러운 생각을 정리하고 자신을 이해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이별의 아픔보다 함께했던 시간을 기억하는 일
『너를 잃고 나를 얻다』에는 사람뿐 아니라 경주마와 반려동물에 관한 이야기도 담겨 있다.
이신우가 특별히 아꼈던 경주마 스카이베이는 미국에서 직접 데려와 함께 큰 경주에서 우승했던 말이다. 은퇴 후 번식을 위해 목장으로 보냈지만 첫 출산 이후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또 다른 경주마 라온로열 역시 은퇴 후 새로운 환경에서 지내던 중 예상하지 못한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이신우는 소중하게 생각했던 말들을 떠나보낸 뒤 오랫동안 미안함과 후회가 남았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별을 슬픔과 자책의 기억으로만 남겨두지 않으려 노력하게 됐다. 함께했던 동안의 즐거운 순간을 더 많이 떠올리고, 지금 곁에 있는 존재들과 좋은 추억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에서다.
그는 현재 함께 지내는 반려묘들에게도 고맙고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건넨다고 했다.
언젠가 헤어짐을 맞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기에 지금 함께하는 시간을 더 소중하게 보내려는 것이다.
400승의 기록보다 소중해진 일상의 행복
이신우는 2025년 7월 한국 경마 최초의 여성 조교사로 통산 400승을 달성했다. 2011년 조교사로 데뷔한 이후 14년 만에 이룬 성과였다.
그러나 그는 성공한 순간과 행복한 순간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한 경주에서 우승한 기쁨이 다음 경주에서의 패배나 말의 부상으로 금세 바뀔 수 있는 것이 경마장의 일상이다. 수백 번의 승리가 있었다고 해서 그 사이에 겪은 수많은 어려움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는 이제 하루를 온전히 성공과 실패, 행복과 불행으로 나누기보다 그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작은 기쁨을 소중히 여기려고 한다.
여행을 앞두고 설레는 시간이나 일을 마친 뒤 동료들과 보내는 편안한 순간도 그에게는 충분히 행복한 경험이다.
그렇게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면서 자신을 평가하는 기준도 조금씩 달라졌다. 과거에는 다른 사람에게 좋은 모습으로 보이는 일에 신경을 썼다면, 이제는 혼자 있을 때의 자신도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고 한다.
『너를 잃고 나를 얻다』, 상실의 끝에서 만난 자신
이신우가 책을 통해 전하려는 이야기는 이별을 빨리 극복해야 한다거나 모든 슬픔에는 반드시 좋은 결과가 따른다는 식의 위로가 아니다.
상실로 생긴 마음의 빈자리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그 빈자리를 안고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이별의 경험을 통해 그는 자신이 관계를 맺어온 방식도 돌아보게 됐다. 타인에게 기대하고 의지하던 마음, 때로는 자신의 감정을 상대에게 그대로 쏟아냈던 순간들을 다시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과의 관계가 편안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누군가를 잃은 자리에서 자신을 다시 만났다는 책 제목은 그렇게 완성됐다.
이신우는 지금도 경주마를 관리하는 조교사로 살아가며, 제주한라대학교에서 마산업 관련 교육에도 참여하고 있다.
경마장의 기록으로 이름을 알렸던 그가 이제는 자신의 삶을 글로 남기는 저자로 독자들과 만나고 있다. 그의 책에는 특별한 직업을 가진 한 사람의 인생뿐 아니라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상실과 후회, 그리고 그 시간을 지나면서 조금씩 달라지는 마음이 담겨 있다.
읽고 쓰는 일은 이신우에게 세상을 더 많이 아는 수단이기 전에 자신의 마음을 알아가는 과정이었다. 그가 힘겨운 시간에 남긴 문장들은 한 권의 책이 되었고, 지금은 비슷한 시간을 지나고 있는 다른 독자들과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
영상으로 만나는 이신우 작가의 이야기
이신우 작가는 북콘서트 전문 MC 박제인 사람북닷컴 대표와의 인터뷰에서 경마장에서 살아온 시간과 저서 『너를 잃고 나를 얻다』의 집필 과정, 독서와 글쓰기를 통해 달라진 삶의 태도를 들려줬다.
이신우 작가 인터뷰는 아래 유튜브를 통해 전체 시청할 수 있다.
이신우 작가 인터뷰진행: 박제인 대표 | 약 52분여성 조교사의 삶, 이별과 기록, 걷기·읽기·쓰기를 통한 자기 회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