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거짓을 막겠다는 법이 진실까지 침묵시켜서는 안 된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국민의 입은 국가의 소유물이 아니다. 정부는 국민에게 비판의 허가증을 발급할 권한이 없다.
설명할 책임을 미룬 채 국민에게 말의 책임만 앞세워서는 안 된다.
권력의 자리는 언젠가 비워지지만 국민의 삶과 헌법은 남는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국민의 입은 국가의 소유물이 아니다. 정부는 국민에게 비판의 허가증을 발급할 권한이 없다. 정부를 비판하기에 앞서 "이 말을 했다가 무슨 일을 겪게 될까"부터 걱정해야 한다면, 국가는 그 불안의 이유를 돌아봐야 한다. 국민이 숨을 죽이는 자리에 권력의 목소리만 커지는 것을 민주주의의 평온이라 부를 수는 없다.
허위·조작정보로 인한 피해는 막아야 한다. 악의적인 거짓으로 타인의 명예와 생업을 무너뜨린다면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피해자를 보호한다는 명분이 권력을 보호하는 방패로 변해서는 안 된다. 거짓을 규제하는 권한이 진실을 독점하는 특권으로 넘어가는 순간, 법은 목적을 잃는다. 이른바 '입틀막법' 논란의 핵심은 정당한 비판까지 위축될 위험이다. 고의적인 조작과 합리적 근거에 따른 의혹 제기, 사실의 주장과 의견·논평은 구별되어야 한다. 그러나 확인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질문 자체를 거짓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기준이 불명확할수록 시민은 말하기 전에 자신을 검열한다.
권력에 관한 진실은 처음부터 완성된 증거로 나타나지 않는다. 어긋난 설명에 대한 질문, 부당한 지시를 받은 직원의 증언, 제보에서 시작되기도 한다. 완벽한 입증을 갖춘 사람만 말할 수 있다면, 자료를 쥔 권력 앞에서 국민은 어떻게 첫 질문을 꺼낼 것인가. 질문의 문턱을 높이면 진실에 이르는 길도 좁아진다.
법정에서 이기면 된다는 설명도 시민의 삶 앞에서는 부족하다. 소송에는 비용이 들고, 출석하려면 생업을 멈춰야 하며, 가족의 걱정은 밤까지 이어진다. "우리 가족만 힘들어지는 것 아닐까"라는 망설임 끝에 제보가 접힌다면, 다음 피해자를 막을 기회도 사라진다. 용기 있는 사람만 누릴 수 있는 자유로는 부족하다. 평범한 사람이 일상을 지키면서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국민은 권력을 칭찬하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감시하고 질문하며 책임을 묻는 주권자다. 선거의 승리는 통치의 권한을 맡긴 것이지, 비판을 물리칠 면허를 준 것이 아니다. 다수의 힘이 커질수록 소수의 반대를 보호할 책임도 무거워진다.
비판이 틀렸다면 사실로 반박하고, 의혹에는 자료를 공개하며, 정책의 실패에는 개선으로 답해야 한다. 설명할 책임을 미룬 채 국민에게 말의 책임만 앞세워서는 안 된다. 표현의 자유가 가장 필요한 순간은 권력이 그 말을 듣고 싶어 하지 않을 때다.
공익적 보도와 제보를 보호하는 장치는 시민의 일상에서 작동해야 한다. 소송을 통한 압박을 신속히 걸러내고, 표현을 제한하는 조치에는 엄격한 사법적 통제가 따라야 한다. 시민에게는 의혹을 확인할 자료가, 제보자에게는 불이익을 막을 보호가 필요하다. 말할 권리를 행사한 뒤에도 일상이 무너지지 않아야 한다.
언론의 책임도 무겁다. 시민의 억울함을 듣고 검증하며 권력의 설명을 끝까지 따져 물어야 한다. 확인되지 않은 주장을 그대로 옮기거나, 권력에 불편하다는 이유로 질문을 거두어서는 안 된다. 힘없는 시민의 작은 말을 공적인 질문으로 키우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다.
권력의 자리는 언젠가 비워지지만 국민의 삶과 헌법은 남는다. 어느 세력이 집권하더라도 같은 기준으로 자유를 지켜야 한다. 부당함을 삼키는 법부터 배우는 나라를 다음 세대에 남겨서는 안 된다.
거짓으로 상처받은 국민도, 진실을 밝히려는 국민도 함께 지켜야 한다. 국민의 침묵을 동의로 받아 적지 말라. 법은 자유를 지키는 울타리여야 하고, 언론은 목소리가 닿지 않는 사람에게도 등불을 비춰야 한다. 권력의 임기는 끝나도, 국민이 말할 권리는 끝나서는 안 된다.
이인곤 前 성균관대학교 학술연구교수·법학박사
Copyright © 저작권자 © 중부일보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