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물밀물] 평화와 국제법

"국제법이란 강대국이 약소국을 때릴 때 쓰는 몽둥이"라는 말이 있다. 국제법은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 이래 제도화되기 시작해서, 20세기 들어 현대 국제법 체계가 정비되었지만, 국제법에 대한 냉소는 짙고 진하다. 정의를 내세우며 자국 이익 극대화를 추구하는 강대국의 횡포가 이어져도, 집단학살이 자행되어도, 국제법이 별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탓이다. 그러니까 "국제법은 강대국이 어길 때만 유명해진다"거나 "국제법은 현실을 모르는 이상주의자의 장난감"이라고 믿는 것이다.
2026년 노벨평화상 수상자는 나바네템 나비 필라이(85)다. 남아프리카의 인도 타밀족 가정출신인 이 법률가는 평생을 국제법과 정의의 수호에 바쳤다. 노벨상위원회는 나비 필라이를 선정한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역사는 법치 없이 운영되는 세상이 부당하고, 미련하며, 비인도적이라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 그러나 그 법관들이 제재를 받고 그 기관들이 공격받는 오늘날 우리에게는 용기와 비전, 결단력을 갖춘 인물이 필요합니다. 이는 바로 나비 필라이가 재판석에서 보여준 자질들입니다."
나비 필라이 선정은 최근 노벨평화상 흐름과 결이 다르다. 2025년 노벨평화상은 베네수엘라 정치인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에게 돌아갔다. 독재자(마두로)에 맞서 민주주의 수호에 앞장 선 공로였다. (그는 상을 트럼프에게 바쳤다.) 2024년은 일본원폭피해자단체협의회(니혼히단쿄)가 수상자였고, 2023년엔 이란의 인권운동가 나르게스 모하마디였다. 2022년엔 벨라루스 인권운동가 알레스 비알레츠키와 러시아 인권과 역사 기록단체 메모리알, 우크라이나 인권단체 시민자유센터가 공동수상했다. 최근 몇 년간 억압에 맞선 인물 위주로 수상자를 결정하다가, 올해는 방향을 튼 셈이다. 국제법과 정의가 흔들리는 현실 때문일 터.
현대인은 낙관론보다 비관론에 끌리는 경향이 있다. 인류 역사가 점점 더 평화로워지고 있다고 믿기 보다는, 아수라에 가까워진다고 믿는다. 그러나 진화심리학자 스티븐 핑커는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2011년)에서 인류 역사를 추적해 보면 통념과는 달리 폭력이 감소하고 평화가 확장되어왔다고 지적한다.
올해 노벨상위원회는 이렇게 말한다. "세계가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수준으로 많은 전쟁과 분쟁이 발생하는 등 존재론적 위기에 직면한 지금, 국제법은 더는 평화와 안보를 위한 부차적인 수단이 아닙니다. 그것은 절대적인 필수 요소입니다" 부디 점점 더 그러하기를.
/양훈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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