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속의 역사] 112 경덕왕의 사람들

강시일 기자 2026. 10. 12.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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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덕왕의 왕관은 빛났지만 밤은 깊었다. 신라의 불교문화가 찬란하게 꽃피던 경덕왕 시대, 궁궐에서는 왕권과 귀족의 이해가 부딪쳤다.

바둑돌 하나, 차 한 잔, 노래 한 수와 돌탑 한 기를 따라 경덕왕이 찾았던 사람들, 그들이 왕에게 남긴 물음을 만난다.

그날 밤 경덕왕은 잠든 태자의 곁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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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최고의 문화예술과 정치를 꽃피운 경덕왕, 신충과 충담사, 월명대사, 표훈과 같은 현자들의 지혜로 일군 업적
국보 불국사의 석가탑과 다보탑. 강시일 기자

경덕왕의 왕관은 빛났지만 밤은 깊었다. 신라의 불교문화가 찬란하게 꽃피던 경덕왕 시대, 궁궐에서는 왕권과 귀족의 이해가 부딪쳤다. 제도를 고쳐 나라의 기틀을 다잡으려던 왕은 현자에게 길을 물었다. 형 효성왕과 바둑을 두었던 신충에게서는 사람을 얻는 지혜를 구했고, 충담의 찻잔 앞에서는 백성을 편안하게 할 노래를 청했다. 월명의 노래에는 어지러운 세상의 평안을 빌었으며, 하늘을 오간다는 표훈에게는 왕통을 이을 아들을 부탁했다.

그러나 나라를 위한 마음과 자신을 위한 소망은 언제나 같은 길을 걷지 못했다. 백성의 삶을 보살피려던 왕도 혈육에게 왕좌를 물려주고 싶은 간절함 앞에서는 흔들렸다. 지혜로운 이를 찾는 일보다 그들의 경고를 받아들이는 일이 더 어려웠다.

그 시대의 꿈과 기도는 불국사 석가탑에도 깃들었다. 탑 밖에는 기다림의 전설이 머물고, 돌 속에는 경전과 사리를 봉안한 정성이 남았다. 바둑돌 하나, 차 한 잔, 노래 한 수와 돌탑 한 기를 따라 경덕왕이 찾았던 사람들, 그들이 왕에게 남긴 물음을 만난다.
불국사 대웅전 앞에 우뚝 서 있는 국보 석가탑의 모습. 강시일 기자

◆신화전설 1: 바둑왕 신충과의 인연

경덕왕이 바둑돌을 내려놓았다. 포위망을 좁혔다고 생각한 순간, 왕의 검은 돌들이 거꾸로 갇혀버렸다. 신충은 돌을 거두지 않았다. 왕이 다음 수를 찾을 때까지 무릎 위에 두 손을 얹고 기다렸다.

그때 궁문 밖에서 소란이 일었다. 곡식을 실은 수레를 붙잡은 농민들이 끌려왔다는 보고였다. 큰비에 논밭을 잃고도 정해진 곡식을 내라는 독촉을 받자 굶주린 이들이 길을 막았던 것이다. 신하들은 주동자를 엄히 다스려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한 번 물러서면 고을마다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했다.

경덕왕의 눈썹이 꿈틀했다. 왕의 명령을 가로막은 자들이었다. 그러나 바둑판에서는 제 돌 하나도 살려내지 못한 참이었다. 왕이 바둑판을 밀어놓으려 하자 신충이 손을 뻗었다. 왕이 버리려던 검은 돌 옆을 짚었다. 막힌 줄로만 알았던 곳에 길이 있었다. 왕은 한동안 그 틈을 들여다보았다.
석가탑의 기단에 나타난 그랭이공법. 강시일 기자

신충은 형 효성왕이 왕위에 오르기 전부터 바둑을 두던 사람이었다. 형은 잣나무 아래에서 그를 잊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왕이 된 뒤 약속은 멀어졌고, 신충의 노래가 걸린 잣나무는 시들었다고 했다. 사람을 잊으면 나무도 마른다는데, 자신은 굶주린 사람들의 얼굴을 보지도 않고 죄부터 물으려 했다.

왕은 농민들을 뜰로 데려오게 했다. 젖은 옷에서는 흙냄새가 났다. 앞에 선 사내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곡식을 빼앗으려 했느냐는 물음에 그는 품에서 헝겊을 꺼냈다. 천이 풀리자 불어 터진 곡식 몇 알과 진흙이 바닥에 떨어졌다. 물에 잠긴 집에서 건진 마지막 양식이었다.

경덕왕은 자리에서 내려왔다. 신하 하나가 급히 앞을 막았다. 왕의 위엄을 생각하라는 말이었다. 왕은 그를 지나 젖은 곡식 앞에 쪼그려 앉았다. 손가락에 진흙이 묻었다. 뜰에는 빗물 떨어지는 소리만 남았다.

이튿날 왕은 피해를 입은 마을의 곡식 징수를 멈추고 창고를 열도록 했다. 대신들은 군량까지 축나면 무엇으로 나라를 지키겠느냐고 맞섰다. 경덕왕은 궁중의 잔치부터 거두었다. 왕실에 들일 물품을 줄이고, 그 몫을 구휼에 보태게 했다. 왕이 먼저 내놓자 반대하던 신하들도 제 몫을 감춘 채 버티기 어려워졌다.

명령만으로 끝내지는 않았다. 왕은 창고에서 나간 곡식과 마을에 도착한 곡식의 양을 함께 적게 했다. 며칠 뒤에는 곡식을 받은 사람들을 불러 실제로 얼마를 받았는지 물었다. 장부 사이에서 사라진 곡식이 드러났다. 왕은 책임을 따져 빼돌린 곡식을 돌려놓게 하고, 가난한 집부터 다시 나누도록 했다.

신충은 그날 밤에도 바둑판을 펴놓았다. 경덕왕은 맞은편에 앉았다. 이번에는 귀퉁이를 탐내지 않았다. 흩어진 돌들을 잇고, 끊어진 길을 살폈다. 그러다 잡을 수 있는 흰 돌을 그냥 두었다.

신충이 고개를 저었다. "살려둘 돌과 놓쳐서는 안 될 돌은 가리셔야 합니다."

왕의 눈이 가늘어졌다. 백성에게 곡식을 돌려준 일과 곡식을 훔친 관리를 벌한 일이 떠올랐다. 무조건 물러서는 것이 어진 정치일 수는 없었다. 경덕왕은 돌을 오래 굴리다가 판 한가운데 내려놓았다.

밤이 깊어서야 대국이 끝났다. 왕은 또 졌다. 그러나 이번에는 돌을 밀어놓지 않았다. 어느 곳에서 길이 끊겼는지 처음부터 되짚었다. 신충이 졸음을 참으며 허리를 세우자 왕이 웃으며 그의 어깨를 눌렀다. "오늘은 내가 놓친 수를 끝까지 보겠네."

신충은 찻물을 새로 올렸다. 두 사람 사이에서 돌 부딪치는 소리가 다시 이어졌다. 열린 창 너머 잣나무에서는 빗물을 머금은 가지가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흔적: 불국사 석가탑

불국사 대웅전 앞마당에 들어서면 동쪽의 다보탑과 서쪽의 석가탑이 서로 다른 모습으로 눈길을 붙든다. 다보탑이 다채로운 구성으로 시선을 끈다면 석가탑은 절제된 선과 균형으로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국보 경주 불국사 삼층석탑. 높이 10.75m의 석가탑은 경덕왕 10년인 751년 김대성이 시작한 불국사 조영과 연결되는 통일신라 석탑의 대표작이다.

석가탑에는 무영탑이라는 또 다른 이름이 있다. 전설 속 석공 아사달을 찾아온 아사녀는 탑이 완성되면 연못에 그림자가 비친다는 말을 믿고 영지에서 기다렸다. 그러나 기다리던 그림자는 나타나지 않았고, 끝내 연못에 몸을 던졌다고 한다. 후대 기록과 문학을 거치며 전해진 이야기로, 실제 탑을 세운 장인의 이름이나 행적을 확인해주는 기록은 아니다. 다만 탑의 아름다움 뒤에 사람의 기다림과 눈물을 겹쳐놓았다.

탑은 두 층의 기단 위에 세 층의 몸돌과 지붕돌을 올렸다. 각 층의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만들었으며, 지붕돌 아래에는 다섯 단의 받침을 새겼다. 위로 올라갈수록 줄어드는 크기와 간결한 구성이 안정된 비례를 이룬다.

발밑을 살피면 또 다른 솜씨가 보인다. 자연석 위에 놓인 석재의 아래쪽을 바위의 굴곡에 맞춰 다듬은 그랭이 기법이다. 아래 돌을 평평하게 깎기보다 위에 얹을 돌을 맞추어 접촉면을 밀착시켰다. 탑 둘레에는 연꽃무늬를 새긴 돌 여덟 개를 배치한 팔방금강좌가 있다. 네 모서리와 네 변의 가운데 놓인 연화석이 장대석과 이어져 탑의 영역을 둘렀다.
석가탑을 받치고 있는 보물 불국사의 석축에도 그랭이공법이 나타나고 있다. 강시일 기자

돌 속의 세계가 열린 것은 1966년이었다. 도굴 시도로 훼손된 탑을 해체수리하던 중 2층 몸돌의 사리공에서 사리장엄구와 경전 등이 나왔다. 금동외함과 은제 합, 유리 사리병은 사리를 여러 겹으로 감싸 봉안한 정성을 보여주었다. 작은 목탑과 구슬, 청동 비천상 등 공양품도 함께 발견됐다.

그 가운데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신라의 인쇄문화를 보여주는 귀중한 유산이다. 닥종이에 목판으로 경문을 찍어 두루마리로 만든 것으로,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목판인쇄본으로 알려져 있다. 통일신라시대 인쇄물로 평가되지만 간행 시기를 적은 기록이 없어 정확한 제작연도를 단정하기는 어렵다. 경전을 탑에 넣은 것은 부처의 가르침을 사리처럼 봉안하고 공덕을 쌓으려는 신앙과 관련된다.

함께 나온 묵서지편도 중요하다. 먹글씨가 남은 종이 조각을 보존처리하고 판독하면서 고려시대 불국사 석탑의 중수 과정과 참여자들의 흔적이 드러났다. 탑은 한 번 세운 뒤 손대지 않은 채 오늘에 이른 것이 아니었다.

현대의 보존도 이어졌다. 2010년 상층기단 덮개돌에서 균열이 확인돼 2012년 전면 해체수리에 들어갔다. 2013년에는 기단 내부에서 금동불입상도 발견됐다. 부재 조사와 보존처리를 거쳐 2016년 탑 조립과 주변 정비를 마쳤고, 2017년 수리보고서 발간 등으로 사업을 마무리했다.

석가탑을 지켜온 것은 단단한 돌만이 아니었다. 경전을 넣던 손, 무너진 부분을 고치던 손, 균열을 살피던 손이 시대를 건너 탑을 받쳤다. 무영탑의 전설 곁에는 그렇게 유산을 지켜낸 사람들의 역사가 남아 있다.
보물 불국사 대웅전. 강시일 기자

◆신화전설 2: 충담사와 표훈대덕

월정교 누각에 찻잔 하나가 놓였다. 충담이 낡은 대통을 기울이자 맑은 물 위로 흰 김이 피어올랐다. 남산 삼화령의 미륵에게 올리고 남은 차라고 했다. 경덕왕이 잔을 들다가 멈췄다. 찻물에 비친 자신의 얼굴 뒤로 궁궐에 없는 문이 열리고 있었다.

문 너머로 구름이 흘렀다. 그 위를 맨발의 승려가 걸어갔다. 표훈이었다. 오래전 아들을 얻도록 하늘에 청해달라 부탁했던 날, 표훈은 저렇게 구름 속으로 사라졌었다.

천궁에는 기둥도 벽도 없었다. 사람들의 숨결이 별빛처럼 얽혀 지붕을 이루었다. 표훈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땅 위의 소리가 들렸다. 아이를 재우는 자장가, 밭을 가는 농부의 숨소리, 병든 아버지를 부르는 아들의 울음이었다.

표훈이 왕의 소원을 전하자 허공에 금빛 저울이 나타났다. 한쪽에는 작은 왕관이, 다른 쪽에는 짚신 수천 켤레가 놓였다. 왕관이 기울 때마다 짚신이 어둠 속으로 떨어졌다.

표훈이 황급히 손을 뻗었다. 짚신은 잡히지 않았다. 굳은살 박인 발바닥의 온기만 손끝을 스쳤다. 하늘의 주인 천제가 입을 열었다. "왕은 무엇을 이어가려 하느냐." 표훈은 대답하지 못했다. 내려다보니 빈 요람 곁에 경덕왕이 홀로 앉아 있었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의 이불을 펴고 있었다.
불국사를 찾는 사람들. 강시일 기자

표훈이 돌아왔을 때 왕은 뜰까지 내려와 기다렸다. 딸을 얻을 수 있다는 말에 얼굴이 굳었다. 아들이어야 한다고 했다. 자신의 뒤를 이을 왕자가 없으면 귀족들이 왕좌를 두고 다툴 것이라며 밤새 표훈을 붙잡았다.

거듭 천궁을 다녀온 표훈은 아들을 얻으면 나라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경고를 전했다. 왕은 침묵하다가 빈 요람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 아이를 가르치고 나라를 단단히 세우면 될 터였다. 왕은 그렇게 믿고 싶었다. 표훈은 더 말하지 못했다. 그의 젖은 발자국 뒤로 구름길이 한 자락씩 끊어졌다.

찻잔이 떨렸다. 경덕왕은 두 손으로 잔을 감쌌다. 이번에는 붉은 해가 둘 떠올랐다. 몇 해 전 서라벌 사람들이 두려움에 문을 걸어 잠갔던 하늘이었다. 어디선가 월명의 노래가 들려왔다. 꽃 한 송이가 허공으로 올라가 두 해 사이에서 피었다. 겹친 빛이 걷히자 닫혔던 문들이 하나둘 열렸다.

그때는 노래 한 수가 사람들을 밖으로 불러냈다. 왕은 궁궐의 높은 문을 돌아보았다. 이 문 밖에서 지금은 어떤 소리가 나고 있을까.

충담이 잔에 차를 더 따랐다. 하늘도 구름도 사라지고 맑은 물만 찰랑거렸다. 경덕왕이 백성을 편안하게 할 노래를 청했다. 충담은 잠시 눈을 감았다. 이윽고 낮은 가락이 누각을 채웠다. "...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백성은 백성답게 도리를 다한다면 나라가 태평하리니..." 백성이 먹고 살아갈 터전을 지켜나갈 도리를 제시하는 노래가 왕의 마음을 적셨다.

왕은 충담을 스승으로 붙잡으려 했다. 그러나 승려는 대통을 메고 일어섰다. 누각 아래에서는 장에 다녀오는 여인이 아이를 업고 걸었다. 충담이 내려가 여인의 무거운 보따리를 받아 들었다. 왕은 그 모습을 오래 바라보았다.

그날 밤 경덕왕은 잠든 태자의 곁에 앉았다. 작은 손을 펴보니 손바닥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왕관도 칼도 쥐지 않은 손이었다. 왕은 아이의 손을 자신의 두 손으로 감쌌다. 가르쳐야 할 것이 많았다. 자신이 먼저 배워야 할 것도 아직 남아 있었다.

창밖에서 바람이 일었다. 왕은 문득 표훈이 놓친 짚신들이 하늘 어딘가를 떠돌고 있을 것 같아 오래도록 잠들지 못했다.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이 글은 문화콘텐츠 육성을 위해 스토리텔링 한 것이므로 역사적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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