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은 왜 AI해킹의 먹잇감이 됐나?

2026. 10. 12.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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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카드 300만명 정보 유출 후 1년도 안 돼 또 뚫려
해커 중국 광둥성 거주 가능성 제기, 신원 확정 미정
관리안한 보안 공백 AI에 노출, 은행 책임 면피 안돼
신한은행에 이어 KB국민은행, 하나은행 등 주요 시중은행에서 인공지능(AI)을 악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해킹으로 고객정보가 유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우리은행과 NH농협은행 에서도 해킹 시도가 있었으나, 자체 침입 방지 시스템이 작동해 정보 유출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10월 4일 서울 시내에 설치된 여러 은행 ATM기. 연합뉴스

인공지능(AI)이 악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해킹 사고에 금융사들의 전산망이 동시다발적으로 노출됐다. 신한은행 등 총 7곳에서 유출된 개인정보는 6만8000여건으로 현재 진행 중인 금융당국의 조사가 끝나면 유출 규모는 더 늘어날 수 있다. 아직까지 금전적 피해는 파악되지 않았으나 당국은 보이스피싱 같은 2차 피해를 우려해 금융소비자 경보를 발령했다.

이번 사고는 지난해 통신 3사와 롯데카드 등의 대규모 정보 유출 사고를 계기로 공공과 금융, 통신 등 정보기술(IT) 시스템 취약지대를 전수조사한 지 1년도 안 돼 발생했다. 또 당국이 ‘사이버 위협’에 대비하라고 권고했음에도 이를 무시한 은행들의 안일한 태도가 사고를 키웠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에 국회 정무위원회는 10월 19일 금융감독원 대상 국정감사에 5대 은행장을 국정감사 증인으로 불러 사고 원인과 경위 등을 따져 물을 예정이다.

금융당국 조사에 따르면, 이번 해킹사고에서 동일 공격자가 AI 도구를 악용해 공격한 정황이 발견됐다. 신한·KB국민·하나·BNK부산은행과 예가람·웰컴저축은행, 현대캐피탈 등 7곳의 침해 사고에서 동일한 공격자의 인터넷주소(IP)가 발견됐다. 공격자는 IP를 변경해 지속해서 공격했다. 당국은 공격자가 AI 도구를 활용해 다수 금융사를 대상으로 대량으로 자동화된 공격을 한 것으로 추정했다.

금융권 해킹 피해 현황. 연합뉴스
“AI 악용한 사이버 공격 보편화할 듯”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IP 소재 지역은 12개국에 달한다. 미국과 일본, 중국, 싱가포르, 베트남, 태국, 말레이시아, 스페인, 일본, 스웨덴, 독일 등이었다. 미국발 IP가 5개로 가장 많았고, 일본과 스웨덴, 독일은 각 2개씩 중복이 있었다.

국내 IP도 1개 있었다. 국적 불명의 해커가 추적을 방해하기 위해 다양한 국적의 IP로 우회 침투, 시스템 내 여러 서비스를 탐색하다 취약점을 발견하고 집중 공격에 나선 것이다. 금감원은 “일부 IP는 국가를 특정할 수 없는 경우가 있고, 국가가 특정돼도 우회 가능성이 있어 해석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은행을 공격한 IP에서는 아르텍스(ARTEX) AI의 흔적이 확인돼 경찰청 사이버수사국이 국제 공조를 통해 해킹 경로를 추적하고 있다. 아르텍스 AI는 중국어를 중심으로 깃허브에 오픈소스로 공개된 대규모언어모델(LLM) 기반 자율형 침투 테스트 시스템이다. LLM과 멀티에이전트 구조를 활용해 정보 수집부터 취약점 탐색, 공격 경로 계획, 보안도구 실행 등에 이르는 과정을 자동화하도록 설계됐다.

해킹의 공격 배후가 중국 광둥성에 거주하는 26세 인물일 것이라는 가능성도 제기됐다. 글로벌 사이버보안 기업 크라우드스트라이크는 10월 7일(현지시간) “한국 금융권을 공격한 주체가 중국 광둥성에 거주하는 26세 인물일 가능성이 있다”는 추정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는 정황에 따른 추정으로 확정적 신원 특정은 아니라고 밝혔다. 공격자로 지목된 인물도 사건 관련성을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IT업계에선 세계적으로 활용되는 오픈소스 모델인데다 IP도 광범위하게 분산돼 공격자 신원을 단정 짓는 게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아르텍스가 쓰인 정황이 발견됐다고 해도 공격 대상 선정부터 시스템 침입까지 전 과정을 사람의 개입 없이 AI가 자율적으로 수행했다고 볼 수도 없다. 공격 과정에서 아르텍스가 어디까지 활용됐는지, 사람과 AI가 어떤 역할을 담당했는지는 공격자 신원 조사와 함께 향후 경찰 수사로 밝혀져야 할 부분이다.

다만 아르텍스 같은 도구는 누구나 내려받을 수 있고, 아르텍스 외에도 공개된 AI 모의 해킹 도구가 80여개에 달해 향후 동시다발적인 대규모 사이버 공격이 더 늘어날 수 있다. 크라우드스트라이크는 “(한국 사례는) 기존 해킹 기법에 AI 에이전트를 결합해 단기간에 여러 기관을 공격하는 새로운 위협 양상을 보여준다”고 진단했다.

최대선 숭실대 AI안전성연구센터장(소프트웨어학부 교수)은 “(이번 사태는) AI를 악용한 사이버 공격이 보편화할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며 “운영자들이 서비스 중요도에 따라 핵심 시스템 중심으로 대응하던 기존 보안 점검 패러다임이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통상 금융기관은 응용프로그램 인터페이스(API) 코드를 몇백개 이상 갖고 있는데, 중요도에 따라 보안 수준을 다르게 관리한다. 하지만 취약점을 초단시간에 찾아내는 AI가 등장한 만큼 그에 따라 대응 방안도 달라져야 한다는 주문이다.

지난해 10월 통신사와 롯데카드 등에서 민감한 개인정보가 대규모 유출되자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본관 브리핑룸에서 ‘범부처 정보보호 종합대책’ 관련 브리핑을 했다. 연합뉴스

금융당국과 IT업계는 AI를 활용한 해킹 공격이 시작돼도 금융사의 보안 의무 책임이 희석돼선 안 된다고 본다. 이번 해킹 공격은 핵심 금융거래 시스템보다 보안 관리 사각지대에 놓인 대출모집인 시스템과 영업 지원 플랫폼 등 이른바 ‘섀도 IT(Shadow IT)’에 집중됐다. 섀도 IT는 보안 조직의 공식 관리 목록에서 빠져 금융사가 존재를 인지하지 못하거나, 인지하고 있어도 점검 순위에서 밀려 방치된 시스템·서비스·API를 뜻한다. 통상 외주 개발 인력이 사용하는 시스템으로 협력업체 위탁망은 내부 정책의 직접 접근이 어려워 공격표면관리(ASM) 시스템 자동 탐지 범위에서 빠지거나 모니터링 사각지대에 방치되기 쉽다.

보안 기본 원칙 지킨 은행은 AI 해킹 막아

AI를 활용한 ‘고도화된’ 해킹이 갑자기 등장한 게 아니라, 기존에 있는 해킹 도구로도 언제든지 뚫릴 수 있을 만큼 보안이 허술했다는 의미다. 해킹 수법도 새로운 게 없다. 크리덴셜 스터핑 공격으로, 불법으로 유통되는 수백만건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무작위로 입력해 개인정보를 탈취하는 방식이다. 국내 공공기관이나 기업의 개인정보 유출 사고 때 흔히 쓰는 공격 수법이다.

기본 보안기를 갖춘 은행은 같은 공격을 받고도 방어에 성공했다. 반면 정보가 유출된 신한·KB국민·하나은행은 본인 확인 절차 없이 대출 신청 내역을 조회하거나 직원용 모바일 서비스를 다른 사람도 접속할 수 있는 ‘허점’이 있었다.

방어에 성공한 우리은행과 농협은행은 본인인증 등 이중·삼중의 방어막을 설치해 놓은 것으로 파악됐다. 최첨단 기술 도입이 아닌, 다중인증체계와 접속 권한 관리 같은 기본적인 보안 원칙을 얼마나 잘 지켰는지가 사이버 공격 방어의 성패를 결정한 것이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이 10월 8일 금융위원회 등을 대상으로 한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은행의) 대응 방식이 아주 기본적인 부분도 굉장히 미흡했다”고 질타한 이유이기도 하다. AI가 해킹에 악용됐다는 정황만으로, 은행이 보안 조치 의무를 지키지 않은 책임을 면피해선 안 된다는 지적이다.

보안기업 SK쉴더스도 같은 날 보고서를 내고 “이번 침해사고의 본질은 AI가 완전히 새로운 공격 기법을 창조해낸 게 아니다”며 “기존에 존재하던 공격 절차를 자동화하고 고도화해 대규모로 증폭시킨 사례에 가깝다”고 했다.

전수점검해도 또 구멍, 당국 감독도 논란

AI 기술 발달로 사이버 공격 사고에 대한 위험 가능성도 이미 예고된 상태였다. 국회 정무위원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과 금융보안원 등은 올해 들어 “AI로 인한 해킹 공격에 대비해 외부 노출도가 높은 시스템과 서비스 점검”을 금융권에 여러 번 주문했다. 하지만 은행들이 채비를 마치기 전에 AI의 공격이 허술한 뒷문을 통해 먼저 시작됐다. 이에 금융당국은 금융사에게 외부 접속이 가능한 전산 자산과 업무 시스템을 전수 조사하도록 지시했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이 10월 8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열린 금융위원회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문가들은 전수조사와 관련해 일회성으로 대상 숫자를 늘리는 것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정부는 지난해 롯데카드 등 잇단 대규모 정보 유출 사고를 계기로 금융과 통신 등 1600여개 IT 시스템이 취약한 곳을 대대적으로 점검 했지만, 일년도 안돼 금융권에서 유사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때도 금융당국은 관리 사각지대 문제를 살펴보겠다고 밝혔지만, 올해 관리 사각지대에서 해킹이 터진 걸 보면 정부가 당시 자산 식별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IT 환경은 생물처럼 움직인다. 웹서비스와 서버가 새로 생기고 소프트웨어가 업데이트되고 협력사의 계정과 권한도 수시로 바뀐다. 오늘 점검을 마친 안전한 시스템이 미래에 새 취약점이 발견되거나 설정이 변경되면 허점을 노리는 AI에게 공격 경로가 될 수 있어 일회성 점검으로 끝내선 안 된다. 이와 관련해 금융당국 관계자는 “자산 전수조사 등 보안 점검 관련 제도 개선을 검토하고 있는 중”이라고 답했다.

김명주 서울여대 정보보호학과 교수는 “AI 쓰임 여부와 관계없이 기존에 있는 내부 구멍부터 먼저 살펴봐야 한다”며 “외부 웹서비스와 직원 업무 시스템, 협력사 접점, 계정 등과 연관된 모든 소프트웨어 호적 조사를 통해 사각지대에 있는 자산을 찾아내고, 그 구멍을 보완하는 상시화된 점검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은행서 지금 뚫리는 부분은 AI가 없었던 과거에도 계속 뚫렸던 부분”이라며 “이번 사태를 AI 해킹에만 초점을 맞추며 보안의 기본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은행의) 책임을 놓쳐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김은성 기자 k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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