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통합 LCC 부산 거점에 선 그은 대한항공과 산은
‘민간 자율’ 논리 멈추고 정부 약속 이행을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지원하면서 정부와 산업은행이 내걸었던 지방 공항 ‘세컨드 허브’ 구축 약속이 공수표로 전락할 판이다. 지난 8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산업은행은 통합 저비용항공사(LCC) 본사 문제를 대한항공의 자율에 맡기겠다고 밝혔다. 대한항공의 계획대로라면 양대 항공사의 자회사인 LCC 3사(에어부산·진에어·에어서울)는 서울을 본사로 둔 진에어로 합쳐진다. 이날 대한항공은 부산 거점 항공기 추가 배치와 국제선 확대, 정비 시설 강화 계획만 제시했을 뿐 부산 본사 문제는 회피로 일관했다. 이런 상태로 합병이 마무리되면 에어부산은 가뭇없이 사라지고, 가덕신공항은 거점 항공사 없이 개항할 우려가 커진다.
항공산업 재편 과정에서 드러난 산업은행과 대한항공의 무책임과 식언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2020년 산업은행은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지원하기 위해 대한항공 지주회사인 한진칼에 8000억 원의 정책금융을 투입했다. 당시 LCC 3사를 단계적으로 통합해 지방 공항을 기반으로 한 세컨드 허브를 구축하겠다는 구상도 제시했다. 그러나 에어부산 분리 매각 요구는 외면됐고, 산은과 국토부가 경영 자율성 운운하며 팔짱을 낀 사이 수도권 집중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정부의 승인과 국책은행의 막대한 정책금융 지원이 지방에서 태동해 성장해 온 항공사 하나를 시장에서 퇴출하는 꼴이 아니고 뭔가.
대한항공은 자본의 이익만 추구하며 통합의 이익은 챙기되 지역에 제시했던 약속은 무시하는 것으로 일관하고 있다. 대한항공 조원태 회장이 국감에 출석해 책임 있는 설명과 결단을 내놓지도 않은 채 실무진과 제출 자료로 갈음한 것이 이 현안을 대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이날 대한항공 측은 마치 부산을 배려하는 듯 항공기 추가 배치와 지역 인력 채용 등을 약속했지만 이는 지역이 바라는 거점 항공사 육성과는 거리가 멀다. 경영과 노선 결정권, 항공기 운용과 정비 기능이 집적돼야 진정한 허브가 된다. 새 공항에 필요한 것은 시혜성 투자나 일자리 몇 개가 아니라 가덕신공항의 미래를 책임질 실질적인 거점 항공사다.
남부권 관문 공항은 활주로와 터미널만 짓는다고 될 일이 아니라 안정적인 항공기 배치와 신규 노선 개척, 운항·정비 기능을 주도할 항공사가 있어야 한다. 부산 시민과 상공계가 20년 가까이 키워 온 에어부산이 이대로 공중분해 되는 상황은 용납할 수 없다. 균형발전까지 언급하며 8000억 원을 투입해 놓고 이제 와서 기업 자율 운운하는 것은 이율배반이다. 국토부와 산은은 “부산시가 협의하고 있다”는 식으로 강 건너 불구경해서는 안 된다. 남은 합병 절차에서 본사 소재지와 핵심 기능 배치에 끝까지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통합 LCC 부산 거점화는 배려가 아니라 정부와 대한항공이 지역에 제시한 약속 이행의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