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모약 건보-농지조사 오락가락, ETF 뒷북 규제… 국민 혼란 키워

세종=주애진 기자 2026. 10. 12. 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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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지 전수조사, 부동산 세금 강화, 기초연금 개편 등 최근 정부가 번복한 주요 정책은 이재명 대통령의 지시로 담당 부처에서 '속도전'으로 추진하다 현장 혼란을 키웠다는 공통점이 있다. 국민과 이해당사자, 전문가 의견을 충분히 듣고 예상되는 부작용을 파악하는 등 정책을 정교하게 추진해야 하는데 담당 부처에서 성과 내는 데만 집중하다 혼란을 자초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11일 정부 안팎에서는 이 대통령이 생중계 국무회의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정책을 즉흥적으로 제시하고 부처가 이를 지상과제로 수행하는 현재의 국정 운영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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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번복 혼란 키우는 정부]
李 “농지 엉망”에 농지법 속전속결
뒤늦게 보완 나섰지만 형평성 논란
레버리지 ETF 개인손실은 2조 넘어
‘李 제시 뒤 부처 추진’ 방식 역효과… “정책결정, 전문가 의견 듣고 숙의를”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충남지원 금산사무소 직원들이 금산 지역 농지 불법 이용을 근절하기 위해 현장조사에 나섰다. 금산군 제공
농지 전수조사, 부동산 세금 강화, 기초연금 개편 등 최근 정부가 번복한 주요 정책은 이재명 대통령의 지시로 담당 부처에서 ‘속도전’으로 추진하다 현장 혼란을 키웠다는 공통점이 있다. 국민과 이해당사자, 전문가 의견을 충분히 듣고 예상되는 부작용을 파악하는 등 정책을 정교하게 추진해야 하는데 담당 부처에서 성과 내는 데만 집중하다 혼란을 자초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 대통령 일방 지시에 부처는 성과 내기 급급
11일 정부 안팎에서는 이 대통령이 생중계 국무회의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정책을 즉흥적으로 제시하고 부처가 이를 지상과제로 수행하는 현재의 국정 운영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앞서 이 대통령이 올해 2월 국무회의에서 “농지 관리가 너무 엉망이다. 농지까지 투기 대상이 돼 버렸다”고 지적하면서 농림축산식품부의 농지 전수조사가 시작됐다. 당정은 속전속결로 추진 방안을 마련하고, 농지법 개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하지만 실제 조사에 착수한 뒤 농촌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비판과 농민 반발이 커지자 정부는 이달 8일 투기와 무관한 농지는 강제 처분 대상에서 제외한다고 물러섰다.

이 대통령이 연초부터 X(옛 트위터)를 통해 비거주 1주택자도 세금을 늘려야 한다는 취지의 글을 연이어 올린 뒤 재정경제부는 8월 초 비거주 1주택 세금을 강화한 세제 개편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조차 이에 반대하면서 비거주 1주택자 종합부동산세 기본공제를 현행 12억 원으로 유지하는 등 일부 수정을 거쳤다. 마찬가지로 세제 개편안에 담겼던 기존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의 세제 혜택을 축소하는 내용도 논란 끝에 백지화됐다. 이미 ISA에 가입한 투자자들이 반발했기 때문이다.

‘하후상박(下厚上薄)’식 기초연금 개편도 후퇴했다. 이 대통령이 3월 “노인 빈곤을 줄이려면 기초연금을 바꿔야 한다”고 하자, 정부는 지급 기준을 바꿔 고소득 수급자를 줄이고 저소득층을 두텁게 지원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하지만 노년층 반발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소득 하위 70%라는 지급 기준을 유지하고, 소득 하위 30%에는 월 3만 원을 더 주는 ‘반쪽 개편’에 그쳤다. 탈모 치료제 건강보험 적용 확대 정책도 이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보건복지부 업무보고 때 필요성을 지적한 뒤 급물살을 탔지만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이 거세자 중단됐다.

이 밖에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를 5개월여 만에 급하게 도입했다가 증시 변동성이 커지고 투자자 손실이 불어나자 뒤늦게 금융 당국이 규제를 강화하는 일도 있었다. 정부 당국은 레버리지 ETF의 부작용 등과 관련해 오랜 시간 밀도 있는 사전 점검을 하진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7월부터 시가총액 기준에 미달하는 부실 기업을 상장 폐지하기로 한 정부 정책에 법원이 제동을 걸기도 했다. 대상 기업들이 신청한 효력 정지 가처분을 법원이 받아들여 해당 정책은 당분간 유예됐다. 시장에서는 주가가 낮다고 기계적으로 시장에서 퇴출하는 정책을 둘러싼 논란이 벌어졌다. 대상 기업이 법적 대응에 나설 가능성도 사전에 제기됐지만 금융 당국은 제도 시행을 강행했다.

● ‘설익은 정책’ 피해 없도록 숙의 과정 거쳐야

전문가들은 주요 정책이 번복되는 일이 잦아지면서 국정 운영 동력이 떨어지고 국민의 정책 수용도가 낮아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설익은 정책을 시행했다가 철회하는 과정에서 피해자가 발생하는 점도 문제다. 정부가 뒤늦게 농지 전수조사 보완책을 내놨지만 이미 농지를 처분한 사람과의 형평성을 둘러싼 현장 혼란이 여전하다. 정부가 발표한 세제 개편안을 믿고 기존 ISA를 해지한 투자자들도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으로 개인투자자가 본 손실 규모는 2조3242억 원에 이른다.

야당도 정부의 잦은 정책 번복을 비판하고 나섰다. 국민의힘 최보윤 수석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대통령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국무회의와 부처 검토, 외교 채널을 건너뛰어 국정을 앞질러 가고 있다”며 “먼저 올리고, 반발에 부딪히면 거두는 ‘선(先)게시 후(後)유턴’”이라고 했다.

이 대통령이 지방 행정 경험을 국정 운영에 적용하다 보니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는 분석도 있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이 대통령은 본인이 정책 사안을 던지고 참모나 부처에서 이를 따라오도록 하는 스타일”이라며 “성남시장, 경기도지사를 거치면서 성공한 방식을 국정에 차용하는 것이라 말릴 수 없다”고 했다.

염명배 충남대 경제학과 명예교수(전 한국재정학회장)는 “대통령이 너무 앞서가지 말고, 담당 부처와 전문가 의견을 충분히 들으며 숙의 과정을 거친 뒤 정책을 제시하는 식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주애진 기자 jaj@donga.com
방성은 기자 bbang@donga.com
권구용 기자 9drag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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