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金’ 김경문도 못 버텼다... 한화 감독 잔혹사

지난 10일 대전 한화생명볼파크. 9회말 5점을 따라붙은 한화는 2사 만루에서 정은원이 땅볼로 아웃되며 8대9로 패배, 2026시즌을 마감했다. 선수들은 그라운드로 나와 홈 팬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지만, 김경문 감독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경기를 앞두고 “오늘이 한화 감독으로서 마지막 경기”라고 밝혔던 그는 팬들에게 따로 작별 인사도 없이 서둘러 경기장을 떠났다.
형식은 계약 만료였지만, 지난해 팀을 한국시리즈로 이끈 감독에게 재계약을 제안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사실상 성적 부진에 따른 퇴진이었다. 한화는 57승 4무 83패(승률 0.407)로 올 시즌 9위에 그쳤다. 정규시즌 2위에서 1년 만에 일곱 계단이나 추락했다. 한화는 이날 김 감독뿐 아니라 손혁 단장과의 결별도 발표했다. 감독과 단장에게 성적 부진의 책임을 함께 물은 문책성 인사였다.

김경문 감독은 2024년 6월 최원호 전 감독이 시즌 도중 물러난 뒤 3년 총액 20억원에 한화 지휘봉을 잡았다. 첫해에는 8위에 그쳤지만, 지난해 한화를 19년 만에 한국시리즈로 이끌었다. 정규시즌 최우수선수(MVP) 코디 폰세와 라이언 와이스, ‘원투 펀치’가 33승을 합작했고, 류현진과 문동주가 뒤를 받쳤다.
하지만 우승에 도전할 만한 충분한 전력을 갖추고도 정상에 오르지는 못했다. 정규시즌에서는 LG에 1.5경기 뒤진 2위에 머물렀고, 한국시리즈에서 LG에 1승4패로 무릎을 꿇었다. 특히 4차전에서 8회까지 4-1로 앞서다가 9회에만 6점을 내주며 뼈아픈 역전패를 당하는 등 김 감독의 위기 관리 능력이 도마 위에 올랐다.
김 감독에겐 다섯 번째 한국시리즈 준우승이었다. 두산에서 세 차례, NC에서 한 차례 2위에 머문 그는 한화에서도 마지막 벽을 넘지 못했다.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한국 야구의 9전 전승 금메달 신화를 썼지만, 프로 감독으로는 번번이 우승 문턱을 넘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냈다.
올해 폰세와 와이스가 나란히 메이저리그로 떠나자 지난해 두 외국인 투수의 맹활약에 가려졌던 약점이 한꺼번에 드러났다. 선발진이 일찍 무너지면서 불펜에 과부하가 걸렸다. 김 감독 특유의 ‘믿음의 야구’도 결과가 따르지 않자 고집으로 비쳤다. 부진한 선수를 중요한 순간마다 거듭 기용하다가 실패가 쌓인 뒤에야 보직을 바꾸는 일이 반복됐다.
지난해 김서현은 33세이브를 올렸고, 고졸 신인 정우주도 51경기에 등판, 평균자책점 2.85 호투로 힘을 보탰다. 그러나 올해 김서현은 제구 난조로 마무리 자리를 내주며 2세이브, 평균자책점 6.92라는 초라한 성적으로 시즌을 마쳤다. 정우주 역시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부진에 빠져 평균자책점 8.02에 그쳤다. 젊은 투수들이 나란히 무너진 것은 김 감독이 당장의 승리와 장기적인 육성 사이에서 뚜렷한 원칙을 세우지 못한 결과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화의 감독 잔혹사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1999년 이희수 감독이 창단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끈 뒤 27시즌이 흘렀지만, 한화는 아직 두 번째 우승을 이루지 못했다. 2006년 김인식 감독 이후엔 20년 동안 재계약에 성공한 사령탑도 없다.
한국 야구를 대표하는 ‘3김(金)’ 감독은 모두 한화에서 실패를 맛봤다. KBO리그 통산 978승, 2009년 WBC 준우승에 빛나는 명장 김인식 감독은 한화를 이끌고 2006년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했지만 삼성에 막혔고, 2009년 최하위로 임기를 마쳤다. 해태와 삼성에서 한국시리즈 우승을 10차례 차지한 김응용 감독(통산 1554승)도 한화에서는 2013년과 2014년 2년 연속 최하위에 머물렀다.
‘야신’ 김성근 감독(통산 1388승)도 2015년 6위, 2016년 7위에 머문 끝에 2017시즌 도중 물러났다. 이후 지휘봉을 잡은 한용덕, 카를로스 수베로, 최원호 감독 역시 모두 시즌을 마치지 못하고 팀을 떠났다. 송재우 해설위원은 “한화는 장기적인 계획 없이 스타 감독에게 단기간에 성적을 끌어올리는 ‘마법’을 기대하곤 했다”며 “감독이 교체될 때마다 구단의 철학은 물론 선수단 구성과 육성 방향까지 흔들렸다”고 지적했다.
한화 차기 사령탑으로는 류지현 야구 대표팀 감독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류 감독은 올해 WBC에서 한국의 8강 진출을 이끌었고, 아이치 나고야 아시안게임 정상을 밟았다. 한화 구단은 “류 감독이 후보 중 한 명인 것은 맞지만 아직 결정된 것은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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