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 엄마는 왜 딸보다 먼저 언덕을 올랐을까 [장주영 기자의 여책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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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은 한 없이 가까운 존재입니다.
손정서 작가가 글을 쓰고 김찬숙 작가가 그림을 그린 책 '우리, 거기도 가 볼래?'는 여든의 엄마와 쉰의 딸이 10년에 걸쳐 세계를 걸으며 서로의 인생 동반자가 돼 가는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일분일초 빽빽한 일정에 쫓기는 패키지여행이 익숙했던 엄마는 딸의 손에 이끌려 자유여행의 세계로 들어선다.
전망대 꼭대기에 오르지 못해도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풍경에 만족할 줄 아는 여유와 높은 곳이 무서워도 일출 한 번을 보겠다고 새벽 공기를 가르는 열정 그리고 몰타 고조섬의 가파른 시타델라 언덕을 딸보다 한참 앞서 올라 손을 흔드는 장면에서 책 제목이 던진 질문의 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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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은 한 없이 가까운 존재입니다. 그렇다고 완벽한 관계는 아닙니다. 뜻이 맞지 않아 싸우는 건 다반사고, 때로는 으르렁대는 일도 있습니다. 물론 결정적인 순간 가족은 초인적인 힘을 발휘합니다. 둘이나 셋, 그 어떤 숫자도 하나가 되는 기적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집니다.

책은 ‘가족과 함께 떠나 서로를 새롭게 발견하는 여행’을 다룹니다. 완벽한 여행이 아니라 실수와 한계까지 끌어안으며 가족이 더 단단해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글 손정서·그림 김찬숙 ㅣ 이담북스

2016년 1월. 딸이 건넨 한마디가 시작이었다. “엄마, 나랑 둘이서 미얀마 가 볼래?” 그때만 해도 평생 단 한 번뿐인 모녀 여행이라 믿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 질문이 자꾸 고개를 들었다. ‘단 한 번이라고 법으로 정해져 있나? 또 가도 되잖아.’ 그 물음이 결국 열 해를 데려왔다.
손정서 작가의 책 ‘우리, 거기도 가 볼래?’는 여든을 넘긴 엄마와 쉰을 맞은 딸이 두 발로 걸어온 세계 여행의 기록이다. 저자는 30년째 서울에서 고등학교 영어 교사로 살아온 사람이다. 2024년에는 1년간 무급 휴직까지 감행했다. 엄마와 세상 끝까지 걸어가 보기 위해서였다. 그림과 만화는 여행길의 또 다른 주인공이다. 엄마 김찬숙이 그렸다. 카메라를 잡았던 손으로 이번엔 연필을 쥐었다.

미얀마 우베인 다리에서 해가 떨어지기를 묵묵히 기다리던 엄마. 낯선 문자뿐인 메뉴판을 뒤적여 기어이 감자부침을 찾아내던 엄마. 시칠리아의 골목길을 딸보다 먼저 걷고, 말도 통하지 않는 이들과 어깨동무로 사진을 찍던 엄마. 풍경을 구경하던 사람이 어느새 여행의 당당한 주인공이 돼 있다.
책 속의 문장 하나가 오래 남는다. 올라가는 데만 40분이 걸린다는 딸의 걱정에 엄마는 이렇게 답한다. “천천히 쉬엄쉬엄 올라가 보자.” 급할 것 없는 여행이었다. 보고 느끼며 가면 그만이었다.
물론 여행이 늘 가볍지만은 않았다. 라트비아 투라이다 성의 가파른 계단 앞에서, 또 안개 낀 페트라 협곡의 미끄러운 빗길 위에서 엄마의 몸은 예전 같지 않음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그래도 책은 한계를 아쉬워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비어 버린 자리에 연륜과 지혜가 어떻게 들어차는지를 가만히 보여 준다.

이 책은 모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에스토니아 서쪽 우주피스에서는 엄마가 헌법 조항 하나를 골라 딸에게 건넨다. 완벽을 추구하느라 지친 딸에게 “실수해도 당당하라”는 격려에 딸은 점점 작아지는 엄마의 걸음을 살피며 계단마다 손을 내밀며 보답한다.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하기 어려운 두 세대의 여성은 낯선 길 위에서 인생을 함께 걷는 동반자로 거듭난다.
베들레헴의 장벽 앞에서도, 텔아비브 해변의 일몰 앞에서도 두 사람은 나란히 서 있다. 발트해의 투명한 일렁임과 아이슬란드의 맑은 밤하늘을 춤추는오로라 등 바라보는 풍경은 달라도 곁에 선 사람은 같다. 그래서 책장을 넘길수록 풍경보다 사람이 선명해진다.

그 끝에서 가장 진한 아쉬움이 묻어난다. 파타고니아 엘 찰텐에서 젊은 배낭여행객(백패커)들이 능선에서 마을 어귀까지 후드득 뛰어 내려올 때 엄마의 얼굴에는 부러움과 아쉬움이 스친다. ‘10년 전에 왔더라면 호수쯤은 함께 다녀올 수 있었을 텐데’라는 저자의 고백은 여행은 미루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조용히 일러 준다.
마지막 장면은 우수아이아를 떠나는 택시 안이다. 창밖을 한참 내다보던 엄마가 “아디오스, 우수아이아”라고 인사한다. 운전기사가 웃으며 고쳐 준다. 영원한 작별을 뜻하는 ‘아디오스’ 대신 언젠가 다시 만나자는 ‘아스타 루에고’라고 말이다. 책을 덮고 나면 이 인사가 엄마와 딸이 아니라 읽는 이에게 건네는 말처럼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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