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분은 그대로 사람만 빼간다? 빅테크식 ‘AI 인재 흡수’ 제동[박상영의 경제본색](23)

2026. 10. 10.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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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마이크로소프트 본사. 연합뉴스

인공지능(AI) 스타트업의 핵심 인력을 통째로 데려오고 기술 사용권까지 확보하면서도 회사 지분은 인수하지 않는 거래가 잇따르자 경쟁 당국이 기업결합 심사 범위를 넓히고 있다. 겉으로는 인력 채용과 기술협력 형태를 띠지만, 실질적으로 유망 스타트업의 핵심 사업을 흡수하는 효과를 낼 수 있어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최근 기업을 사들이지 않고 핵심 인력과 기술만 확보하는 이른바 ‘리버스 애크하이어’도 기업결합 심사 대상이 될 수 있도록 판단 기준을 구체화했다. 공정위는 이를 ‘애크하이어’로 통칭하면서, 핵심 인력과 기술을 조직적으로 넘겨받아 기존 사업을 사실상 이어갈 수 있다면 공정거래법상 ‘영업양수’로 보겠다는 기준을 마련했다.

애크하이어는 기업 인수(Acquisition)와 고용(Hire)의 합성어로, 핵심 인재와 조직을 확보할 목적으로 기업을 인수하는 방식을 뜻한다. 2000년대 후반 미국 빅테크 기업들이 개발자를 확보하려고 스타트업을 통째로 인수하는 일이 늘면서 쓰이기 시작했다. 페이스북(현 메타)이 2009년 프렌드피드를 인수해 공동창업자 브렛 테일러 등을 흡수한 사례를 꼽을 수 있다.

리버스 애크하이어도 기업결합 심사

애크하이어의 강점은 개별 인재뿐 아니라 이미 손발을 맞춘 조직을 한 번에 확보할 수 있다는 데 있다. 팀이 축적한 업무수행 방식과 협업 체계, 기술 노하우까지 함께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AI 경쟁을 주도하는 구글, 메타, 아마존, 애플, 마이크로소프트(MS) 등 5대 빅테크는 연평균 10건 이상의 애크하이어를 진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에서도 IT·플랫폼 기업을 중심으로 비슷한 인수가 이어졌다. 쏘카는 2018년 커플 메신저 ‘비트윈’ 개발사 VCNC를 인수해 기술·데이터 역량을 확보했다. VCNC는 이후 모빌리티 플랫폼 ‘타다’ 개발을 주도했다. 중고거래 플랫폼 당근도 2022년 이벤트 플랫폼 스타트업 페스타를 인수해 창업자와 개발 인력을 자사 조직에 합류시켰다.

최근 경쟁 당국이 주목하는 것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회사를 인수하지 않고 주요 인력을 직접 채용하면서 기술 사용권을 확보하는 ‘리버스 애크하이어’다. 기존 애크하이어가 기업 인수로 채용 효과를 낸다면, 리버스 애크하이어는 채용과 기술 라이선스 계약으로 기업 인수와 비슷한 효과를 내는 방식이다.

대표 사례가 마이크로소프트와 AI 스타트업 인플렉션AI의 거래다. 마이크로소프트는 2024년 AI 스타트업 인플렉션AI를 인수하지 않고 공동창업자인 무스타파 술레이만을 비롯한 인력 대부분을 영입하는 한편 약 6억5000만달러 규모의 AI 모델 라이선스 계약을 맺었다. 인플렉션AI 법인은 남겨둔 채 사업의 핵심인 인력과 기술을 확보한 것이다. 술레이만은 이후 마이크로소프트 AI의 최고경영자(CEO)를 맡았다.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이 9월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출입기자간담회에서 현안 관련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구글과 아마존도 비슷한 방식을 택했다. 구글은 AI 챗봇 스타트업 캐릭터AI의 공동창업자와 연구진 일부를 영입하면서 기술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 아마존도 AI 에이전트 스타트업 어뎁트의 공동창업자와 주요 인력을 자사로 데려오는 동시에 기술 사용권을 확보했다. 기업을 통째로 사지 않고도 핵심 인력과 기술을 확보할 수 있는 거래 구조가 AI 업계에서 빠르게 확산한 셈이다.

문제는 이런 거래가 형식상 인력 채용과 기술협력에 그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유망 스타트업의 사업 기반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핵심 인력과 기술이 경쟁력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AI 스타트업은 이들이 한 번에 빠져나가면 법인이 남더라도 독립적인 경쟁자로 기능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경쟁 당국이 애크하이어를 단순한 인재 영입이 아니라 기업결합의 관점에서 들여다보는 이유다.

실제 인플렉션AI는 공동창업자를 포함한 핵심 인력 다수가 MS로 이동하면서 조직 규모가 크게 줄고 사업 방향도 달라졌다. 핵심 인재 확보를 목적으로 한 거래가 기존 스타트업의 독립적인 사업 기반에도 영향을 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그런데도 이런 거래는 기업결합 심사망을 벗어나기 쉽다. 인재와 기술의 잠재력이 거래의 핵심이어서 현재 매출이나 시장점유율이 크지 않은 초기 스타트업이 주로 대상이 되는데 사업 규모만 놓고 보면 기업결합 신고·심사 기준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경쟁 당국이 애크하이어를 단순한 인재 영입이 아니라 기업결합의 관점에서 들여다보기 시작한 이유다.

해외 경쟁 당국은 이미 이런 거래를 기업결합의 관점에서 들여다보고 있다. 영국 경쟁시장청(CMA)은 2024년 MS의 인플렉션AI 핵심 인력 영입과 기술 라이선스 계약 등을 하나의 거래로 묶어 기업결합 심사 대상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다만 심사 결과 시장 경쟁을 실질적으로 제한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며 거래를 승인했다.

독일 연방카르텔청도 거의 모든 직원의 이동과 지식재산권 사용 계약 등을 종합하면 사실상 기업 인수에 해당해 원칙적으로 기업결합 심사 대상이라고 판단했다. 다만 인플렉션AI가 당시 독일에서 상당한 규모의 사업 활동을 하지 않아 독일 경쟁 당국의 심사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고 보고 절차를 종결했다.

인재 채용과 기업결합 경계 쟁점

공정위도 이런 신산업의 특성을 기업결합 판단 기준에 반영했다. 개정안은 ‘조직화한 인력’과 이들이 보유한 기술·지식의 결합도 하나의 영업을 구성할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공장이나 생산설비처럼 눈에 보이는 자산이 없더라도 특정 인력 집단을 중심으로 사업이 이뤄지고 있다면 기업결합 심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또 인력과 기술을 넘겨받은 기업이 기존 회사의 사업을 사실상 이어갈 수 있다면 영업의 ‘주요 부분’을 양수한 것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했다. 단순히 몇명을 채용했는지만 따지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기존 회사에서 맡았던 역할과 보유 기술, 인수 기업에서 기존 사업을 계속 수행할 수 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볼 예정이다. 예컨대 AI 스타트업의 핵심 연구진과 기술 사용권을 함께 확보해 기존 사업을 이어간다면 채용과 기술협력 형식이더라도 사실상 영업양수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개정은 기업의 핵심 자산이 공장·설비에서 인재와 기술 등으로 옮겨가는 산업 변화에 맞춰 기업결합 규제의 판단 기준도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에 따라 향후 통상적인 인재 채용과 사실상의 기업결합 사이의 경계를 어디에 그을지가 향후 법 집행의 최대 쟁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박상영 기자 s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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