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환자실의 화이트아웃

김영미 산악인(아시아 최초로 남극 대륙 단독 도보 횡단) 2026. 10. 10.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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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김영미의 남극, 끝까지 한 걸음] (32)
썰매의 이름 ‘백두대간’은 2023년 내가 남극점 원정을 떠나기 2주 전 중환자실에서 퇴원한 아버지가 써주신 글씨다. /김영미 제공

(2024.12.18. / 운행 41일 차. 위도 88도 06분 / 누적 거리 956.45㎞ / 해발고도 2616m)

운행 초반에 부르튼 입술의 상처가 한 달 가까이 아물지 않고 있다. 그래도 오늘 위도 88도를 넘었다. 그리고 한국에 보이스 메일을 남겼다. 위성 전화 너머로 혼잣말을 남기고 나니, 40대 중반에 미완의 꿈을 완성하기 위해 한 걸음씩 내딛는 고된 하루하루가 꿈길처럼 여겨졌다. 가벼워진 몸이 무중력의 우주에 붕 떠 있는 듯 마음이 가볍게 떠 있는 기분이다. 걷다가도 문득문득 남극에 다시 돌아온 것이 비현실처럼 여겨졌다. 인생에 두 번 올 수 없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니 더 소중하다. 창백한 남극의 얼음 사막을 걷는다는 건 ‘꿈길’이 맞다.

어제부터 날씨가 흐려지기 시작했다. 2023년에 남극점 원정을 왔을 때, 88도를 넘기 전 집에 안부 전화를 걸었다. 20년 넘게 원정을 다니며 인천공항에서 잘 다녀오겠다는 안부 전화를 하면, 원정이 끝나고 집에 돌아갈 때가 되어야 연락을 하곤 했다. 쉽게 연락을 할 수도 없는 환경일뿐더러, 원정에 집중하기 위해 그냥 스위치를 꺼버린 것처럼 집을 잊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란 말대로 그게 서로의 생활에 안정을 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2023년의 남극점 원정은 달랐다. 88도를 넘기 전 집에 전화를 걸었던 날은, 너무 춥고 많이 힘들던 날이었다. 온종일 지칠 때까지 애써 걸었는데 겨우 18㎞ 정도밖에 걷지 못했던 날이다. 이런 상태로는 50일을 걷고도 단 하루 차이로 남극점에 도달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힘든 날, 아버지의 안부를 묻기 위해 집에 전화를 걸어야만 했다.

2023년의 남극점 출국 2주 전 퇴원한 아버지는, 죽음의 문턱에서 생과 사를 오가는 치열한 싸움을 하셨다. 그것에 비하면 내가 느끼는 남극의 어려움은 한없이 가벼웠다. 나는 건강한 아버지의 체질을 닮아 어릴 때부터 아픈 데 없이 감기도 모르고 자랐다. 그런 강한 아버지가 남극점 출국을 5주 앞두고 급성 췌장염으로 구급차에 실려 갔다. 그날은 남극점에서 먹기 위한 식량을 만들기 위한 일정으로 아침부터 바쁜 날이었다. 내가 서울에서 원주의 종합병원에 도착했을 때, 아버지는 이미 중환자실에 계셨다. 중환자실에서 치료 중인 환자를 위해 보호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매일 아침 의사로부터 아버지의 위중한 상태를 전달받는 것이 전부였다. 숨을 쉬기 위해 기도 삽관을 했고, 폐에 물이 차기 시작했고, 염증 수치가 올라가 신장 기능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가족 모두가 그랬겠지만, 남극이고 뭐고 잠도 잘 수 없었다.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2주 정도 지났을까? 놀랍게도 아버지는 신장부터 조금씩 스스로 회복되기 시작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리고 며칠 후 일반 병동으로 옮기셨다. 중환자실의 하얀 불빛 속에서 시간이 그렇게 지난 줄도 몰랐다고 하셨다. 여전히 코로나가 유행 중이던 때라, 병간호를 위한 보호자는 검사가 필요했고 오빠와 남동생이 그 몫을 대신했다. 내 출국을 2주 앞두고 퇴원해 집으로 돌아오신 아버지는 많이 야위어 있었다. 병원 생활 3주 만에 체중이 18㎏이나 줄어 있으셨다. 부끄럽지만 마흔이 넘어 처음으로 아버지의 발을 씻어 드렸다. 종아리는 근육이 빠져 치맛자락처럼 찰랑거렸는데, 일을 많이 한 손바닥과 발바닥의 굳은살은 고목처럼 건조하고 단단했다. 울컥한 마음을 꾹 눌렀다. 떠나는 발걸음이 무거웠지만, 출국을 2주 앞두고 계획된 것들을 바꾸기엔 시간이 여의치 않았다. 남극 탐험을 위해 체중을 7㎏ 늘렸던 나도 4㎏이나 빠져 있었다. 혼란스러웠지만, 건강히 돌아오는 게 보답이었다. 무엇보다 퇴원하신 아버지께 감사했다. 썰매의 이름을 ‘백두대간’이라고 지었는데 글씨를 아버지에게 써달라고 했다. 그걸 썰매 뒤에 붙였다.

위성 전화로 들은 소식에 아버지는 퇴원 후 두 달 사이 10여kg을 회복했다고 했다. 그리고 2023년의 남극점 무지원 단독 도달 후 귀국하던 날, 건강을 찾은 아버지는 어머니와 함께 인천공항에 마중을 나오셨다. 그렇게 중환자실의 ‘화이트아웃’은 걷혔고, 아버지는 지금까지도 ‘맑음’을 지키고 계신다.

※아시아 최초로 남극 대륙을 단독으로 도보 횡단한 산악인 김영미의 ‘남극, 끝까지 한 걸음’을 격주로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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