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이의 북적북적] “웃음도 훈련할 수 있다”…‘역대급 영지 설계사’ 세 작가가 말하는 창작의 기술
![[사진= 김호이 기자]](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10/09/552805-UDxyZm4/20261009144937901tzmd.jpg)
[한국독서교육신문 김호이 기자]
웹툰을 만드는 일은 단순히 이야기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작업으로 끝나지 않는다. 한 문장의 아이디어가 원작자의 이야기로 시작해 각색가의 해석을 거치고, 작화가의 표현을 만나면서 새로운 작품으로 탄생한다. 여기에 독자가 웃고 공감하는 순간을 만들어내기 위한 끊임없는 고민과 훈련도 필요하다.
제23회 부천만화대상 대상에 선정된 웹툰 <역대급 영지 설계사>의 문백경·이현민·김현수 작가는 작품을 통해 이러한 창작의 과정을 보여줬다.
지난 9월19일 경기도 부천시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서 열린 제29회 부천국제만화축제 '작가와의 대담'에서는 <역대급 영지 설계사>를 만든 세 작가가 독자들과 만나 작품의 탄생부터 연재와 완결, 글로벌 진출, 시즌2, 그리고 창작자로 살아가는 방법까지 이야기를 나눴다.
<역대급 영지 설계사>는 판타지 소설 속 망나니 귀족 로이드 프론테라에게 빙의한 토목공학도 김수호가 현대의 토목 지식과 생활력을 활용해 몰락한 영지를 되살리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눈에 띄는 것은 주인공이 모든 문제를 힘으로 해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각색을 맡은 이현민 작가는 원작의 매력으로 '아이디어로 문제를 해결하는 이야기'를 꼽았다.
이 작가는 "힘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전형적인 액션보다 약한 인물이 아이디어를 짜내 문제를 해결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며 "<역대급 영지 설계사>에서는 힘으로 이기는 장면이 별로 없다. 대부분 아이디어를 발휘한다"고 설명했다.
이는 작품의 주인공 로이드를 설명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강한 상대를 만났을 때 더 강한 힘으로 맞서는 대신 자신이 가진 지식과 기지를 활용해 상황을 풀어간다.
이현민 작가는 "이런 콘셉트로 시작하는 작품들은 많은데 대부분 결국 무력을 쓰는 얘기가 더 중요해지게 된다"며 "이 책에서는 끝까지 잔머리 쓰는 로이드가 중심이고, 하비엘은 어디까지나 힘을 쓰는 부분에서 유닛으로 움직인다"고 말했다.
이처럼 작품의 핵심적인 재미는 '힘이 아닌 아이디어'에서 출발한다.
글이 그림을 만나면서 달라지는 것
웹툰으로 제작되는 과정에서는 원작의 이야기가 그대로 옮겨지는 것이 아니라 각색과 작화를 거치며 새로운 표현이 더해진다.
이현민 작가는 김현수 작가의 역할을 설명하며 '그림 작가의 연기력'을 강조했다.
콘티에 담긴 작은 디테일까지 그림으로 살려내는 과정에서 작화가가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역할을 넘어 캐릭터의 감정과 상황을 표현하는 연기자와 같은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현민 작가는 "그림 작가를 배우라고 생각한다"며 "주인공이 우울할 때 더 우울하게 보이게 하고, 주인공이 힘들 때 더 힘들어 보이게 만드는 연기력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 연기력이 있었기 때문에 재미없었던 콘티들도 다 잘 살아났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원작자 문백경 작가 역시 웹툰으로 재탄생한 작품에 대한 만족감을 드러냈다.
문 작가는 "자기가 글로만 엮어냈던 작품이 하나의 형태를 만들어 나가는 결과를 내는 게 굉장히 행복하고 감사한 일"이라고 말했다.
특히 웹툰에서 원작과 달라진 부분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다른 부분이 있는데 그 다른 부분이 언제나 원작보다 좋게 나왔다"며 "소설에서 이랬던 것이 이렇게 바뀌니까 아쉽다고 생각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고 밝혔다.
원작과 웹툰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확장하면서 오히려 작품의 세계가 넓어진 셈이다.
'재미'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
이날 대담에서 흥미로운 부분 중 하나는 '웃기는 능력'에 대한 이야기였다.
<역대급 영지 설계사>는 진지한 판타지 설정 속에 캐릭터의 표정과 상황을 활용한 코미디가 자연스럽게 녹아 있는 작품이다.
이현민 작가는 자신이 코미디 연출을 익히기 위해 주성치와 벤 스틸러의 작품을 반복해서 봤다고 밝혔다.
그는 "제가 쓰는 모든 개그 연출은 전부 다 주성치 영화에서 나오더라"며 "주성치나 벤 스틸러 작품들을 각각 20~30번씩은 봤다"고 말했다.
웃음의 타이밍 역시 반복해서 보고 익히는 과정이 필요했다.
이 작가는 "웃기고 싶을 때 그걸 갖다 쓰는 것"이라고 설명하며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을 반복해서 관찰하고 이를 창작에 활용하는 방식을 소개했다.
문백경 작가 역시 웃음에 대한 창작 능력을 '훈련'의 영역으로 바라봤다.
그는 "재능이 아니라 단련될 수 있다"고 말했고, 김현수 작가도 그림으로 사람을 웃기는 것은 "훈련하면 무조건 된다"고 강조했다.
결국 세 작가가 이야기한 창작의 핵심은 '재능'에만 머물지 않았다.
좋아하는 작품을 반복해서 보고, 자신의 작업 방식을 찾고, 부족한 부분을 계속 훈련하는 과정이 창작자의 실력을 만들어간다는 것이다.
5년 연재를 버티게 한 것은 '루틴'
주간 연재를 이어가는 창작자에게 꾸준함 역시 중요한 과제다.
<역대급 영지 설계사>는 웹툰으로 5년간 연재됐으며, 올해 3월 외전을 포함해 222화로 완결됐다.
김현수 작가는 주간 연재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체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무조건 그냥 하시면 된다"며 "주간 연재를 연습하고 싶으면 체력을 키우는 게 제일 좋다. 체력이 없으면 집중력이 떨어진다"고 조언했다.
이현민 작가는 루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몇 시에 일어나서 몇 시까지 일하고 몇 시에 논다는 것을 정확하게 지키려고 한다"는 것이 그의 작업 방식이다.
원작자 문백경 작가 역시 자신에게 맞는 작업 방식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원작 소설은 408화로 완결됐으며, 문 작가는 결말을 약 350화 무렵 확정했다고 밝혔다.
그가 작품을 쓰는 방식은 일주일 단위로 이야기를 쪼개는 것이었다.
문 작가는 "일주일에 5편을 쓰는 게 정형화돼 있기 때문에 저도 일주일 작업량을 5편으로 맞춘다"며 "스토리를 5편 분량 미리 짜고 그 5편을 쓰고, 그게 계속 반복"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금 쓰는 5편만 이 안에서 제일 재미있게 쓰고, 그다음 다섯 편은 그때 내가 알아서 해주는 방식"이라고 덧붙였다.
자신에게 맞는 작업 단위를 정하고 이를 반복하는 방식이다.
문 작가는 특히 다른 사람의 방법을 그대로 따라가기보다 자신의 특성을 파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기가 뭘 잘하고 뭘 못하고, 어느 시간대에 작업이 잘되고 자신의 특성이 어떤지를 잘 파악해서 자기한테 맞는 루틴을 계속 수정해서 업데이트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어 "그걸 지키면서 살아남아 있으면 기회는 언젠가는 온다"고 말했다.
한국적인 소재가 세계 독자에게도 통하는 이유
<역대급 영지 설계사>의 이야기는 국내를 넘어 해외 독자들과도 만나고 있다.
작품은 일본과 중화권, 태국, 유럽, 인도네시아 등 여러 지역에 소개됐다.
글로벌 진출 과정에서 세 작가가 주목한 부분은 의외로 작품 속 한국적인 소재였다.
문백경 작가는 온돌과 찜질방 등 작품에 등장하는 소재에 대해 "사실 해외를 전혀 생각하고 썼던 소재들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한국 독자에게는 익숙한 소재가 해외 독자들에게는 새로운 문화적 요소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이현민 작가는 국가와 문화권에 따라 작품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 독자들에게는 너무 익숙한 깨끗한 물이나 도로 같은 인프라가 다른 나라에서는 특별하게 느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그냥 웃기는 에피소드로 넘어간 부분들에 그쪽 나라 분들은 굉장히 큰 감동을 받으시더라"는 설명이다.
이는 콘텐츠의 세계화가 반드시 보편적인 이야기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창작자가 자신의 문화와 경험을 자연스럽게 작품에 담았을 때, 오히려 그것이 다른 문화권의 독자에게 새로운 재미와 의미로 전달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완결 이후에도 계속되는 이야기
웹툰 <역대급 영지 설계사>는 올해 3월 외전을 포함해 222화로 완결됐지만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원작 소설은 지난 5월 말 네이버 시리즈에서 시즌2 연재를 시작했다.
문백경 작가는 시즌1 이후의 이야기를 이어가면서 새로운 세계와 사건을 다루게 된다고 밝혔다.
이현민 작가는 시즌2를 미리 읽고 있다며 "너무 웃으면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시즌2를 웹툰으로 옮기는 과정에서는 새로운 고민도 필요하다.
시즌1에서 로이드의 성장과 하비엘과의 관계 변화가 충분히 그려진 만큼, 같은 인물과 세계관을 활용하면서도 새로운 재미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 작품이 하나의 형태로 완성된 뒤에도 창작자의 고민은 계속되는 셈이다.
이번 대담에서 세 작가는 한 작품의 성공을 단순히 '좋은 아이디어' 하나로 설명하지 않았다.
원작자가 이야기를 만들고, 각색가가 웹툰이라는 매체에 맞게 다시 구성하고, 작화가가 캐릭터의 표정과 감정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여기에 창작자가 자신의 루틴을 만들고 체력과 기술을 관리하며 작품을 이어가는 과정이 더해진다.
그리고 웃음을 만들어내는 연출 역시 반복해서 작품을 보고 연구하는 훈련에서 나온다.
제23회 부천만화대상 대상이라는 결과 뒤에는 이처럼 서로 다른 역할을 맡은 세 창작자의 작업과 신뢰가 있었다.
<역대급 영지 설계사>의 이야기가 독자에게 보여준 것은 단순히 한 망나니 귀족의 영지 재건기가 아니다.
아이디어로 문제를 해결하고, 익숙한 것을 새로운 방식으로 바라보고,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 꾸준히 이어가는 과정 역시 창작의 일부라는 사실이다.
19일 부천국제만화축제에서 만난 세 작가의 이야기는 작품을 즐기는 독자들에게 '재미있는 만화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넘어, 하나의 결과를 만들어내기까지 필요한 반복과 훈련, 그리고 서로의 작업을 존중하는 태도를 보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