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을 수가 없네요”…번화가 점령한 외국어 간판, 한글은 ‘실종’ [현장, 그곳&]

오종민 기자 2026. 10. 9.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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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 읽어야 하는 거죠? 한글이 하나도 없으니 무슨 가게인지 모르겠네요."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는 "외국어 간판은 고령층 등 외국어에 익숙하지 않은 시민들의 정보 접근을 어렵게 할 수 있다"며 "한글 병기를 원칙으로 규정한 만큼 현장에서 지켜질 수 있도록 지자체의 지속적인 계도와 한글 간판 지원 등 실효성을 높일 방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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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법상 한글 병기가 원칙이나 '한글 병기' 규정 무시한 외국어 간판 난립
과태료 등 강제 제재 조항 없어지자체 계도 수준 그쳐
긴급 화재 발생 시 출동 장소 식별 지연 우려...실효성 있는 대책 시급
한글날 제정 100주년이자 제580돌 한글날을 이틀 앞둔 9일 오전 경기도 내 곳곳의 간판은 ‘한글 병기’ 규정마저 무시한 채 각종 외국어가 점령하고 있다. 윤원규기자


“뭐라고 읽어야 하는 거죠? 한글이 하나도 없으니 무슨 가게인지 모르겠네요.”

8일 오전 11시께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수내동의 카페거리. 한 베트남 음식점 간판에는 ‘HI○○TU’라는 상호와 함께 베트남어가 빼곡했지만 한글은 찾아볼 수 없었다. 몇 걸음 옮기자 ‘Old ○○’, ‘Route ○○’ 등 영문 간판을 내건 음식점과 카페가 잇따랐고, 출입문과 햇빛 가림막까지 영어 문구가 채운 모습이었다.

같은 날 오후 2시께 수원특례시 팔달구 인계동·매교동 먹자골목도 상황은 비슷했다. ‘○○ BISTRO’, ‘LA ○○’ 등 양식당과 카페의 영문 간판이 줄지어 있는가 하면, 골목 안쪽에는 ‘老○○’, ‘○○串店’ 등 중국어만이 채워진 음식점도 눈에 띄었다.

한글날이 9일 100주년을 맞이하지만 경기 지역 번화가 곳곳의 간판은 ‘한글 병기’ 규정마저 무시한 채 각종 외국어가 점령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소비자 혼란은 물론 화재 등 위급상황 발생 시 소방 당국의 출동을 지체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는데, 실효성 있는 개선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7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현행 옥외광고물법은 광고물의 표기 문자를 한글 맞춤법 등에 맞춰 한글로 표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외국 문자로 표시할 경우에도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한글과 병기해야 한다. 특별한 사유에는 상표법에 따라 특허청에 등록된 상표를 등록된 형태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 등이다.

문제는 강제 규정은 아닌 탓에 한글 병기 원칙을 지키지 않더라도 과태료나 행정 처분 등 제재는 없고, 이 영향으로 시·군 관리 역시 계도, 권고 수준에 그치고 있다는 점이다.

외국어 간판의 한글 병기를 지원하는 지자체가 드물다는 점도 문제다. 경기일보 취재 결과 도내 31개 시·군 중 외국어 간판의 한글 교체·병기 시 예산 지원을 하는 지역은 수원시가 유일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 같은 외국어 간판 난립은 화재, 사고 등 긴급 상황에서 출동 장소 식별을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도내 한 소방서 관계자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대원이 외국어 간판 탓에 현장에서 업소를 바로 찾지 못하는 사례가 발생 중”이라며 “한글이 병기돼 있다면 현장에 신속히 접근, 대처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는 “외국어 간판은 고령층 등 외국어에 익숙하지 않은 시민들의 정보 접근을 어렵게 할 수 있다”며 “한글 병기를 원칙으로 규정한 만큼 현장에서 지켜질 수 있도록 지자체의 지속적인 계도와 한글 간판 지원 등 실효성을 높일 방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행안부 관계자는 “한글 사용이나 병기를 강제할 경우 사업자의 직업수행 자유를 제한할 우려가 있다”면서도 “지자체와 협력해 한글 병기를 유도해 나가겠다”고 설명했다.

오종민 기자 fivebell@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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