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이치와 대화를” 트럼프 권유 거절한 시진핑···중·일 APEC 정상회담 어려운 이유[뉴스 깊이보기]
일, 센카쿠 경험으로 ‘APEC’ 기대하지만
2014년, 2018년 정상회담 상황과 달라

지난해 11월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대만 유사시 자위대 개입’ 시사 발언 이후 많은 일본 언론과 전문가들이 올해 선전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전까지 중국 정부의 대일 강경책이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APEC 정상회의가 한 달 앞으로 다가왔지만 중국의 대일 강경책은 누그러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중국 입장에서 대만 문제는 과거 센카쿠 열도 영유권 분쟁보다 훨씬 민감한 사안이며, 미·중관계가 안정된 국면에서 물러설 이유가 없다고 평가된다.
APEC 기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다카이치 총리 간의 정상회담도 성사되기 어려울 전망이다.
시진핑, 대일 강경 자세 재확인
8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지난달 워싱턴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시 주석에게 다카이치 총리와 대화하라고 촉구했다. 대일본 희토류 수출 통제는 일본 기업 공급망에 의존하는 미국 산업계에도 위협적인 일이라고도 언급했다.
시 주석은 이에 일본 군국주의의 위험성을 거론하면서 “중·일관계와 중·미관계는 분리해야 하고 서로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답했다. 일본에 물러서지 않겠다는 시 주석의 의지가 확고한 것이다.
다카이치 총리의 ‘대만 발언’으로 인한 중·일 갈등은 2012년 센카쿠 영유권 갈등의 연장선상에 있다. 중·일 양측이 동중국해 일대에서 군사적 충돌 가능성을 우려한 것이 센카쿠 문제의 발단이었으며, 일본 정부가 센카쿠 열도 국유화를 추진하면서 사안은 주권 문제로 비화했다.
센카쿠 분쟁 이후 아베 신조 당시 일본 총리와 시 주석 간의 첫 정상회담이 성사되는 데 2년 6개월이 걸렸다. 당시에도 계기는 중국 베이징에서 열렸던 APEC 정상회의였다.
2014년 11월 베이징에서 열린 중·일 정상회담은 갈등 해소로 이어지지 않았다. 중국 측은 정식 회담이 아닌 ‘회견’이었다며 회담의 의미를 평가절하했다. 시 주석과 아베 총리는 ‘각자 하고 싶은 말’만 하며 어색한 중·일관계를 재확인했다.
압박 카드 없는데 유연성 떨어진 일 정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상회담이 열린 것은 일본이 적극적으로 나섰기 때문이었다. 당시까지 ‘위안부’ 문제로 인한 갈등으로 한·일 정상회담이 열리지 않는 등 일본은 한국과도 사이가 나빴다. 집권 여당인 자민당은 2014년 4월 소비세 인상을 단행하면서 악화한 여론에도 대응해야 했다.
2014년 11월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양제츠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과 야치 쇼타로 일본 국가안전보장국 국장이 ‘4대 합의사항’을 극적으로 타결하면서 중·일 정상회담도 성사됐다. 4대 합의사항에는 일본이 “센카쿠 열도에 양국 간 이견이 있음”을 인정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는 일본 정부가 ‘센카쿠 분쟁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기존 입장을 수정한 것이기 때문에, 일본의 양보로 평가된다.
현재는 당시와 조건이 달라졌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 5일 일본 국회 개회식 연설에서 “중국은 중요한 관계”라고 언급했지만, 중국의 일본 주변 해역에서의 군사 활동, 재중 일본인 안전, 수출 통제와 한일령 등 강압적 조치를 언급하며 ‘할 말은 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8일 다카이치 총리의 강경한 대중국 입장은 지난 2월 총선에서 자민당의 승리에 기여했고, 이 때문에 중국과 타협하는 것이 더욱 어려워졌다고 분석했다.
대일 협상력 된 안정된 미·중관계
센카쿠 영유권 분쟁으로 촉발된 양국 갈등이 일단락된 것은 2018년 10월 베이징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다. 아베 총리는 취임 후 처음으로 중국을 방문해 시 주석과 회담하며, 관계 회복을 선언했다.
중·일관계 복원의 결정적 계기는 미·중관계 악화였다. 2018년 11월 파푸아뉴기니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에서는 미·중 간 마찰로 공동성명 채택이 처음으로 무산됐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과 갈등을 지속하는 것은 중국에도 큰 부담이었다.
일본의 미국 주도 대중국 견제 참여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일본명 처리수) 방류로 인해 양국 관계는 다시 냉랭해졌다. 양국은 2025년 10월 경주 APEC을 계기로 정상회담을 하며 관계 개선을 타진했다. 다카이치 총리의 대만 발언은 이 직후 나온 것이라 중국 측이 더욱 분노했다고 전해진다.
미·중관계는 1년 전과 비교해 안정돼 있다. 올해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 간에 두 번의 정상회담이 예정돼 있다. 마땅한 대중국 압박 카드가 없는 일본은 미국에 매달리고 있지만 시 주석은 지난 5월 트럼프 대통령 면전에서 ‘투키디데스 함정’을 언급하는 등 중국의 발언력이 커졌다.
중, 명확한 총리 발언 시정 요구
APEC 정상회의 기간 고위급 회담이 성사되더라도 중국의 강경한 입장을 재확인하는 무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SCMP는 일본이 다카이치 총리와 시 주석의 정상회담을 제의했으나 중국 측은 이를 거절하고, 리창 국무원 총리와의 회담을 제안했다고 소식통을 인용해 전했다.
중국은 관계 회복 조건으로 다카이치 총리의 명확한 발언 시정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달 일본의 민간 중·일 경제교류 기구 대표단을 이끌고 방중한 이와야 다케시 전 외무상은 왕이 중국 공산당 외사판공실 주임 겸 외교부장을 만나 우회적으로 다카이치 총리 발언을 철회하는 방안을 제안했으나 거절당했다고 7일 지지통신 인터뷰에서 전했다.
이와야 전 외무상은 직접적인 발언 철회는 “정치적 부담이 크다”며 1972년 중·일 공동성명의 취지를 양국 정부가 확인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중·일 공동성명에는 “일본은 ‘하나의 중국’ 입장을 이해하고 존중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왕 부장은 “모호한 방식은 좋지 않다. 중국에는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은 문제를 일으킨 당사자여야 한다’는 말이 있다고 답하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왕 부장은 이와야 전 외무상과의 회동에서 내년이 중·일수교 55주년임을 언급하며 관계 개선의 여지를 열어 놓았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더 강경해진 중국의 요구’와 ‘더 좁아진 정치적 운신의 폭’ 사이에 놓였다.
베이징 | 박은하 특파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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