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기의 시대에 바치는 애가… 츠바이크가 기록한 '잃어버린 세계'
예술적·문화적 노력의 가치를 증명하는 자서전
슈테판 츠바이크 <어제의 세계>
이파네마의 소녀가 보사노바 리듬을 타고 살랑거리는 해변의 도시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북서쪽으로 70km가량 움직이면 페트로폴리스라는 매우 이색적인 도시를 만난다. 브라질이나 남미 곳곳이 세계 각지에서 이민자들이 한창 몰려들던 땅이니 어떤 식으로 이름이 붙든 말이 안 되는 건 아니겠지만 ‘페트로’에 ‘폴리스’라니, 무슨 사연이 있을까 싶어진다. ‘페트로’는 페드루 2세의 이름에서 따왔다. 포르투갈 왕실 출신으로 브라질 제국 초대 황제였던 페드루 1세의 아들이면서 아버지가 분쟁에 휘말려 ‘본국’ 포르투갈로 돌아간 후 만 5세 때 왕위를 물려받았다.

1888년 노예제를 폐지하자 농장주들의 엄청난 반발을 샀고 이듬해 쿠데타가 일어나 군주제가 폐지됐다. 그런 페드루 2세가 1843년 독일 바이에른 출신 이민자들을 위해 정착촌으로 마련한 곳이 이곳이었고, 살기에 최적의 고도(해발 800~900m대가 보통 그렇다고 한다)와 기후 조건이 마음에 들었던 그가 여름 궁전을 짓고 머물러 ‘독일식 이름’을 지닌 ‘황제의 도시’가 되었다. 브라질 군사정부 시절 악명높은 고문장이었기에 근래 잇따라 개봉했던, 그 시절을 다룬 영화 <아임 스틸 히어>나 <시크릿 에이전트> 등에는 페트로폴리스라는 지명이 속속 등장하기도 한다.
페트로폴리스에는 지나칠 수 없는 유명인 두 사람의 하우스 박물관이 있는데, 하나는 비행술의 선구자로 라이트형제와 이름을 나란히 하는 알베르토 산토스 뒤몽이고 다른 하나는 슈테판 츠바이크(1881~1942)다. 20세기 전반 유럽에서 가장 널리 읽힌 작가라는, 오스트리아 출신 슈테판 츠바이크는 브라질까지 밀려와 이 집에서 1942년 자신의 비서였던 두 번째 아내와 동반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발견된 둘의 시신은 손을 잡고 침대에 누운 채였다.

닿을 수 없는 과거, 잃어버린 세계에 대한 애가
『어제의 세계』는 슈테판 츠바이크가 세기말 오스트리아 빈의 ‘아름다운 시절’부터 제1차 세계대전, 대공황, 나치의 부상, 2차 세계대전, 영국과 미국을 거쳐 브라질로 망명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목격한 유럽의 몰락을 기록한 회고록이다. 1942년 그가 자살하기 하루 전에 완성된 이 책은 비평가들의 찬사와 적대적인 비판을 동시에 받았다. 비평가 중에는 그의 휴머니즘적 시각, 재치, 단순함, 효과적인 문체를 칭찬하는 쪽이 있는가 하면, 가볍고 인상주의적이며 피상적인 기술 일색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그들 중 그 누구도 츠바이크가 뛰어난 통찰력으로 한 사람으로부터 시대를 보며 시대로부터 돋을새김 된 인물의 심리를 기막히게 기술해나가는 능력을 지녔다는 데는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것이다. 마치 러시아의 안톤 체홉과 같이 말이다. 이는 물론 『초조한 마음』(1939) 같은 장편이나 『불타는 비밀』(1911) 「낯선 여인의 편지」(1922) 『감정의 혼란』(1926) 『체스 이야기』(1941) 등의 중⸱단편소설들을 통해서도 뛰어난 필치로 그려지지만(그는 성장통, 광기와 열정, 죄책감과 집착, 인간의 파괴적 충동, 동성애 등 다양한 테마를 다뤘다. 인간이 진정 살펴야 할 것은 한 시대의 도덕적 관습이라기보다는 무의식적 열정과 내면을 휘어잡는 자유임을 내보인 그의 작품들은 숱하게 영화화되었고 웨스 앤더슨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2014)에 슈테판 츠바이크가 큰 영감을 주었다고 밝힌 바 있다), 그가 실은 대체 불가한 전기 작가였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해준다. 그는 조제프 푸셰, 마리 앙투아네트, 메리 스튜어트, 마젤란 같은 역사적 인물의 전기와 『세 거장』(에밀 졸라, 발자크, 도스토옙스키) 『악마와의 투쟁』(횔덜린, 클라이스트, 니체)등의 테마 평전을 써 내려갔고 『광기와 우연의 역사』를 통해 세계의 운명을 바꾼 결정적 장면들을 역사 에세이로 펼쳐 보였다.

나치에 의해 작품들이 금서 조치에 처해지고 망명지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하면서 오랫동안 잊힌 작가였던 츠바이크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한국에서도 최근 『어제의 세계』의 개정판을 선보였다. 이것은 어떤 징후에 대해 인류가 스스로에게 보내는 경고 차원의 일로도 보인다. 『어제의 세계』에서 우리는 츠바이크의 성장 과정을 통해 히틀러의 국가사회주의가 어떻게 부상하게 되었는가를 살피게 된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세계대전의 발발을 다양한 이유로 축하하는 기괴함을 보였는지, 어린 학생들과 젊은이들에게 군사적 무력 충돌을 야만적이고 무의미한 파괴 행위가 아니라 필요한 일이며 (철저하게 배타적인) 고귀한 가치를 수호하는 일이라고 선동했는지, 유럽이 걸어온 길을 보면 오늘날 우후죽순 들려오는 세계 곳곳의 전쟁 소식, 국경 봉쇄와 반이민 정책으로 인한 소요 등이 어렵지 않게 겹쳐 보인다. 문화와 교육은 왜 정치적 광기를 막지 못했으며 문명은 왜 이토록 쉽게 후퇴하는가. 전쟁과 난민과 군비 경쟁이 국제사회의 일상어가 된 지금 우리에게 다시 던져지는 질문이다.

인간의 욕망과 무의식을 인생의 정수로 다룬 작가
합스부르크 제국 말기 오스트리아 빈의 부유한 유대계 가정에서 태어난 츠바이크에게 미래는 장밋빛이었다. 어머니는 거대 은행가 가문의 딸이었고 아버지는 부유한 섬유 제조업자였다. 김나지움 시절부터 시를 썼고 19세가 되던 해에 이미 존경받는 작가였다. 빈과 베를린을 오가며 대학을 다녔고 23세에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합리와 진보의 법칙은 근대 유럽을 견고하게 축조하고 있었고 어제보다 나은 내일을 보장할 것이었다. 10대에 이미 여러 언어에 능통했던 츠바이크는 작품에서뿐 아니라 삶에서도 국경을 넘나든 ‘유럽인’이었다. 당대의 거물들과 교류한 츠바이크의 경험은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지성사라는 거대한 그림을 보여주기에 세계의 평화가 붕괴하는 현장에서 당시 사람들이 무엇을 보고 믿었으며 어떤 선택을 했던가를 우리는 생생하게 알게 된다. 유대인으로서 그의 삶은 점점 불안정해졌고, 그는 대부분의 유대인 친구, 가족보다 훨씬 먼저인 1934년에 오스트리아를 떠나 영국으로 갔고, 1940년에 잠시 뉴욕에 머물렀으며, 같은 해 브라질로 가서 2년 후 자살할 때까지 머물렀다.
유대인 츠바이크는 유대교 신앙에 매여 살지는 않았지만 ‘유대인 됨’에 대해서는 꾸준히 글을 썼다. 제1차 세계대전 때는 전쟁기록보관소에서 근무하며 전쟁 선전을 홍보하고 적군의 학살을 기념하기도 했다는데, 이 회고록에서는 자신이 광기에의 참여를 외로이 거부했다고 밝히고 있어 논란이 되기도 한다. 츠바이크는 이른바 ‘개인사’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는 대신 시선을 바깥으로 집중한다. 주변 세계, 문화적 환경, 서서히 변하는 역사의 흐름을 바라본다. 적어도 1934년, 히틀러가 독일에서 권력을 잡고 오스트리아에도 파시스트 체제가 수립된 후 영국으로 떠나면서, 츠바이크는 영원히 고향을 잃게 되었고 그제야 젊은 날 자신이 외쳤던 세계 시민으로서의 자유라는 것이 극도의 불안 상태에 다름 아님을 인정한다.

그가 맺은 인간관계의 폭이 어찌나 방대한지 그 시대에 이름난 사람 중 대체 이 츠바이크라는 인물을 거치지 않은 사람이 있기는 할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섬세하고 지적인 인물이었던 츠바이크는 매우 박식했고, 거의 모든 사람—적어도 유명한 유럽인들을 모두 알고 있었기에—자신의 시대사를 쓸 수 있는 독특한 위치에 있었다. 그의 사회적 인맥을 조금 알리자면, 그는 프로이트와 살바도르 달리를 알고 있었고, 로댕, 제임스 조이스, 토마스 만, H.G. 웰스, 버나드 쇼도 만났고,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라이너 마리 릴케, 로맹 롤랑, 막심 고리키와도 친구였다.
세계 시민의 몰락
츠바이크는 중요한 변화의 어떤 목격자도 그 시작을 알아볼 수는 없다고 말한다. 그는 1920년대 오스트리아에서 조직되고 선동을 시작한 나치의 다가오는 위험을 인식하지 못했다. 츠바이크는 헌신적인 평화주의자였으나 정치를 싫어했고 정치적 참여를 피했다. 그러나 그는 히틀러의 산악 저택인 베르히테스가덴에 있던 베르크호프가 잘츠부르크 외곽 자신의 집 바로 맞은편에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20세기 전반 유럽에 팽배했던 정치적 낙관주의와 문화적 우월주의를 뼈아프게 통찰한다.
나치의 위협으로 잘츠부르크를 떠나 런던으로, 뉴욕으로, 다시 리우데자네이루로 멀리 더 멀리 달아나던 츠바이크는 앞서 기술한 페트로폴리스에 최후의 여장을 풀고 이 책을 남긴다. 브라질에서조차 『브라질, 미래의 땅』이라는 책을 쓰고, 칠레 시인 가브리엘라 미스트랄과 가까운 우정을 쌓았을 정도로 문명의 생명수를 찾는 여정을 멈추지 않았던 그는 유럽의 상황과 인류의 미래에 대해 절망하다가 이 회고록의 탈고와 더불어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다. “수년간 방랑하며 노숙자로 지낸 끝에 내 힘은 이미 소진되었다. 따라서 나는 지적 노동이 가장 순수한 행복과 개인의 자유, 가장 높은 선이었던 사람으로서, 삶을 적절한 시기에, 그리고 올바르게 마무리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츠바이크 자신과 그 시대가 돌이킬 수 없이 잃어버린 것은 무엇일까? “우리 주변의 공기는 죽고 텅 빈 공허가 아니라, 그 안에 시간의 리듬과 진동이 담겨 있다.”라고 그는 썼다. 그는 과거, 현재, 미래가 불가분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깨달았으며, 내일은 (정확히 예측하기 어렵더라도) 오늘이 어제의 산물이었던 것처럼 오늘의 산물임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오늘의 공기 속에서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것은 무엇이며, 자라나 내일 들불로 번질 불씨는 무엇일까?
서정 에세이스트·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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