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가난보다 무서운 받아쓰기"…문해학교서 되새기는 한글의 가치

천경환 2026. 10. 8.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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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 100주년을 하루 앞두고 8일 방문한 충북 충주시의 초등학력 인정 문해교육 기관 '늘푸른학교'.

그중 한 교사가 가장 인상 깊은 글이라며 펼쳐 보인 시에는 "옛날에는 가난이 제일 무서웠다. 하지만 학교에 다닌 후부터는 받아쓰기가 제일 무섭다"는 구절이 적혀 있었다.

늘푸른학교 한글 기초교육 과정은 3단계로 나뉘어 있으며 3년에 걸쳐 모두 이수하면 초등학교 졸업장을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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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의 아픔 잊게 만든 배움 열기, "글 더 배워 아들에게 편지 쓰고 싶어"
한글 교실서 글씨 쓰는 어르신들 촬영 천경환 기자

(충주=연합뉴스) 천경환 기자 = 한글날 100주년을 하루 앞두고 8일 방문한 충북 충주시의 초등학력 인정 문해교육 기관 '늘푸른학교'.

한쪽 벽면에 자리한 책장에는 학습자들이 직접 쓴 시와 일기 등을 엮은 문집이 빼곡히 꽂혀 있었다.

그중 한 교사가 가장 인상 깊은 글이라며 펼쳐 보인 시에는 "옛날에는 가난이 제일 무서웠다. 하지만 학교에 다닌 후부터는 받아쓰기가 제일 무섭다"는 구절이 적혀 있었다.

배움의 고단함을 털어놓는 듯하지만, 평생 한이었던 가난의 서러움을 잊을 만큼 글을 배우는 삶이 더 크고 소중하다는 어르신의 열정이 묻어나는 듯했다.

교실 안으로 들어서자 나이 지긋한 어르신 13명이 자리에 앉아 한글 기초반 수업을 듣고 있었다.

이날 수업 주제는 쌍자음. 교사가 칠판에 쌍자음이 포함된 단어를 하나씩 적자 어르신들은 또박또박 소리 내 읽으며 공책에 옮겨 적었다.

끝말잇기 놀이로 단어를 익히는 시간이 되자 어르신들은 여기저기서 손을 들며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했다.

이 학교 교사 윤모(66)씨는 "한글을 배우고 싶어 스스로 학교를 찾은 분들이라 다들 눈빛부터 초롱초롱하고 집중력과 열정이 대단하다"며 "수업 후 어르신들의 표정에서 활력을 느낄 수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늘푸른학교 한글 기초교육 과정은 3단계로 나뉘어 있으며 3년에 걸쳐 모두 이수하면 초등학교 졸업장을 받게 된다.

문해학교 한글 교실 촬영 천경환 기자

현재 초등반 학습자는 40여명으로 대부분 여성이다.

가난으로 학업을 이어가지 못한 데다 '여자는 살림해야 한다'는 시대적 편견까지 겹치면서 학교 문턱을 넘지 못한 이들이 대부분이다.

윤부석(81) 어르신은 "애 키우고 살림하느라 배울 기회를 놓쳐서 주변 사람에게 물어가며 겨우 이름 석 자만 깨쳤다"며 "동사무소에 가서 서류 하나 작성하지 못해 남의 손을 빌려야 했던 게 불편하고 서러워서 학교에 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직 완벽하게 쓸 수는 없지만 글을 빨리 깨쳐서 중학교 공부도 하고 싶다"며 "한글은 아직 답답한 존재이면서 조금씩 알아가는 친구 같다"고 덧붙였다.

박명숙(75) 어르신은 "병원에서 청소 일을 할 때 글씨를 쓸 줄 몰라 비닐봉지에 든 폐기 처리 의류가 몇 개인지조차 적지 못했다"며 "나이 먹도록 글도 못 배웠냐며 무시당한 게 서러워 퇴직하자마자 문해 학교를 찾아왔다"고 말했다.

이어 "한글은 내게 세상을 보는 눈을 뜨게 해주었다"며 "최근 며느리에게 생일 축하 문자를 보냈는데 앞으로 글을 더 배워서 아들에게도 편지를 쓰고 싶다"고 전했다.

문해학교 한글 교실 촬영 천경환 기자

글씨는 읽을 줄 알지만 문장을 구사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 학교를 찾은 학생도 있었다.

정모(57)씨는 "문장을 만들 줄 모르고 아는 단어가 별로 없어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보이스피싱을 비롯해 각종 사기 피해를 겪었다"며 "일반 사람들은 숨 쉬는 공기처럼 한글을 능숙하게 사용하지만 저에게 한글은 평생의 한을 푸는 희망"이라고 털어놨다.

교사들은 학습자들의 변화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큰 보람을 느낀다.

교사 박모(53)씨는 "글을 안다는 것이 시야를 트이게 하고 세상을 열어준다는 걸 매번 절감한다"며 "어르신들이 과거 억눌렸던 삶과 정반대의 삶의 기쁨을 누리시는 걸 보면 한글날의 의미가 각별하게 와닿는다"고 말했다.

국가문해교육센터에 따르면 전국의 학력 인정기관은 총 259곳이다.

지역별로는 경기도가 50곳으로 가장 많고 서울(47곳), 전남(23곳), 충남(21곳) 등 순이다.

한글 교실서 글씨 쓰는 어르신들 촬영 천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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