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영화 어때] 모든 시간 모든 곳의 양자경

백수진 기자 2026. 10. 8.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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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배우 양자경이 7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비프힐에서 열린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 기자회견에 참석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뉴스1

안녕하세요. 조선일보 백수진 기자입니다. ‘그 영화 어때’ 235번째 레터는 부산에서 보내드립니다. 6일부터 15일까지 열리는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BIFF)에는 올해도 세계적인 스타들이 참석했는데요.

그중 제가 가장 만나보고 싶었던 배우는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을 받은 배우 양자경이었습니다. 신작 ‘우리 할머니는 큐브왕’과 함께 15년 만에 부산을 찾았는데요. 1980년대 홍콩 액션 스타로 출발해 아시아 여성 최초의 오스카 여우주연상 수상자가 되기까지, 40여 년간 ‘롱런’할 수 있었던 비결을 들어봤습니다.

영화 '우리 할머니는 큐브왕' /BIFF

‘우리 할머니는 큐브왕’에서 양자경은 괴팍한 70대 할머니 자오를 연기합니다. 투자 사기를 당하고 뇌졸중까지 겪은 자오는 양로원에서 무료한 하루하루를 보내는데요. 어느 날 치매 예방을 위해 열린 큐브 수업을 듣다가 뜻밖의 재능을 발견합니다. 자오는 한때 큐브 챔피언이었으나 지금은 빚쟁이에게 쫓기며 사는 청년 우유웨이를 스승으로 만나고, 큐브 챔피언이라는 새로운 꿈을 품게 됩니다. 놀랍게도 손녀에게 큐브를 배우기 시작해 신기록을 쓴 60대 은퇴 교사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3x3x3 큐브를 이루는 조각은 26개. 이 조각들을 움직여 만들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무려 4325경 가지에 달합니다. 영화는 그 무수한 가능성을 우리 인생에 빗댑니다. 엉망으로 뒤섞여 있어 도무지 풀 수 없을 것 같은 난제도, 결국 해법은 우리 손안에 있다고 말하죠.

영화 '우리 할머니는 큐브왕' 스틸컷 /BIFF

영어 제목은 ‘잇츠 마이 타임(It’s my time)’. 나이에 굴하지 않고, 용기 있게 도전하는 자오의 모습은 양자경의 실제 모습과도 닮았습니다. 7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그녀는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영화를 통해 절대 포기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나이가 몇 살이든 새로운 기회는 언제든 찾아올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에게 찾아오는 기회에 마음을 열어둬야죠. 처음부터 ‘안 돼’라고 말하면 문은 닫혀버립니다. 문제를 풀어보려는 시도가 중요하죠.”

환갑 무렵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를 만나 인생의 새로운 장을 연 배우가 하는 말이기에 더 와닿는 답변이었습니다. 그의 필모그래피에는 국경과 성별, 나이의 장벽을 넘어온 도전의 역사가 담겨 있습니다. 액션부터 휴먼 드라마, 코미디, 판타지까지 장르도 다채롭죠. 부산국제영화제가 마련한 특별전의 ‘모든 시간 모든 곳의 양자경’이라는 제목이 참 잘 어울립니다.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워터홀컴퍼니

1980년대 홍콩 액션 스타로 출발한 양자경은 ‘007 네버 다이’(1997)의 본드걸로 할리우드에 본격 진출했습니다. 악당에 붙잡혔다가 본드에게 구출되는 수동적인 본드걸이 아닌, 중국 첩보요원으로 등장해 본드와 대등하게 액션을 펼치며 본드걸의 영역을 넓혔죠. 이후 ‘와호장룡’(2000)을 통해 액션뿐 아니라 섬세한 연기력까지 인정받으며 세계 관객들을 사로잡았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한동안 역할의 폭이 좁아지는 듯했으나 환갑을 앞두고 만난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2022)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거머쥐며 할리우드의 유리 천장에 또 한 번 시원하게 발차기를 날렸습니다. “여성 여러분, 누구도 당신의 전성기가 지났다고 말하게 두지 마세요”라는 수상 소감도 큰 화제가 됐죠.

배우 양자경이 6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식에 참석해 레드카펫을 밟고 있다. /뉴스1

끊임없는 도전의 원동력을 묻는 질문에 그녀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저한테 가장 중요한 것은 제가 더 배울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입니다. 저는 늘 호기심이 많고, 새로운 경험을 원하거든요. 매일 아침 일어나 새로운 도전을 꿈꾸는 것, 그것이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호기심은 작품을 고를 때도 드러납니다. ‘우리 할머니는 큐브왕’과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공통점이 있다면, 신인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라는 점입니다. 양자경은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는 처음 대본을 읽었을 때 ‘이 사람들, 조금 미친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죠. 그렇기에 더 특별했던 것이고요. 저는 신인 감독과 함께 작업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들에게는 남다른 시선과 신선한 감각이 있습니다. 저를 바라보는 관점도 기성 감독들과 다르죠. 제가 스스로 보지 못했던 모습을 그들이 끌어내주는 것이 좋습니다.”

인생은 양자경처럼. 새로운 도전을 가로막는 벽이 있다면, 시원하게 발차기를 날려버립시다. 우리에게도 아직 오지 않은 전성기가 있으리라 기대하며, 호쾌한 양자경의 발차기 모음을 함께 보내드립니다. 이번 레터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영화는 세상의 창이고 호수이며 거울. 여러분을 그 곁으로 데려다 드립니다.
그 영화 어때 더 보기(https://www.chosun.com/tag/cinema-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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