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눈으로 보는 것? 빛을 잃고서야 편견이란 걸 깨달았다"

나민서 2026. 10. 8.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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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글동글해. 재밌어."

3일 서울 중구 서울스퀘어 별관 '모두미술공간'을 찾은 두 살배기 정미엘양이 고사리손을 뻗어 그림을 만지더니 생긋 웃었다.

모두미술공간은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이 운영하는 장애예술 전문 전시관이다.

시각장애인의 자립과 권리를 위한 '흰 지팡이의 날'(10월 15일)을 앞두고 전시를 기획한 시각장애 예술 에이전시 에이블라인드 양드림 대표는 "작가들에게 붓과 흙은 스스로 길을 찾아가는 흰 지팡이 같은 도구"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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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 예술가 6인 '안부' 전시
"만지지 마세요" 대신 "만져보세요"
붓과 흙으로 자신의 길 찾는 작가들
3일 서울 중구 서울스퀘어 별관 모두미술공간을 찾은 권문희(왼쪽)씨와 딸 정미엘양이 정은교 작가의 '불친절한 의자2'를 손으로 만지며 감상하고 있다. 나민서 기자

"동글동글해. 재밌어."

3일 서울 중구 서울스퀘어 별관 '모두미술공간'을 찾은 두 살배기 정미엘양이 고사리손을 뻗어 그림을 만지더니 생긋 웃었다. 작품명은 '불친절한 의자2'. 의자 시트는 높낮이가 다른 병뚜껑을 붙여 표현했고, 배경엔 뽁뽁이(에어캡)를 깔았다. 시각장애인인 정은교 작가가 일상에서 겪는 불편과 불안을 다채로운 촉각으로 구현했다. 엄마 권문희(37)씨는 "손으로 그림을 느끼는 흔치 않은 경험을 했다"며 즐거워했다.

모두미술공간은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이 운영하는 장애예술 전문 전시관이다. 이곳에서 시각장애 예술가 6인이 참여한 전시회 '안부-보이지 않는 안부를 묻다'가 9일까지 열린다. 눈이 아닌 마음으로 그린 작품 40점이 관람객을 만난다. 그중 25점은 만져볼 수도 있다. 안부라는 전시명에는 작가들이 자연에서 얻은 위로를 돌려준다는 의미가 담겼다.

시각장애인의 자립과 권리를 위한 '흰 지팡이의 날'(10월 15일)을 앞두고 전시를 기획한 시각장애 예술 에이전시 에이블라인드 양드림 대표는 "작가들에게 붓과 흙은 스스로 길을 찾아가는 흰 지팡이 같은 도구"라고 설명했다.

3일 서울 중구 서울스퀘어 별관 모두미술공간에서 관람객들이 시각장애 예술가 6인의 전시 '안부-보이지 않는 안부를 묻다'를 둘러보고 있다. 전시장 바닥에는 시각장애 관람객을 위해 관람 동선을 안내하는 점형·선형 유도블록이 설치돼 있다. 나민서 기자

빛 정도만 감지할 수 있는 정 작가는 평소 즐겨 마시는 커피믹스 봉지로 물방울을 묘사하고, 실과 종이 등으로 화면에 질감을 만든다. 섬유예술을 전공하고 32년간 디자이너로 일한 그는 시력을 잃고 작업을 멈췄다가 캔버스 앞으로 돌아왔다. 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촉각 명화전'을 접한 뒤 '예술은 눈으로 보는 것'이라는 통념이 틀렸다는 걸 깨달았다. 이제는 일상에서 찾은 재료를 꼬거나 엮어 작품을 만든다.

박환 작가가 은행나무를 표현한 자신의 작품 '경이로운 삶' 앞에 서 있다. 겨울을 나기 위해 잎을 떨구는 은행나무에 미래를 위한 '내려놓음'의 의미를 담았다. 나민서 기자

박환 작가가 가장 애착을 갖고 있는 '경이로운 삶'은 겨울을 나기 위해 잎을 떨구는 은행나무를 역동적으로 묘사하며 담대한 희망을 건넨다. 나무껍질과 청바지 조각을 소재로 사용했다. 하루 8~11시간씩 작업해 꼬박 7개월 걸려 완성했다. 2013년 교통사고로 시력을 잃은 박 작가는 물감을 정해진 위치와 각도로 꽂아두고 색을 찾는다. 손끝으로 물감의 양을 가늠한다. 물감을 섞었을 때 색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물감 하나당 500번 이상 실험하며 익혔다. 뜻대로 되지 않아 이젤 앞에서 눈물을 흘린 적도 많다고 한다.

허은빈 작가가 '우산토끼' 부조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뒷다리가 짧은 토끼가 우산 아래 다른 친구들을 쉬게 해준다는 의미를 담았다. 나민서 기자

저시력 장애가 있는 허은빈 작가는 앙증맞은 캐릭터 '우산토끼'를 주인공으로 일러스트와 만화 작업을 하고 있다. 우산토끼의 생김새를 알고 싶다는 시각장애인 지인들의 얘기를 듣고, 허 작가는 이번 전시에 우산토끼 형상을 도드라지게 표현한 부조 작품을 걸었다. 최근에는 반려도마뱀 '까미'도 캐릭터로 만들었다. 타인의 돌봄을 받다가 다른 생명을 돌보는 주체가 된 경험이 뜻깊었기 때문이다.

최경은 작가의 도자 작품 '기억의 조각들을 본다'. 작품 옆 QR코드를 스캔하면 음성 해설과 자막, 작품 묘사를 담은 영상을 볼 수 있다. 나민서 기자

한영희 작가는 코스모스와 남해 바다를 화폭에 담았고, 유진 작가는 야광 물감으로 바다의 잔상을 묘사한 그림을, 최경은 작가는 흙을 빚은 도자 작품 '기억의 조각들을 본다'를 선보였다. 남편, 두 딸과 함께 전시를 찾은 손모(44)씨는 작가들이 각자의 감각으로 표현한 작품들에 연신 감탄하며 "우리 아이들이 장애에 대한 선입견 없이 자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작가들의 바람도 장애보다 작품 자체에 시선이 머무는 것이다. 유진 작가는 "시각장애인 예술가가 아닌, 그냥 한 명의 예술가로 봐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나민서 기자 ia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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