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美, 국정원장의 ‘北 감시기관’ 방문 거부
정보기관 수장과 면담도 성사 안돼… 지난 3월 방미 무산
美, 쿠팡 조사한 국정원 요원들 입국 제한 명단에 올렸다

이종석 국가정보원장이 지난 3월 방미를 추진했으나, 미국 측과 일정·동선 조율이 이뤄지지 않아 무산된 것으로 7일 전해졌다. 워싱턴 소식통은 이날 “이 원장이 올봄 워싱턴DC에 와서 미국 국방부 산하 정보기관인 국가지리정보국(NGA)을 방문하려 했으나 미국 정부가 허용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며 “미국 정보기관 수장과의 면담도 성사되지 않아 방미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전날 무소속 한동훈 의원은 국회 외통위에서 “미국이 반미 성향 등을 문제 삼아서 (이 원장의) 입국을 거부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소식통은 “미국이 입국이나 비자 발급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방문·면담 요청을 불발시킨 것”이라고 했다.
인공위성과 드론 등으로 수집한 영상 정보를 분석·가공해 지형 공간 정보, 즉 ‘지오인트(GEOINT)’를 생산하는 NGA는 전 세계 요충지를 매일 들여다보는 미국 정부의 ‘눈’ 역할을 하고 있다. 미국 국방부의 ‘전투 지원 기관’인 NGA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비롯한 북한 주요 인사의 동선과 거주·집무 시설을 매일 감시하며, 북한군과 핵·미사일 시설 동향도 실시간 추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NGA 방문 무산으로 방미를 취소했느냐는 본지 질의에 국정원은 별도의 설명 없이 “사실이 아니다”라며 “정보기관장의 동선에 대해서는 확인해 드릴 수 없다”고 했다.
미국 정부는 또 지난해 발생한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건 대응에 관여한 국정원 요원 수 명을 비자 신청 시 발급이 제한되는 ‘미국 입국 제한 대상 명단’에 포함시킨 것으로 이날 알려졌다. 국정원이 주미 대사관에 파견하려던 직원들의 비자 발급을 보류한 것과는 별도로 쿠팡 관련 요원들을 제재한 것이다. 미국 정부는 국정원이 주미 대사관에 보내려던 고위 간부의 과거 대미 정보 활동도 문제 삼아 다른 직원들과 함께 비자 발급을 보류한 것으로 전해졌다.
◇美, 쿠팡 조사한 국정원 요원들 입국 제한 명단에 올렸다
올 들어 워싱턴DC의 한미 관계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한미 동맹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는 우려가 계속 제기되고 있다. 한국의 2500억달러 대미 전략적 투자와 미국의 한국 원잠 도입 지원 등 지난해 한미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사항 이행은 진전이 더딘 가운데, 양국 관계를 긴장시키는 문제만 잇따라 터지고 있다는 것이다.
◇CIA ‘미·중 누구 편인가’ 의구심
미국 국가지리정보국(NGA)은 인공위성 사진과 드론 영상 등을 토대로 적의 동선을 추적·예측하는 지형 공간 정보 ‘지오인트’를 생산하는 데 독보적 위상을 갖고 있다. 2011년 오사마 빈라덴 제거 작전 때 빈라덴의 은신처를 파악한 것도 NGA였다. 이종석 국가정보원장도 우리 정부가 추진 중인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위해 위성 정보가 중요해지는 상황을 고려해, NGA를 방문해 협조 관계를 복원하려고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전임 정부 시절인 2022년 11월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이 방미하자, 미국 정부는 그를 NGA로 초청해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 원점 등이 선명하게 보이는 지오인트를 공유했다. 대한민국 국방장관이 NGA를 방문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미국 정부가 이 원장의 방문 요청은 거부한 데 대해, 이 원장의 대중·대북관이 문제가 된 것 같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 소식통은 “지난해 가을쯤 CIA가 서울지부장을 통해 이 원장에게 ‘한국이 미·중 누구의 편인지 명확히 해달라’고 했지만, 이 원장이 ‘한국이 왜 한쪽 편만 들어야 하느냐’는 주장을 펼쳤다고 들었다”며 “CIA가 이 원장을 ‘친중(親中)’으로 인식하면서 정보 협의체 회의 등에서 국정원을 배제하는 조짐이 나타났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이 원장이 지난해 취임 후 극비리에 미국을 방문했던 것으로 안다”며 “‘상견례’ 후에도 미국이 품은 의구심이 해소되지 않은 것 아니냐”고 했다.
지난해 6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이 원장은 “미국과의 관계가 틀어지면 경제도 안보도 손상이 오지 않겠느냐”는 야당 의원의 질문에 “미국과 관계가 틀어지지 않도록 하면서도, 우리는 통상 국가이기 때문에 이 풀 저 풀 다 뜯어먹고 살아야지, 한쪽 풀만 뜯어먹고 살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월 4~7일 이례적인 ‘연초 방중’을 한 배경에도 중국과의 관계 회복을 통해 대북 대화의 물꼬를 터야 한다며 대중 물밑 교섭에 적극 나선 이 원장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연구자 출신인 이 원장은 김대중 대통령 특사단에 참여했던 2003년부터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8년까지 모두 13번 북한을 방문한 기록도 갖고 있다. 다만 지난해 인사 청문회에서 이 원장은 “북한을 심층 연구했다는 이유로 ‘친북적’이라고 하는 평가에는 절대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쿠팡, 정동영 발언이 기폭제
이 원장에 대한 미국 정부의 의구심이 충분히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지난해 11월 터진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고 대응에 국정원이 투입되고, 지난 3월 초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한미 연합 기밀 사항이었던 평북 구성의 북한 우라늄 농축 시설 존재를 국회에서 공개하면서 사태를 악화시키는 기폭제가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정부는 정 장관이 기밀을 유출했다는 미국 측의 항의에 국정원을 포함한 한국 정부가 “공개 정보”라는 해명만 되풀이하자 신뢰 관계가 깨졌다는 판단을 내리고, 현재까지 대북 정보 공유를 제한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쿠팡 문제에 대해 미국 정부와 의회는 국정원이 쿠팡 측에 중국에 가서 유출 혐의자의 노트북을 회수해 오도록 지시했으면서도, 지시한 사실이 없다고 거짓말을 한다고 보고 있다. 우리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쿠팡에 부과한 개인정보 유출 관련 과징금(약 4236억원)도 앞서 카카오페이가 중국 기업인 알리페이에 고객 동의 없이 개인정보를 제공한 혐의로 받은 과징금(약 60억원)에 비춰 과도하다며 미국 기업에 대한 ‘차별’로 인식하고 있다.
◇과거 정보 활동도 문제 삼아
미 하원 법사위가 지난 7월 공개한 쿠팡 관련 중간보고서에는 김창섭 국정원 3차장이 실명으로 거론됐고, 다른 국정원 요원들의 역할도 적시됐다. 미 하원 법사위는 지난달 16일 쿠팡 사건에 관여한 한국 공무원을 포함해 미국 기업을 차별적으로 조사·제재한 외국 정부 공무원을 미국 입국 불허·추방 대상에 포함하는 내용의 법안까지 통과시켰다.
이런 의회의 움직임에 발맞춰 미국 국무부는 실제로 쿠팡 측과 접촉한 국정원 요원 수 명을 입국 제한 명단에 포함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관계자와 외교 소식통 등에 따르면, 이들은 주로 개인정보 유출 혐의자가 중국으로 가져간 노트북 회수와 조사 등에 대한 쿠팡 측과의 협의에 참여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측은 국정원이 주미 한국 대사관에 파견하려는 직원 여러 명의 비자 발급도 보류하고 있는데, 그중 주미 대사관의 정보 활동을 총괄할 고위 간부의 경우 이전에 했던 대미 정보 수집 이력이 문제가 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정계, 특히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층과 연관된 정보 활동을 했던 점을 미국이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가지리정보국(NGA)
미국 국방부 산하의 정보 기관. 정찰 위성, 민간 위성, 드론, 정찰기 등의 자산으로 수집한 영상 정보를 분석·가공해 생산한 ‘지오인트(GEOINT·지형 공간 정보)’를 미군과 미국의 다른 정보 기관들에 제공한다. 정보 수준이 높아 아군과 동맹군, 적군, 민간인의 현재 위치를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적군의 이동 경로까지 예측해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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