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해방조개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2026. 10. 7.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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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 드문드문 들어선 시골이라지만 주소나 전화번호 없이 대뜸 사람을 찾을 수 있을까? 있다. 내가 몸소 겪은 일이다. 2010년 가을께 긴 미국 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들어와 부모님 산소를 찾았다. 산과 들에서 불어오는 고향의 냄새를 호흡하고 나니 문득 최근 낙향했다던 삼촌을 뵙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잠시 머뭇거리다 집사람에게 의향을 전했더니 “그게 되겠어?”라는 답이 돌아왔다. 어쨌든 길을 나서 전북 부안 변산 해수욕장으로 접어들었다. 외가가 있었음 직한 마을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대신 고가도로가 나 있었다. 운전하며 상상했던 원두막의 풍경, 솔가지 사이로 불어오던 서해의 바람이 뚝 끊겼다.

거기서 북으로 십리상거에 살던 외할머니의 동생이 생각나 그곳으로 차를 몰았다. 을씨년스럽게 비가 내리는 길거리엔 왕래하는 사람도 없었다. 잠시 기다리니 장화를 신은 중년의 남성이 보였다. 삼촌의 이름을 대며 이 근처에 사느냐고 물으니 내 정체를 묻는 맞질문이 돌아왔다. 차 뒷좌석의 아이들까지 가리키며 사연을 말하니 그제야 삼촌이 해창 마을에 안신(安身)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 뒤로는 일사천리였다. 마을 구멍가게 주인은 마침 외숙모의 먼 친척이라 몸소 나서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조세로 거둔 곡물 보관 창고가 있던 해창(海倉)은 부안에서 남으로 내려오던 해안선이 옴팡지게 파인 곳으로, 한동안 고깃배 출입이 활발했던 항구였다. 하지만 그때 내가 본 광경은 길가 곳곳에 널브러진 시멘트 조각과 멀리 갯벌이 있어야 할 곳에 무성히 자라는 무심한 붉은색 염초였다. 맙소사. 삼촌은 고향으로 돌아와 맘이 편하다고 했다.

마침 때가 되어 들어온 밥상에는 조린 생선과 미역이 든 국이 놓여 있었다. 놀랍게도 국 안에는 붉은색 발이 기다랗게 뻗은 해방조개가 들어있었다. 해방되던 해 많이 잡혀 굶주린 사람들의 허기를 달랬대서 붙은 이름이다.

어려서 외가에 가면 나이 차이 나는 사촌 동생들과 놀기 마련이었는데, 놀이는 대개 호미를 들고 변산 백사장을 훑는 것이었다. 물이 빠지면 바다는 수 킬로미터씩 뒤로 물러나고 널따란 모래벌판이 열렸다. 딱 소리를 내며 호미에 걸리는 것은 주로 해방조개였다. 가끔은 백합과 소라도 잡혀들었다. 그러다 지치면 열린 구멍에 손가락을 넣어 칠게도 잡았다. 숙모는 입 다문 조개를 왼쪽 손가락으로 잡아 돌리면서 오른손에 든 무딘 칼을 집어넣어 살만 발라내는 일에 이골이 났는데 동작 하나하나에 군더더기가 전혀 없었다. 물끄러미 바라보며 감탄하는 나를 보고 “조카님도 한번 해볼껴?” 하며 칼을 건넨 적도 있었다.

해방조개의 다른 이름은 명주조개다. 강릉의 옛 이름이 명주이니 동해에서도 잡히는 이 조개는 모래 갯벌이나 점토 섞인 갯벌에서도 자란다. 부안의 명물인 백합과 함께 백합조개목(Venerida)에 속하는 이 조개 무리는 공룡이 지구를 활보하던 중생대 백악기에 등장해 지금에 이른다. 우리가 흔히 먹는 모시조개와 백합, 바지락, 해방조개 모두 다 같이 1억4310만년 전 조상의 후손인 셈이다.

해안가 모래 갯벌에 살며 아프리카를 떠나 새 정착지를 찾던 인류 조상이 즐겨 찾던 먹잇감이기도 했던 이들 조개의 운명은 현재 백척간두에 섰다. 지난 9월 경향신문에 ‘백합 조개 멸종을 막아라’라는 기사가 실렸다. 부안과 군산을 잇는 대규모 새만금 사업으로 변산은 물론 김제 갯벌이 가뭇없이 사라진 탓이다.

1980년 이후 국내에서 진행된 간척사업으로 1000㎢가 넘는 갯벌이 사라졌다는 연구 결과가 ‘해양 및 연안 관리’라는 저널에 실리기도 했다. 서울시 면적의 1.5배, 인천광역시 한 개에 맞먹는 규모다.

해안선이 복잡한 데다 수많은 섬을 거느린 한반도 서해안은 수심이 얕고 대륙붕이 넓게 발달해 있다. 동고서저의 대륙에서 침식돼 흘러내린 토양에 서해에서 불어오는 해풍을 섞어 다양한 형태의 갯벌을 만들었다. 마지막 빙하기 이후인 약 8500년 전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한반도 서해와 남해를 따라 갯벌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곳에는 연안 해양생물의 약 70%가 살아간다. 내 고향 새만금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계적인 패류(貝類) 어장이었다. 그러나 물길이 막히고 해창에서 군산까지 신작로가 났다. 제방이 쌓이면서 동진강과 만경강을 지나온 황토는 더는 갯벌을 살찌우지 못한다.

가까운 바다를 멀리 두고 산에서 고사리를 캐던 삼촌은 올봄 오토바이 사고를 냈다. 바다도 사람도 갯벌도 모두 아프다.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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