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신규 회원국에 최대 15년 ‘수습기간’···“제2의 오르반 막는다”

‘더 큰 유럽’을 향해 회원국 확대를 추진하는 유럽연합(EU)이 신규 회원국에 최대 15년간 적용할 별도의 안전장치를 마련한다. 우크라이나 등 동유럽 국가를 끌어안으면서도, 가입 이후 민주주의 후퇴나 거부권을 이용한 EU 의사결정 봉쇄를 막겠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EU 확대 담당 집행위원인 마르타 코스는 6일(현지시간) 가디언 등과의 인터뷰에서 “더 이상의 빅토르 오르반은 없어야 한다”며 “신규 회원국의 민주주의·법치주의 후퇴에 기존보다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오르반 전 헝가리 총리는 2010년부터 16년간 집권하며 언론·사법부 장악으로 민주주의 후퇴 논란을 빚고 EU의 대러시아 제재와 우크라이나 지원에 번번이 제동을 걸어오다 지난 4월 총선에서 패배해 물러났다.
이날 집행위가 내놓은 방안에는 신규 회원국이 가입 후 최대 15년간 민주주의·법치주의 등 EU의 기본가치를 훼손하거나 EU에 대한 협력 의무를 지키지 않으면 투표권이나 EU 기금 지원 등을 제한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신규 회원국은 기존 회원국과 동일한 지위를 갖는다. 코스 집행위원은 무기한으로 별도의 제도를 적용할 경우 “회원국 사이에 ‘1등·2등 회원국’이 생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도 EU 조약 7조에 회원국이 EU의 기본 가치를 ‘심각하고 지속적으로’ 위반할 경우 투표권을 정지할 수 있는 제도가 있다. 하지만 절차가 복잡하고 발동까지 오래 걸려 사실상 ‘최후의 수단’으로 여겨져 왔다.
앞서 헝가리와 폴란드의 민주주의 후퇴 논란 당시에도 EU 차원의 제재 절차가 장기간 이어졌지만, 양국이 상대국에 대한 제재를 막기 위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최종적인 투표권 정지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EU 내부에서는 이 같은 제도적 한계로 헝가리의 민주주의 후퇴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번 방안은 신규 회원국의 가입조약에 별도의 안전장치를 넣어 가입 이후 규범 위반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집행위는 경제·내수시장·사법 및 내무 분야의 기존 안전장치 적용 기간도 대폭 연장할 것을 제안했다.
EU가 회원국 확대를 서두르는 배경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동유럽을 둘러싼 지정학적 경쟁에 있다. 현재 우크라이나와 몰도바, 알바니아, 몬테네그로 등이 주요 가입 후보국으로 꼽힌다. 우크라이나와 몰도바는 러·우 전쟁 직후인 2022년 EU 가입을 신청했고, 이후 가입 협상을 진행해왔다.
코스 집행위원은 EU 확대를 러시아와 중국의 영향력에 맞서 유럽의 영향권을 넓히는 수단으로 규정했다. 그는 러시아를 EU 가입 후보국의 유럽 통합을 막기 위해 개입하는 “외부 교란 세력”이라고 지적하고, 중국 역시 경제적 투자와 영향력을 통해 후보국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EU 확대를 “우리의 전략적 이익”이라고 강조하며 “주변국을 EU 안으로 끌어들이지 못하면 다른 외부 세력이 이들을 EU에 맞서는 데 이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EU 확대 자체가 순탄한 것은 아니다. 신규 회원국을 받아들이려면 기존 27개 회원국의 만장일치 동의가 필요하다. 프랑스, 체코 등 일부 회원국에서는 추가 확대에 회의적인 여론도 강하다. 우크라이나의 가입이 현실화하면 농업 보조금과 EU 예산을 둘러싼 기존 회원국과의 이해관계 충돌도 예상된다.
회원국이 늘어날 경우 EU의 의사결정 구조 자체를 손질해야 한다는 문제도 있다. 회원국이 많아질수록 한 국가의 거부권으로 공동 정책이 막힐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가디언은 EU 내부에서 조세·제재 등 일부 분야에서 현재의 만장일치제를 다수결로 전환하고, 회원국별 집행위원 1명 원칙을 폐지하는 방안 등이 거론되고 있다고 전했다.
백민정 기자 mj100@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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